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학, 취업으로 1인가구가 된 박나현씨. 그는 “지역 도서관, 체육센터를 이용하는데 1인가구 정책 홍보는 보지 못했다. 차라리 집 계약을 할 때 무조건 알 수 있도록 부동산에 관련 팸플릿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지민 기자
1인가구는 ‘불완전’하거나 ‘비정상적’인 가구 형태로 인식되곤 한다. 수적으로 가장 우세한 가구 형태임에도 사회 일각에선 ‘저출생 고령화’를 초래하는 문제적 현상으로 지목한다. 하지만 10명 중 3.5명이 1인가구인 시대에, 혼자 살아가기조차 버거운 사회는 저출생에도 고령화에도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어떻게 하면 혼자라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까. 한겨레는 전국 광역·기초지방자치단체 243곳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1인가구 정책 전반을 진단하는 한편, 한국의 1인가구는 어떻게 살고, 무엇을 원하는지 직접 들었다. 1인가구 정책의 바람직한 변화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1인가구 비율이 높은 일본·오스트레일리아(호주)·스웨덴의 정책 사례도 하나하나 짚어봤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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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경남 거제시 옥포국가산업단지. 오후 5시가 되자 귀가하는 조선소 노동자들의 자전거 행렬이 이어졌다. 조선소에서 용접 일을 하는 이근호(가명·51)씨도 하늘로 솟은 골리앗 크레인을 뒤로한 채 자전거에 올랐다. 그는 가족을 두고 돈을 벌러 경남 거제에 왔다가 2010년 이혼한 뒤 홀로 눌러앉았다. 혼자 지낸 기간이 13년을 넘겼지만, 여전히 아무도 없는 어둑한 집에 들어가는 느낌이 싫다. 집을 나서는 아침, 현관에 종종 불을 켜두는 이유다.
■ 1인가구는 ‘특별 케이스’ 아닌 ‘보편 현상’
이곳엔 이씨처럼 혼자 사는 이들이 많다. “조선소 월급이 괜찮다고 하니 식구들과 떨어져 생활하는 분들이 많죠. 결혼 시기를 놓치거나 (일하다) 이혼하는 경우도 있고요.”(이근호) 일반적으로 청년과 노년층에 1인가구가 집중된 다른 지역과 달리, 고용노동부가 ‘고용위기지역’으로 분류한 경남 거제시는 울산 동구, 경남 창원시 진해구와 함께 40∼50대 중장년 남성 1인가구 수가 유난히 많다.
2015년 발생한 사상 최악의 조선업 위기는 거제를 더 아프게 할퀴었다. “그때 거제 지역 이혼율이 경남에서 1위였어요. 40∼60대 조선소 노동자들 상당수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가족이 박살 나버렸어요. 혼자 살다 고독사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이태열 거제시의원) 이근호씨와 함께 일하는 박인우(가명·37)씨, 같은 일을 하다 퇴직한 김태균(61)씨도 모두 이혼한 1인가구다.
거제의 중년 남성 노동자들처럼 누구나 인생에 한번은 1인가구가 될 가능성과 함께 산다. 미혼과 비혼, 진학과 취업뿐 아니라 이혼·사별 등으로 ‘비자발적 1인가구’가 될 수도 있다. 홀로 사는 경험은 모든 연령대에 걸쳐 나타난다. ‘나 혼자 사는’ 일이 특별한 사연을 지닌 개인의 일이 아니라 “보편적인 삶의 문제”(변미리 서울연구원 도시모니터링센터장)가 되었다는 얘기다. 이미 한국인 10명 가운데 3.5명(통계청, 2022년 기준)은 혼자 산다. 이 비율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통계청은 2050년이면 모든 지역에서 1인가구가 가장 주된 가구 유형이 되고 10명 가운데 4명(39.6%)이 혼자 살게 될 것으로 추산한다.
역설적으로 ‘누구나’ 겪는 일이기에 1인가구와 관련해선 연구도, 정책 수립도 녹록지 않다. 비혼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서울 거주 30대 여성 박나현씨와 남편과 사별 뒤 전남 고흥군에서 홀로 사는 80대 여성 송인자(가명)씨의 정책 수요가 같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겨레가 전국 각지에서 만난 1인가구 12명은 공통적으로 ‘먹고사는 일’의 어려움을 말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거치며 ‘고립·은둔’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지만, 많은 1인가구에겐 ‘주거 안정성’과 ‘건강한 식생활’이 중요한 의제란 얘기다.
■ 가장 절실한 건 ‘음식’과 ‘주거 안정성’
실제로 1인가구 생활실태를 처음 조사한 ‘2020년 가족실태조사’(여성가족부) 결과를 보면, 생활하며 겪는 여러 어려움 가운데 “균형 잡힌 식사를 하기 어렵다”고 답변한 1인가구가 전체 응답자(619만2천명)의 42.4%로 가장 많았다. 가장 필요한 지원 정책 1위는 50.1%가 선택한 ‘주택 안정 지원’이었다. 이근호씨를 힘들게 하는 것도 ‘외로움’보다는 주거 문제다. “지난 수년간 아이 양육비를 보내느라 아직도 월세에 산다”는 그는 “노후를 어떻게 설계할지 고민이다. 집을 살 때 (1인가구 특성을 반영한) 혜택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광주광역시에 사는 60대 남성 문정국씨가 거주하는 원룸 공간. ‘안정된 주거’는 1인가구가 가장 필요로 하는 정책이다. 이승욱 기자
주거 지원에 대한 요구는 청년층일수록 더 높았다. 당장 1월에 전세계약이 만료된다는 박나현씨는 “전세사기 소식에 불안해서 각종 행복주택,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알아보고 청약을 시도하는데, 1인가구는 물량도 많지 않은데다 면적도 너무 작다. 물량도 많고 생활 여건이 상대적으로 좋은 신혼부부 특별공급 아파트를 보면 화가 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인 가구만을 위한 주택 정책이 지나치게 많다”고 푸념했다.
광주광역시에 사는 30대 남성 이지원씨는 ‘중소기업 취업청년 전월세보증금’ 대출 제도를 이용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이씨는 “한달에 주거비용으로 대출이자 10만원 정도를 내는데 만약 이런 지원을 받지 못했다면 독립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그가 생활비에서 가장 많이 지출하는 항목은 식비다. “배달 음식이나 인스턴트식품, 아니면 달걀 등을 간단하게 요리해 먹는데 (매번 요리해 먹기가) 쉽지 않죠. 식자재 지원보다는 배달 음식 구입비 지원이 있으면 좋겠어요. 주변에 (혼자 살면서) 생활이 어려운 친구들은 대부분 주거비와 식비 지출 때문에 힘들어해요.” 이씨는 “지자체에서 1인가구를 위한 요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봤지만, 평일 저녁에 하니 가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한때 요리를 좋아했지만 혼자 살게 된 뒤 잘 하지 않는다는 박인우씨도 “집에서 먹는 대부분의 끼니를 배달 음식에 의존한다”고 말했다.
■ 건강과 의료, 고령 1인가구의 제1 관심사
질병으로 한쪽 팔 사용이 불편한 김태균씨는 동네 사회복지관에서 봉사자들이 만들어 주기적으로 배달해주는 반찬의 도움을 쏠쏠히 받는다. 김씨는 “반찬을 배달해주는 분이 70대 어르신인데 가끔 전화도 주고받을 만큼 친해졌다”며 웃었다.
노인이 많이 사는 지역일수록 건강과 의료에 대한 관심이 높다. 전남 고흥군은 1인가구 비율이 42.6%(통계청, 2022년 기준)로 전라남도에서 두번째로 1인가구 비율이 높은데, 전체 1인가구(1만2824명)의 74%(9488명)가 60대 이상일 정도로 고령화돼 있다. 10여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 혼자 사는 송인자(83)씨는 매일 3시간씩 찾아오는 요양보호사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혼자 있는데 몸까지 아프니 마음이 울적해요. 그럴 때면 찬송가를 불러요. 젊을 때는 유행가를 불렀지만. 그러다 선생님이 오시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밥도 지어주시고, 가끔 맛있는 반찬도 만들어 오시니까요.”
경남 거제의 조선소에서 일하다 퇴직한 김태균씨. 김씨는 지역 사회복지관을 활발히 이용하는 편으로 주로 복지관 프로그램을 통해 또래 중장년층을 만나 교류한다고 말했다. 박다해 기자
1인가구 안에는 성·연령·지역·계층에 따라 다양한 유형이 존재한다. 변미리 센터장은 “한국 사회는 ‘비자발적 1인가구’가 짧은 기간에 급격하게 증가했다. 앞으로도 5∼10년은 1인가구의 유형별 특성에 따라 지원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근호씨처럼, 혼자 살지만 다른 가족 부양 부담을 지는 1인가구 대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문도 나온다. 김영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가족실태조사에서도 혼자 살지만 따로 사는 가족을 돌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1인가구 정책을 설계할 때 이들이 가족 부양과 돌봄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다인 가족’ 중심 정책 설계, 전면 전환을
1인가구가 보편적인 가구 형태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단순히 취약한 1인가구를 지원하는 정책을 만드는 것에 그칠 게 아니라, 이른바 ‘다인 정상가족’을 대상으로 설계된 각종 사회보장제도를 재설계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김진석 서울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성별 분업에 기초한 가부장제 가족을 정상 형태로 전제하고, 그 기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둬온 정책의 유효기한은 사실상 끝난 것으로 봐야 한다. 사회정책을 개인 중심으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부 완화됐다고는 하나 여전히 남아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 문제처럼, 돌봄의 1차 책임을 가족에게 지우는 방식이 유지되는 사회에선 개인이 온전히 독립적인 존재로 기능하기 어렵다. 김 교수는 “여러 지표를 보면 사회의 구성은 개인이 중심이 되는 흐름으로 가고 있는데, 국가의 사회정책과 복지시스템은 전혀 그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참고자료
‘1인가구와 고용위기지역’(김경태 부연구위원, 희망제작소)
‘성공한 나라, 불안한 시민’(이태수 외 지음, 헤이북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박다해
doall@hani.co.kr 이승욱
seugwookl@hani.co.kr 손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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