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지자체 동물보호센터에서 보호기간이 끝난 동물들이 대부분 ‘고통사’ 당했다는 조사가 발표됐다.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세금으로 운영되는 지자체 동물보호센터에서 보호기간이 끝난 동물들 대부분이 ‘고통사’ 당했다는 조사가 발표됐다. 지자체를 대신해 동물보호센터를 운영한 위탁업자들의 자격 논란도 제기됐다.
동물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는 지난해 유기동물보호소 47곳의 운영 실태를 조사하고 해결 방안을 제시한 ‘전국 시군 동물보호센터 실태조사 및 개선활동 보고서’를 19일 발간했다.
조사 대상은 최근 3년간 유기유실동물이 급증한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세종시 등 4개 지자체의 시군 가운데 안락사·자연사·입양 비율이 전국 평균치에 비해 현저히 차이가 나거나 동물학대 제보가 많은 곳을 선별했다. 실태 조사는 2020년 7월부터 6개월 간 총 114회의 현장 방문을 통해 진행됐다.
비글구조네트워크(이하 비구협)는 “지난 5년 간 전국 지자체 동물보호센터 270여 곳을 방문한 경험을 바탕으로 2020년 하반기 목적사업으로 방문 조사를 벌이게 됐다”며 “보호소 위탁제도의 문제점으로 파악된 열악한 환경과 고통사 의혹 등의 정확한 실태 파악을 목적으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지역별 유실, 유기동물 증감 현황. 비글구조네트워크
이들이 보고서에서 지적한 문제점은 △안락사 규정 미준수 △열악한 보호·환경 시설 △수익구조의 위탁사업 △담당 공무 인력 부족 및 비전문성 △중성화 미비로 인한 시골개의 들개화 △지자체의 유기동물 문제인식 부족 등이었다.
특히 보호소의 안락사 규정 미준수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현행 동물보호법에서는 안락사 시행 때 ‘마취를 실시한 후 심장정지, 호흡마비를 유발하는 방법’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지만, 47곳 가운데 이 규정을 준수한다는 근거(마약류 관리대장이나 약물 사용 기록)를 제시한 곳은 단 한곳도 없었다. 동물보호센터 운영지침에 따른 안락사 격리실을 갖춘 곳도 단 7곳 뿐이었다.
유영재 비구협 대표는 “고통사를 목격했거나 직접 인정한 곳은 7곳이었다. 그러나 다른 보호소들도 법적 의무사항인 마취제 사용기록이나 약물 사용기록들이 전무한 상태였다. 규정 위반이 없었던 4곳을 제외한 90%의 보호소들에서 마취 없이 고통사를 시행했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8월 전남 보성군 보호소에서는 안락사 당한 유기견 사체를 담은 포댓자루 안에서 아직 살아있는 개가 구조되기도 했다.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고통사를 시행하는 보호소들이 주료 사용한 약물은 근이완제인 ‘석시콜린’이었다. 석시콜린은 의식 소실이나 진통 효과가 없어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고통스러운 죽음을 유발하기 때문에 미국수의사협회(AMVA)의 ‘동물 안락사 가이드라인’에서는 허용불가로 분류되어 있다.
또한 국내 지자체 보호소의 90%를 차지하는 민간 위탁제도도 문제로 지적됐다.(전국 전체 276개소 가운데 247개소가 민간위탁형) 보고서는 개농장을 방불케 하는 열악한 사육환경의 근본적 원인으로 현실성 없는 유기동물 예산과 수익구조형 위탁업자 선정, 사업자간 재위탁 허용 등을 꼽았다.
실제로 위탁업자들의 직업별 현황을 살펴보면, 절반 이상이 수익을 우선할 수밖에 없는 개인 사업자들로 이뤄져 있었다. 수의사가 운영하는 곳이 16곳으로 가장 많았고, 일반 사업자가 운영하는 곳이 14곳으로 두번째로 많았다. 단지 동물을 잘 다룬다는 이유만으로 사업자로 선정된 이들 중에는 전·현직 개농장주(3곳), 번식업자(3곳), 축산업자(3곳)뿐 아니라 사냥업자(3곳)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보고서는 “동물보호법 제15조 제4항에는 위탁자의 대상을 농림축산식품부령이 정하는 ‘기관이나 단체’로 한정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지나치게 낮은 예산으로 위탁자를 선정하다 보니 지자체 동물보호센터를 책임지고 운영할 기관과 단체가 없는 실정으로 대부분 일반 개인이나 지역 내 대동물 수의사 등과 위탁을 맺게 된다”고 적고있다.
사업자가 재위탁을 줄 수 있는 것도 제도의 허점으로 드러났다. 수의사가 위탁사업자로 나선 16곳의 보호소 가운데 6곳은 수의사가 개농장주나 번식업자에게 재위탁을 맡기고 있었다. 이런 경우 수의사나 재위탁업자가 수익을 나눠 갖는 구조가 되어 운영비용이 더 적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비구협은 “현장 방문 당시 재위탁 보호소들은 다른 보호소들과 비교해도 전국 최악 수준으로 열악했다. 수의사가 운영한다고 해도 보호소 내 병든 동물을 치료한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열악한 시 보호소 개선 방안으로 안락사 규정 위반 시 처벌조항 마련 및 안락사 절차 구체화, 보호소 직영화 전환, 위탁자 개선강화, 현실적인 동물보호센터 예산 편성, 마당개(시골개) 중성화 사업 등을 제시했다.
지난 7월 전북 정읍시 유기동물보호소는 유기견들을 인근 개농장에 팔아온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사진 정읍반려동물단체 제공
비구협에 따르면, 이번 실태조사를 이후 규정 위반이 확인된 41곳의 보호소 가운데 18곳은 운영을 지자체 직영으로 전환했거나 전환 계획을 발표했다. 14곳은 위탁시설 및 운영이 개선된 점이 재방문을 통해 확인됐다.
유영재 대표는 “국민의 동물권 인식은 해마다 향상하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유기동물이 급증하다는 것은 현 유기동물 시스템의 상당한 문제를 시사한다. 국가 차원에서의 유실유기동물 제도의 재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보고서 전문은
비구협 네이버 카페에서 받아볼 수 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