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22일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배우 박은석. 프로그램 갈무리
“여자친구가 마음에 안 들어 해서 비글을 작은 개로 바꿨다며 무심히 말하던 동창이 1인 가구 프로그램에 고양이 두 마리와 3개월 된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며 나왔다. 동물을 사랑하는 퍼포먼스는 안 했으면 좋겠다.” 연예인 박은석씨의 대학 동기인 A씨의 말이다.
반려견에게 입양처는 세상의 전부다. 집밖으로 내몰리면 자기 힘으로 먹을 것을 구할 수도 없고, 추위를 피할 잠자리를 얻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일부에선 개는 자연상태에서 자라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반려동물이 되면서 개의 수명이 15년 이상으로 늘어난 것을 보면, 개가 인간의 품으로 들어온 것은 개 입장에선 매우 현명한 판단이었다.
그러니 버려진 반려견은 자신의 세계로부터 축출된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운 좋게 다른 곳에 입양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버려진 개들은 결말이 좋지 않다. 길에서 교통사고 등으로 죽거나, 유기견보호소에 머물다 안락사당하거나.
언론에 소개되기도 한 ‘진희’라는 진돗개를 보자. 한 차례 버려져 파주에 있는 보호소에 수 년간 머물던 ‘진희’는 운 좋게 그를 돌보던 자원봉사자에게 입양됐다. 보호소 측에선 ‘이제 진희 고생도 끝났구나’라고 좋아했지만, 그로부터 9개월 뒤 그 집에서 연락이 왔다. 진희 때문에 가족의 불화가 심해져, 더 이상 진희를 키울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보호소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진희는 파양자의 집에서 파주로 오는 차 안에서 ‘내가 뭘 잘못했지’하는 표정으로 숨죽여 왔다. 보호소 앞에서 한참 바라보며 안 들어가려고 버티다가 결국 몇 년을 지낸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진희가 받은 상처를 대체 어떻게 어루만져줄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래도 진희가 머물렀던 보호소는 매우 괜찮은 곳이라는 건 다음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다.
한 견주가 실수로 ‘로이’라는 이름의 반려견을 잃어버렸다. 백방으로 행방을 수소문하던 그는 한 유기동물보호소에서 반려견을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로이를 찾으러 갔던 그에게 보호소 측의 답변은 너무 충격이었다. 보호소에 온 지 하루만에 로이가 죽었다는 것이다.
사체라도 가져가겠다고 했더니 너무 훼손돼 인도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재차 사체 인도를 요구한 끝에 그가 본 광경은 충격이었다. “몸 부분은 온데간데 없고 머리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그 꽁꽁 언 사체를 보니 눈물이 쏟아졌다.”
우리 안의 상황이 워낙 열악하다보니 개들끼리 싸움이 붙었고, 결국 죽고 만 로이를 다른 개들이 뜯어먹은 모양이었다. 로이 견주의 말이다. “시설을 보니 강아지의 대소변이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었고, 9마리 이상의 강아지가 있는 곳엔 작은 그릇 하나뿐이었으며 내부에 식수조차 없었다. 일부 강아지들은 갈비뼈가 보일 만큼 말라 있었다.”
일부 보호소들은 보호의 기능을 상실한, 안락사를 기다리는 공간이 된 지 오래다. 게티이미지뱅크
사정이 이렇다보니 개들은 죽은 로이를 뜯어먹었으리라. 그 견주는 청와대에 해당 보호소를 고발하는 국민청원을 올렸지만, 이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보호소들 대부분이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반려견 파양은, 정말 어쩔 수 없을 때가 아니라면,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단지 여자친구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개를 파양했다니, 박은석에게 있어 반려동물은 어떤 존재인 것일까? 다시 A씨의 말을 들어보자.
“동물을 물건 취급하거나 이미지 관리용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진짜 싫다.” 처음에는 상습 파양 의혹을 부인하던 박은석은
‘푸들, 올드잉글리시쉽독, 그리고 고양이 두 마리’를 파양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과문을 발표한다.
이들 반려동물이 지인의 손에 길러지고 있다니 다행이긴 하지만, 이렇게 파양을 거듭했던 이가 원할 때 언제든 반려동물을 입양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개를 입양하겠다고 했을 때, 그 당사자가 어떤 사람인지 묻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독일이 ‘반려동물의 천국’인 이유는 원할 때 언제든 반려동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이어서가 아니다.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으로 구성된 자격증 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모든 가족의 동의 및 서명’ ‘산책 가능 횟수 및 시간 확인’ 등등 좀 지나치다 할 정도로 까다로운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반려견 입양이 가능하다. 이런 힘든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독일의 반려견 파양 비율은 2%에 불과하다.
그렇게 본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선선히 개를 내주는 펫샵이 입양의 가장 흔한 경로인 우리나라가 ‘반려견의 지옥’이 되는 건 필연적이다. 한겨레 애니멀피플 팀에서
번식장-경매장-펫샵으로 이어지는 사슬을 끊고자 르포 기사를 쓰고, 이를 <선택받지 못한 개의 일생>이란 책으로 만들어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이게 정책이나 법규로 이어지진 않은 게 아쉽다.
2018년 4월30일에 쓴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거짓말’을 시작으로 54편의 글을 썼다. 개 키우는 게 아이 입양만큼 큰일이니, 개를 키울 때 좀 신중하게 생각하자는 게 연재를 한 이유였지만, 그간 쓴 글들이 목적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모르겠다. 귀한 지면을 내주신 한겨레신문과 내 글에 칭찬과 비판을 해주신 독자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서민 단국대 교수
※지난 3년 여 간 대한민국 반려견과 반려인의 기쁨과 슬픔, 고민을 전했던 ‘서민의 춘추멍멍시대’가 이번 회차를 끝으로 종료됩니다. 그동안 서민의 춘추멍멍시대를 아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2018년 4월부터 매달 책임있는 반려인의 자세를 나눠준 서민 교수님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