1924년에 일본 군마현 후지오카시에 세워진 간토진재조선인희생자위령지비. 1923년 9월5일 후지오카 경찰서에서 조선인 17명이 학살된 후지오카 사건의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비다. 천승환씨 제공
간토대지진, 혐오와 국가폭력
김응교 지음 l 책읽는고양이(2023)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3년 9월1일 토요일 11시58분, 일본 요코하마 앞바다 사가미만을 진원지로 하는 진도 7.9의 강진이 도쿄와 간토 일대를 강타한다. 지진 발생 세 시간 후인 오후 3시경부터 “조선인들이 불을 지르고 다닌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탄다” “조선인들과 공산주의자들이 습격한다”는 유언비어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날 도쿄 일대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조선인 폭동설’이 유포되기 시작했고, 도처에서 조선인과 중국인,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집단학살이 자행되었다. 일본의 시인 쓰보이 시게지는 이 처참한 장면을 ‘십오엔 오십전’(十五円五十錢)이란 장시에 담았다. “십오엔 오십전이라고 해봐!/ 손짓당한 그 남자는/ 군인의 질문이 너무도 갑작스러워/ 그 의미를 그대로 알아듣지 못해/ 잠깐, 멍하게 있었지만/ 곧 확실한 일본어로 대답했다/ 쥬우고엔 고쥬센/ 좋아!/ 칼을 총에 꽂은 병사가 사라진 뒤에/ 나는 옆에 있는 사내의 얼굴을 곁눈질로 보면서/ 쥬우고엔 고쥬센/ 쥬우고엔 고쥬센/ 이라고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반복해보았다.” “15엔 50전”을 일본 표준어로 발음하지 못한 오사카나 오키나와 출신 일본인, 또는 ‘교육칙어’나 역대 천황 이름을 암송하지 못한 일본인들까지 이른바 ‘후테이센진’(不逞鮮人)으로 몰려 살해되었지만, 현재까지도 그 정확한 피해 숫자를 파악하지 못한 채 대략 6천명가량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