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20일 김동연 경기지사(오른쪽 둘째)가 서울 중구 퇴계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선감학원 아동인권 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을 마친 뒤 피해자 천종수씨의 손을 맞잡고 사과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심각한 국가폭력으로 큰 고통을 겪은 생존 피해자와 유가족께 깊은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피해자들의 상처 치유와 명예회복 지원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김동연 경기지사가 현대사의 비극인 ‘선감학원 아동인권 침해 사건’과 관련해 지난해 10월20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에서 한 공식 사과의 일부다. 김 지사는 당시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선감학원 사건 치유 및 명예회복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선감학원에 대한 국가기관의 공식 조사 결과가 나온 지 1년이 되었으나 국가 차원의 사과와 지원, 유해 발굴, 추적 조사 등은 더디기만 하다. 16일 경기도와 진실화해위 등의 말을 종합하면, 선감학원 사건은 진실화해위가 2020년 12일10일 조사를 시작해 2022년 10월18일 신청인 167명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같은 달 20일 대책을 발표했다.
이후 이 사건은 행정안전부를 중심으로 법무부, 보건복지부, 교육부, 경찰청, 경기도 등으로 수습 업무가 배분됐다. 당시 진실화해위는 △국가의 사과 △유해 발굴 △피해 회복 조처 △추가 피해자 확인과 추적 지원 △피해자 트라우마 연구 치유 등을 소관 부처와 기관이 세부 이행 방안을 세워 추진하라고 권고했다.
이후 경기도는 피해자로 확인된 180명에게 올해 1월 위로금 500만원을 지급한 데 이어, 매달 생활지원금 20만원과 경기도의료원의 의료서비스 지원 등을 이어오고 있다. 경기도가 진행 중인 지원 사업에는 피해자 트라우마 해소 프로그램도 있다.
그러나 진실규명을 위해 가장 필수적인 유해 발굴과 생존자 추적 등의 작업은 거북이걸음이다. 앞서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9월26일부터 닷새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산37-1에서 유해 매장 추정 지역의 봉분 중 5기를 선별해 시굴 조사를 벌인 결과 치아와 유품으로 추정되는 단추 등을 수습하기도 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유해 발굴을 위해선 총괄 부처 격인 행안부가 ‘유해 발굴 종합계획’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발굴이 이뤄질 토지의 사용 승낙은 물론 수습과 화장, 안치 등 장사법에 따른 절차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추모·위령비 설립 등의 문제도 남아 있다. 이런 절차가 매듭지어져야 피해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사과’도 이뤄질 수 있다.
지난해 9월 경기도 안산시 선감도 선감학원 터에서 유해 발굴을 위한 개토제에 앞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조화가 놓여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하지만 행안부는 지난 5월 경기도 등 관련 기관과 피해자 대표 등을 불러 한차례 간담회를 진행했을 뿐 후속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관련 예산은 단 한푼도 확보하지 않았다. 행안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관계자는 “각 부처에 진실화해위 권고 사항의 이행계획을 요청했지만, 아직 법률 검토 등의 문제로 회신을 받지 못한 상태”라며 “조만간 권고사항 이행 및 추진 계획을 받아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진각 안산지역사연구소장은 “1956~82년의 원아대장을 분석해보니, 선감학원에는 모두 4691명이 수용됐는데 퇴원 사유가 명확하게 적힌 3459명을 제외한 1232명은 ‘기타’로 분류돼 사실상 실종 상태나 마찬가지”라며 “조속한 유해 발굴이 이뤄져야 진실규명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실화해위가 벌인 지난해 1차 시굴 조사에선 사건 현장에 135구 이상의 유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진실화해위는 오는 25일을 전후해 선감학원 터에서 2차 시굴 조사를 벌이기로 하고 최근 현장 답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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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쇳말: ‘선감학원’은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제정한 조선감화령에 근거해 경기도 안산시 선감도 일대에 1942년 만들어졌다. 조선사회사업협회가 위탁경영했고, 1945년 광복 뒤에는 ‘경기도 선감학원 조례’에 따라 경기도가 맡아 운영했다. 이곳에서는 1946년 2월부터 1982년 9월까지 부랑아 일소 및 갱생을 명분으로 경찰과 공무원들이 아동·청소년들을 강제 수용한 뒤 강제 노역, 폭언·폭행 등의 가혹 행위를 자행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22년 10월 선감학원 사건 진실규명 당시 원아대장을 확보해 신청인 167명뿐 아니라 선감학원 수용자 전원을 피해자로 인정했다.
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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