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다테가오카 단지에 있는 불쑥 상담실. 상담실 내부에는 간단한 건강검진이 가능한 의료 기기와 카페가 있다. 주민들은 이곳에 모여 남는 생활을 보내곤 한다. 이승욱 기자
지난 2일 오후 일본 도쿄도 하치오지시 다테가오카 공동주택 단지 들머리 ‘후랏토’(불쑥) 상담실 앞에 노인 4명이 의자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단지에 사는 홀몸 노인들이다. 이들 모두 10년 안팎의 세월을 혼자 살았지만, 이들의 일상을 규정하는 단어는 ‘고독’이 아니다.
주민 히마리(84)는 “매일 이곳에서 친구들을 만난다. 자주 보던 이들이 사나흘이 지나도 안 나타나면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연락한다”고 말했다. 히마리는 10년 전 남편과 이곳으로 이사 왔지만,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혼자 살고 있다. 9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온 사토(78)는 “젊을 때 전기 계통 일을 해 배선이나 조명 등 웬만한 전기 관련 작업은 아직도 자신 있다. 이웃집에 전기 쪽 문제가 생기면 공구를 챙겨 들고 직접 고쳐준다. 이웃을 도우면서 느끼는 보람이 상당하다”고 했다.
다테가오카 단지는 도쿄도 행정구역 안의 23개 특별구로 출퇴근하는 이들을 위해 1970년대에 조성된 2900가구 규모의 아파트 단지다. 하지만 5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면서 단지와 주민들이 함께 늙었다. 아이들을 키우는 30~40대 젊은 가족이 중심이던 단지 내 가구 구성은 홀몸 노인들이 주류인 상황으로 바뀌었다. 주민자치회가 2023년 9월 조사해 보니, 거주자 가운데 65살 이상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86%나 됐다. 75살 이상 노인 거주자 비율도 59%였다. 주민의 가구 형태는 64%가 1인가구였다.
홀몸 노인 비율이 높아지면서 주민들은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상호 돌봄’ 시스템을 만들었다. ‘관계 맺기’는 다테가오카 단지 돌봄 체계의 핵심이다. 도쿄도의 지원을 받아 마련한 불쑥 상담실의 역할이 컸다. 정식 명칭은 ‘고레이샤 미마모리 소단 마도구치’(고령자 지킴이 상담 창구)이지만 주민들이 겪는 사소한 문제들을 언제든 불쑥 찾아와 상담하면 해결해준다는 의미에서 불쑥 상담실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고령자 지킴이 상담 창구에는 사회복지사와 간호지원전문가 등 자격증을 지닌 전문 상담원이 상주한다. 상담원들은 주민들을 상대로 전화상담을 하거나 직접 사는 곳을 방문하기도 한다. 상담 창구 안에는 혈압계, 시력측정기, 안마의자 등 기본적인 의료 기기가 설치돼 있고 커피와 차도 마실 수 있다.
기노시타 상담실장은 “상담 창구의 위치를 정할 때도 많은 고려를 했다. 어떻게 하면 주민들이 오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을지를 최우선 조건으로 따졌다”고 말했다. 실제 상담 창구 직원들은 한번 온 뒤 다시 오지 않거나, 자주 오다가 방문이 뜸해진 주민들이 보이면 바로 달려나가 안부를 묻고 방문 일정을 잡는다. 기노시타 실장은 “타인의 관심을 부담스러워하는 주민에게는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대신, 다른 주민들과 협력해 느슨한 연결 고리를 만드는 데 주력한다”며 “중요한 건 내가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테가오카 단지 내에서 주민들의 발이 되어주는 자전거 택시. 이 택시는 주민자치회에서 모집한 자원봉사자가 운전한다. 거동이 힘든 노인들을 위해 주민자치회에서 직접 아이디어를 내어 만든 것이다. 코로나19 백신 예방 접종 때는 접종센터까지 마을 주민들을 태워 날랐다. 이승욱 기자
고령자 지킴이 상담 창구는 도쿄도의 다른 지자체로 확산되고 있다. 현재 12개 구, 7개 시, 1개 정, 1개 촌에 설치됐다. 도쿄도 복지국 재택 지원과 다케우치 료타 총괄과장 대리는 “지금은 지역포괄지원센터에서 고령자 상담 업무를 진행하고 있는데, 앞으로 상담 창구 전담 부서를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
‘관계 맺기’ 중심의 홀몸 노인 정책은 일본의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로 시행되고 있다. 이 정책의 시초는 지바현 마쓰도시에 있는 도키와다이라 공동주택 단지다. 다테가오카 단지처럼 도쿄도 중심지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도키와다이라 단지는 세월이 흐르면서 노인 비율이 월등히 높은 ‘고령자 단지’가 됐고, 고독사가 심각한 단지 현안으로 떠올랐다.
지난 2일 오전 도키와다이라 공동주택 단지에 있는 이키이키 살롱에서 입주민들이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승욱 기자
2001년 단지에 거주하던 50대 후반 남성이 고독사한 지 3년 만에 발견되면서 사회복지사협의회와 주민들이 중심이 돼 ‘고독사 제로 작전’이 시작됐다. 사회복지사협의회와 주민들이 추천한 민생위원(18명)들은 홀몸 노인들의 가족, 담당 의사 연락처 등이 기재된 안심등록카드를 마련하고, 단지 내 빈 상가에 ‘이키이키(생생) 살롱’을 열어 사람들이 모이도록 했다. 고령자를 대상으로 건강·취미 교실을 열고, 한달에 한번은 원하는 이들을 모아 식사를 같이 하는 등 주민 관계망 형성에 힘썼다. 도키와다이라 단지의 사례는 후생노동성이 마련한 고독사 방지 사업의 모델이 됐다. 다테가오카 단지에서는 도키와다이라 단지의 사례를 좀 더 발전시켜 주민들을 상대로 자원봉사자를 모집한 뒤 고령자 지킴이 상담 창구, 주민자치회, 카페, 어린이 식당 등에서 관계 맺기 활동을 펼치고 있다.
민간 차원에서 관계 맺기에 초점을 둔 공동주택을 만드는 움직임이 있다. 비영리단체인 ‘컬렉티브 하우징 협동조합’은 2003년 제1호 주택을 연 뒤 지금까지 모두 6개의 컬렉티브 하우스를 만들었다. 컬렉티브 하우스는 식당, 부엌, 세탁실 등의 공간을 주민들이 공유하면서 개인 생활 공간은 완벽하게 분리되는 형태의 새로운 공동주택이다. 이곳에는 다양한 가구 형태에 속한, 여러 연령대의 주민들이 입주해 있다. 이곳에 12년째 혼자 살고 있는 70대 여성 이에는 “이곳에 혼자 사는 40대 여성을 3명 정도 알고 있는데, 어린아이들과 잘 놀아줘 아이 키우는 부모들도 좋아한다”며 “어린아이부터 80대까지 나이를 불문하고 교류할 수 있는 게 이곳의 장점이다. 다른 곳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 아니냐”고 했다.
1인가구는 ‘불완전’하거나 ‘비정상적’인 가구 형태로 인식되곤 한다. 수적으로 가장 우세한 가구 형태임에도 사회 일각에선 ‘저출생 고령화’를 초래하는 문제적 현상으로 지목한다. 하지만 10명 중 3.5명이 1인가구인 시대에, 혼자 살아가기조차 버거운 사회는 저출생에도 고령화에도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어떻게 하면 혼자라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까. 한겨레는 전국 광역·기초지방자치단체 243곳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1인가구 정책 전반을 진단하는 한편, 한국의 1인가구는 어떻게 살고, 무엇을 원하는지 직접 들었다. 1인가구 정책의 바람직한 변화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1인가구 비율이 높은 일본·오스트레일리아(호주)·스웨덴의 정책 사례도 하나하나 짚어봤다. 편집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하치오지/글·사진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