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보와 공주보가 완전 개방된 뒤 1년여 시간이 흐른 2019년 7월9일 세종보와 공주보 사이 구간에 있는 청벽 앞으로 금강 물이 맑게 흐르고 있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전국 프리즘] 최예린 | 전국부 기자
큰빗이끼벌레. 지금은 사람들 기억 속에 가물가물한 괴생명체. 이름도 형태도 낯선 그 존재를 처음 만났던 2014년 7월 어느 날을 기억한다. ‘금강에 괴생명체가 나타났다’는 보도에 놀라 금강을 찾은 길이었다. 부여 왕흥사터 인근에서 백제보, 공주보를 거쳐 세종보까지 금강을 훑는 동안 어렵지 않게 큰빗이끼벌레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외래종인 큰빗이끼벌레는 주로 저수지나 호수 등에 있는 길이 1㎜ 태형동물(이끼벌레)로 수천마리가 점액질로 뭉쳐져 돌과 수초 등에 붙어산다. 흐르는 물 대신 고인 물에서 녹조 등 물의 부영양화(오염)가 심할수록 창궐한다.
그해 여름 큰빗이끼벌레는 흐르지 않고 오염된 강의 증거물로 화제가 됐다. 3개 보로 막힌 금강이 오염됐다는 증거가 그뿐이었겠는가. 수십만마리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고, 해마다 녹조가 온 강에 창궐했으며, 강바닥에서는 4급수 지표종인 붉은깔따구가 나왔다. 강변에서는 악취가 진동했다. 수변에 조성된 공원은 찾는 사람 없이 방치돼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모래톱이 사라지자 금강을 찾는 새도 줄었다.
5년 뒤인 2019년 7월 다시 찾은 금강은 놀랄 만큼 변해 있었다. 수위가 내려간 강 곳곳에 모래톱이 생겼고, 세종보·공주보 구간에선 녹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두 보 사이에 있는 수직절벽 ‘청벽’ 앞으로 흐르는 강물은 투명하게 빛났고, 강변 모래톱은 새소리로 가득했다. 2018년 세종보와 공주보가 완전 개방된 뒤 생긴 변화였다. 흐르는 강에서는 큰빗이끼벌레 대신 멸종위기 1급 어류인 흰수마자와 미호종개가 발견됐다. 세종보·공주보의 어류건강성 지수는 개방 전보다 개방 뒤 각각 44%, 23% 올랐다. 멸종위기 1급 조류인 흰꼬리수리와 2급 조류인 흰목물떼새·큰고니·큰기러기도 관찰됐다. 죽었던 강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흘러야 산다. 강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보 개방 뒤 모니터링 결과를 바탕으로 환경부 4대강조사·평가기획위원회는 2019년 2월 금강·영산강 5개 보의 처리 방안을 제시했다. 금강 세종보는 해체, 공주보는 부분 해체, 백제보는 상시 개방하고, 영산강의 죽산보는 해체, 승촌보는 상시 개방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2021년 1월 국가물관리위원회는 환경부가 제안한 내용대로 보 처리 방안을 확정했다.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4대강 보 처리 방안 마련’을 지시한 뒤 4년 만이었다. 그런데 단서가 달렸다. 보 해체 시기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지역 주민 등이 협의해 결정해야 한다. 결국 그 상태로 1년여가 흘렀고, 정권이 바뀌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4대강 보를 유지하겠다’는 취지 발언을 여러차례 했다. 충남 공주 유세에서는 “민주당 정권이 보를 해체하려 하지만 이는 턱도 없는 얘기”라고 했다. 새로 취임한 최민호 세종시장과 김태흠 충남도지사도 보 존치와 활용을 이야기한다. 환경부는 지난달 봄가뭄을 이유로 공주보 수문을 닫았다. 이 소식을 가장 먼저 알린 이는 자유한국당 시절 4대강보해체대책특별위원장을 맡았던 정진석 의원(국민의힘)이었다.
환경단체는 “환경부에 가뭄이 극심하다고 민원을 넣은 동네는 이미 100% 모내기가 끝난 상황”이라며 “공주보 담수는 금강을 볼모로 삼은 정치 협잡”이라고 반발했다. 4대강 재자연화 사업의 핵심 구실을 한 환경부 4대강조사평가단은 지난달을 끝으로 해산됐다. “4대강 재자연화는 이제 물 건너갔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5년, 금강의 되살아남을 목격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금강은 다시 위기에 놓였다. 2019년 7월 어느 날, 공주 고마나루 모래톱 위에서 만난 한 신부님이 말했다. “스스로 대변할 수 없는 자연이 가장 약자”라고. 과연 그럴까. 강은 지난 세월 온몸으로 자신을 대변한 것 아닐까. 힘을 가진 인간들이 외면하고 무시했을 뿐. 강은 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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