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경북 구미시 해평취수장에서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이 물을 뜨고 있다. 김규현 기자
삽으로 퍼낸 강바닥 흙을 바싹 마른 강모래 위에 펼쳐놓자 어김없이 미세한 꿈틀거림이 감지됐다. “여섯 마리네요. 실지렁이 넷에 깔따구 애벌레 둘.” 흰 라텍스 장갑을 끼고 흙더미를 헤집던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이 말했다. 그의 손바닥 위에선 길이가 1㎝쯤 될까 말까 한 붉은색 실벌레들이 꼬물거렸다. “실지렁이와 깔따구가 산다는 건 수질이 4급수로 떨어졌다는 얘깁니다. 여기가 이 정도면 사실 다른 곳은 살펴보나 마나예요.” 정 국장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치며 말을 이었다.
5일 오후 2시쯤 찾은 경북 고령군 다산면 우륵교 인근의 낙동강 상태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이 일대는 매곡취수장과 가까워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야영이나 취사는커녕 물놀이, 낚시조차 금지된다. 그만큼 오염원 관리가 엄격하다는 얘기다. 대구시는 매곡취수장에서 하루 평균 37만1709t(2021년 기준)의 낙동강물을 퍼올려 고도정수처리한 뒤 대구 인구의 45%인 중·남·서·북·달서구와 달성군 주민 110만여명에게 수돗물로 공급한다. 대한하천학회장을 맡고 있는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교수는 “고도정수처리를 한다는 것은 수돗물 원수의 수질이 매우 나쁘다는 것을 뜻한다. 상수도 관련 업무를 하는 공무원들도 이런 물은 먹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고도정수처리를 하면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홍보하는 거. 그렇게 무책임한 말이 어딨습니까? 창원 ‘깔따구 수돗물 사태’도 그런 무사안일함 때문에 터진 겁니다.” 누군가 격한 목소리로 당국을 성토했다.
사정은 전날 찾은 경남 창원시 의창구 본포취수장 주변도 다르지 않았다. 띠를 이룬 녹색 물결이 바람을 타고 강변으로 끝없이 밀려왔다. 덩어리를 이룬 녹조가 해파리처럼 떠다니는 모습이 수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강변에서 떠낸 흙에선 어김없이 악취가 났다. 하수처리장의 슬러지 수준이었다. 동행한 임희자 낙동강네트워크 공동집행위원장이 말했다. “4대강 사업 전에는 여기 모래사장이 얼마나 예뻤는데. 이게 다 강물을 가둔 뒤 생겨난 녹조가 바닥에 쌓여 썩으면서 벌어진 일입니다.” 본포취수장에서 퍼올린 낙동강물은 석동정수장을 거쳐 창원시 진해구 6만5300가구 15만여명에게 수돗물로 공급된다. 지난달 ‘깔따구 수돗물 사태’가 터진, 바로 그 진해구다.
같은 날 찾아간 경남 함안군 칠서취수장 앞 낙동강에선 어선도 행정선도 아닌 낯선 배 한 척이 쉼없이 수면 위를 맴돌며 초록색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녹조 덩어리가 취수장에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자원 관리 당국이 띄운 녹조제거선이었다. 그 소금쟁이 같은 배 한 척으로 넓은 강물의 독성 물질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부조리극의 한 장면처럼 다가왔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4대강 사업에 착수하며 미래의 물 부족과 계절적 가뭄에 대비하기 위해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의 퇴적토 준설과 보 건설 등으로 13억t의 충분한 수량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그러면서 사업이 완공되는 2012년에는 전체 수량의 83~86%를 사람이 들어가 수영할 수 있는 ‘좋은 물’(2급수) 수준으로 수질을 개선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 당시에도 강물을 보로 막으면 수질이 더 나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정부는 자신만만했다. “보를 막는다고 반드시 수질이 나빠지는 것은 아니다. 오염원 관리, 유량 변화 등에 따라 수질이 개선될 수 있다. 특히 갈수기에는 확보된 수량을 하천 유지용수로 방류함으로써 수질 개선에 기여할 것”이라는 게 당시 정부 입장이었다.
그러나 4대강 사업 이후 해마다 여름이면 남조류가 번식해서 강물이 푸르죽죽하게 물들었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상식을 외면한 결과였다. 이 현상은 해가 갈수록 더 확산돼 ‘녹조 라떼’라는 비아냥까지 듣게 됐다. 최근엔 낙동강물로 재배한 벼와 무·배추 등 채소에서 녹조 독성물질인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다. 심지어 낙동강물을 정수해서 공급한 대구 수돗물에서도 마이크로시스틴이 나왔다. 보의 수문을 열어 강물을 바다로 흘려보내라는 요구가 빗발치지만, 정부는 수문을 열지 못한다. 4대강 사업이 목표한 유량 확보를 위해 강바닥을 원래보다 6m나 깊이 파낸 까닭에 수문을 열어 강물을 흘려보내면 수위가 낮아져 낙동강에 산재한 130개 취수장·양수장 가동이 차질을 빚기 때문이다.
지난 4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 본포취수장 근처 낙동강 강바닥 흙에서 나온 깔따구 애벌레. 김영동 기자
대체 이명박 정부가 약속한 ‘물고기가 뛰놀고, 수영할 수 있는 좋은 강’은 어디로 간 것일까? <한겨레>가 4대강 사업 완료 10년을 맞아 낙동강네트워크·대한하천학회·환경운동연합과 함께 지난 4~6일 부산 낙동강 하굿둑부터 경북 영주시 영주댐 상류에 이르는 낙동강 본류 구간 점검에 나섰다. 현장점검은 주요 지점 18곳의 수생태계를 살피고, 현지의 물과 흙을 채취해 시료 검사를 의뢰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탐사 취재를 진행하는 동안 낙동강 유역은 최고기온이 섭씨 35도를 오르내렸다. 수온 역시 29.8~32.8도를 기록했다. 농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 상·하류 모든 구간에서 녹조가 관찰됐고, 수질검사를 위해 채취한 강바닥 흙에선 어김없이 실지렁이와 깔따구 애벌레가 나왔다. 4대강 사업 시작 전부터 낙동강 현장을 지켜온 정수근 국장은 “장마 직후라 그나마 나은 편이다. 남조류가 증식하기에 좋은 지금 같은 날씨가 며칠만 계속되면, 죽처럼 끈적끈적해질 정도로 녹조현상이 심해진다”고 말했다.
하류인 경남 쪽 구간보다 대구·경북 구간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었다. 탐사 이틀째인 5일에 찾은 대구 달성군 낙동강레포츠밸리에서는 수상스키 등 물놀이를 즐기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이곳은 달성군 시설관리공단이 운영하는 시설이다. 하지만 이곳 강물도 푸르고 탁했다. 녹조류 침입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실제로 이곳은 지난해 수질검사에서 녹조 독성물질인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다. 맨살에 닿거나 마시게 되면 피부염과 복통을 일으킬 수 있다. 정수근 국장은 “최소한 독성물질이 나오는 기간이라도 물놀이를 금지하고 경고판을 세워 경각심을 갖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낙동강레포츠밸리에서 좀 더 상류 쪽에 있는 달성군 화원유원지 앞은 유람선이 운행하고 있었다. 더위를 식히러 나온 많은 시민들이 나무 그늘 밑에서 강바람을 쐬고 있었지만, 물이 있는 강가로 내려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곽상수 대구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장은 “원래 이곳은 대구시민들이 강수욕을 하던 곳”이라고 귀띔했다. 그런데 4대강 사업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고 했다. “강이 깊어지면서 모래사장이 완전히 사라져버렸죠. 게다가 저 물 좀 보세요. 어느 정신 나간 사람이 저기에 몸 담그고 싶겠어요? 수영할 수 있는 좋은 강이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낙동강의 이 꼴을 보고도 나올 수 있겠습니까?”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이 지난 5일 경북 고령군 우륵교 인근 낙동강 바닥에서 뜬 흙에서 나온 실지렁이와 깔따구 애벌레를 보여주고 있다. 뒤쪽으로 대구시민들에게 수돗물을 공급하는 매곡취수장이 보인다. 최상원 기자
탐사 사흘째인 6일에 찾은 경북 구미시 해평취수장 앞 낙동강도 짙은 초록빛이었다. 지난 4월 환경부와 대구시, 경상북도는 ‘낙동강 유역 안전한 먹는 물 공급체계 구축사업’으로 하루 평균 30t의 해평취수장 물을 대구에 공급하기로 했다. 이 사업은 지난 6월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까지 통과했다. 상류 쪽으로 더 올라간 경북 상주시 상주보의 강바닥 흙도 깔따구 애벌레와 실지렁이 차지였다. 이곳에서 퍼낸 네 삽의 흙에서 깔따구 애벌레 21마리와 실지렁이 2마리가 나왔다. 이철재 환경운동연합 ‘생명의 강 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은 “하류 지역인 창녕함안보와 합천창녕보는 지난해 보 개방 실험을 하느라 보를 열어 둔 적이 있다. 그런데 상주보는 상류지만 물을 계속 가두어두는 바람에 4급수 지표종이 더 많이 나온 것 같다”고 했다.
마지막 점검 지점인 경북 영주시 영주댐. 역시나 초록빛이었다. 영주댐은 4대강 사업 당시 낙동강 수질 개선을 위한 하천 유지용수 확보를 목적으로 지어졌다. 이승렬 대구환경운동연합 대표는 “가는 곳마다 이러니, 원래 이 색깔이 낙동강 물색인 것처럼 느껴진다”고 허탈해했다. 영주댐 물문화관에는 ‘낙동강에 맑은 숨결을’이라는 문구가 걸려 있었다.
조사단장을 맡아서 사흘 동안 ‘낙동강 국민 체감 녹조 현장 조사단’을 이끈 박창근 교수는 “강이 아프면, 사람도 아프다. 안전과 공존을 생각한다면 낙동강을 흐르는 강으로 되돌려야 한다. 당장 4대강 사업 이전 상태로 재자연화하기가 어렵더라도, 우선은 보 수문을 완전히 열어서 물을 흐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상원 김영동 김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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