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경기도 한 지역에서 <한겨레>와 만난 이아무개(62)씨. 이씨는 경기도에서 받은 ‘선감학원 원아대장’ 등을 토대로 지난 20일 진실화해위에서 선감학원 인권침해 사건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사진 장예지 기자
이아무개(62)씨는 지금도 가끔 경기 안산시의 선감도에 간다. 그는 1970년부터 5년간 남동생과 함께 선감학원에 강제수용됐다. “너희 엄마에게 꼭 너 여기에 있다고 알려줄게”라며 섬을 탈출하려 했던 친구를 이씨는 제손으로 묻었다. “그 친구는 제가 당한 일을 알고 힘들 때마다 옆에 있었거든요. 제가 분명 묻었는데, 그 친구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너무 미안합니다.”
이씨는 지난 20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규명한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에서 피해자로 인정된 167명 중 한명이다. 고작 열 살에 남아 수용 시설이었던 선감학원 원생이 된 그는 수용 기간 성폭행 피해를 입은 성폭력 피해 생존자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담아둔 말을 꺼내기로 한 이씨를 지난 23일 경기도 한 지역에서 만났다.
그의 고통은 1970년 7월 수원역 앞에서 8살 남동생과 경찰에 붙들려 선감학원에 끌려간 뒤 시작됐다. 그의 큰형이 경찰과 만나 보호자임을 밝혔지만, 경찰은 되려 형에게 “동생들 밥 잘 먹이고 공부시켜준다”며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렇게 가족과 생이별한 이씨는 기숙사 배정을 받은 다음날부터 숙소를 관리하는 ‘방장’과 나이 많은 원생들 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어린 애들이 오면 많이 당해요. 함께 온 동생을 빌미로 위협도 해, 동생을 지키기 위해 견뎠던 시간이었어요.”
선감학원은 경기도가 직접 운영하는 시설이었지만 나이와 서열에 따라, 같은 원생들에게 기숙사 ‘사장’과 숙소 ‘방장’ 등 직책을 주고 권력을 위임하며 수용자들의 노역과 생활 전반을 통제했다. 이런 권력 관계에서 성폭력과 구타, 단체 기합은 일상적으로 발생했지만 선감학원 관리자들은 이를 묵인했고, 오히려 폭행에 가담하며 선감학원을 운영했다. 원생들이 일하는 게 마땅치 않거나 누군가 사고를 치면 선생들은 방장과 사장을 불러 혼을 냈다. 혼난 이들은 더 어린 아이들을 때렸다. “복도에 곡괭이 자루 긁는 소리가 나면 그때부터 맞는 시간이 시작되는 거예요. (방장 등이) 분이 풀릴 때까지 때리고, 기합을 받은 뒤에 밤이 되면 나는 또 다른 ‘힘든 시간’을 보낸 거예요.”
이씨는 “선생들은 분명 알고 있었지만, 묵인하고 방조했다”고 말했다. 섬을 탈출하려다 실패하면 더 큰 보복이 돌아왔다. 이씨의 고통을 알아준 유일한 친구 ‘망치’는 다시 보자고 약속하며 바다를 건너려고 했지만 싸늘한 주검이 돼 돌아왔다. 선감학원의 굳게 닫힌 문은 이씨가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을 때 열렸다. “목을 매려고 했는데, 직원이 그걸 보고 나서야 다른 곳으로 보내 준다고 하더라고요.”
선감학원은 1975년 8월, 이씨 형제를 내보내면서도 집이 아닌 경기 부천 새소년소망의집으로 전원 조처했다. 두 형제는 한달간 부천에 머물다가 인천으로 가면서 수용소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동안 가족들은 형제를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씨는 어머니도 20대에 우연히 만났다. 그러나 당시 기억은 50년이 지나도 이씨를 붙잡고 놔주지 않는다. “그때 후유증으로 화장실에 가는 것 자체가 두렵고, 사람들 속에 섞이는 것이 무서워요. 그러니 평생 제대로 된 직장을 가져보지 못한 채 세월이 갔어요. 선감학원에 있던 가해자와 직원들, 누구도 자신의 잘못을 몰라요. 나라가, 공무원이 그랬는데….” 하지만 이씨가 국가로부터 받은 도움은 지난 해부터 지원받기 시작한 병원 치료비가 전부다.
이씨가 바라는 건 진심어린 사과와 선감도에 묻힌 이들의 유해 발굴이다. 직접 묻었던 친구를 찾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다. 진실화해위는 앞서 “현장에 150기가 넘는 봉분이 남았다. 전면적인 발굴이 필요하다”고 권고했지만, 경기도는 중앙정부로 책임을 넘기는 등 실제 발굴까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 누구도 미안하다고, 그만 아프라고 말하지 않아요. 내가 피해자인데도, 그 사실 자체가 부끄러워요. 정부가, 경기도가 나서서 ‘이 사람은 피해자일 뿐이다’라고 말해준다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요.”
이날 국정감사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국감이 끝나는대로 공식 사과 등 필요한 부분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아무개씨가 경기도로부터 받은 이씨의 선감학원 원아대장. 1970년 7월 작성된 이 대장에는 ‘부모가 행방불명되었고, 이씨는 걸식 중이었다’고 기재됐지만 이씨는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씨는 “부모님은 모두 계셨고, 수원역 앞에서 일하던 형을 동생과 함께 기다리며 놀고 있던 중 단속에 붙잡혔다. 집 주소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보내 달라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폭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해당 대장에는 이씨의 나이도 13살로 잘못 기재돼 있다. 이씨 제공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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