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구 초량동 제1지하차도에 차량들이 갇혀있다. 부산지방경찰청 제공
23일 밤 시간당 8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진 부산에서, 지하차도를 달리던 차량들이 갑자기 불어난 물에 잠겨 탑승자 3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만조시간까지 겹치며 도심이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한 탓이었지만, 호우주의보와 호우경보가 미리 발표됐는데도 지하차도 진입을 통제하지 않았고 지하차도 앞에 안내문도 없었다는 점에서 인재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울산과 경기 등에서도 집중호우로 인한 인명 피해가 잇따랐다.
이날 밤 10시18분께 부산 동구 초량동 제1지하차도가 폭우에 2.5m 높이까지 침수되면서 지하차도에 진입한 차량 5대가 물에 잠겨 50~60대 남성 2명과 20대 여성 1명 등 3명이 숨졌다. 숨진 3명은 앞차를 따라 길이 175m, 높이 3.5m인 지하차도에 진입했다가 변을 당했다. 물에 잠긴 차량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했으나 끝내 나오지 못했다. 다행히 다른 탑승자 6명은 구조됐다.
기상청은 이날 오후 2시에 호우주의보, 저녁 8시 호우경보를 발령했지만 자치단체와 경찰은 초량동 제1지하차도를 사전에 통제하지 않았고 위험을 알리는 안내문도 비치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초량동 제1지하차도엔 분당 20t 용량의 배수펌프 3대가 있었지만 참변을 막지 못했다.
6년 전인 2014년 8월에도 비슷한 참사가 벌어졌다. 침수된 동래구 우장춘로 지하차도에 진입했던 차량 탑승자 2명이 불어난 물에 잠겨 숨진 것이다. 당시 부산엔 시간당 최대 130㎜의 비가 내렸다. 이 참사를 계기로 부산시는 제1지하차도를 포함한 전체 지하차도 35곳의 배수펌프 용량을 늘렸지만 이번 폭우에는 소용이 없었다. 경찰은 초량동 제1지하차도 배수펌프가 제대로 작동됐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침수된 부산 동구 초량동 제1지하차도에서 소방대원들이 인명수색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지방경찰청은 “23일 저녁 9시38분 침수신고가 들어와 3분 만에 출동해 도로 통제를 했으나 부산 전역이 교통 마비상태여서 특정지역에 지속적인 순찰이 힘들었고 자치단체에서 사전 통제 요청도 없었다. 배수펌프가 정상 작동되지 않았다면 수사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울산과 경기 등에서도 인명 피해가 잇따랐다. 이날 밤 10시46분께 울산에서는 형제가 각자 자신의 차량을 몰고 연산교를 건너다가 불어난 물에 휩쓸렸다. 앞서가던 동생은 탈출했지만, 형(59)은 다음날 아침 7시42분께 사고 지점에서 하류 쪽으로 700m 떨어진 명산교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또 24일 아침 경기 김포시 감정동 감성교 인근에서는 익사자 1명이 발견돼 경찰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24일 오전 10시30분까지 집계한 전국 호우 피해 자료를 보면, 전국에서 주택 등 289곳이 침수 피해를 당했다. 또 부산 동천이 범람하고 경북 영덕군 강구시장 등이 침수돼 주민 220명이 마을회관 등에 대피하기도 했다. 이날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진 집중호우는 부산, 울산, 경북, 강원, 경기, 충청 일부지역에 200㎜가 넘는 많은 비를 뿌렸다.
주말에도 집중호우가 예상된다. 강원 영동과 경북북부 동해안에 25일 낮까지 돌풍과 천둥·번개를 동반한 시간당 30mm 이상의 매우 강한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돼 바람과 비 피해가 우려된다. 경북북부 동해안에는 150mm 이상, 강원영동에는 400mm 이상 내리는 곳도 있을 전망이다.
김광수 최상원 김일우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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