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셰퍼드종 반려견 두 마리를 키우고 있다. 바이든 당선인은 이들과 함께 고양이 한 마리도 백악관에 데려갈 예정이다. AP 연합뉴스
대선에서 패배한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면에서 특이한 분이셨지만, ‘개’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도 그랬다. 트럼프는 100년만에 처음으로 개를 키우지 않은 대통령이었으니 말이다. 개 두 마리를 키운 오바마를 비롯해서 미국의 역대 대통령은 모두 백악관에서 개를 키웠다.
이번에 당선된 조 바이든 역시 ‘챔프’와 ‘메이저’라는 독일 세퍼드를 기르고 있다. ‘챔프’는 2008년부터 길렀고, 바이든이 부통령으로 재임하던 2009년부터 2017년 1월까지 부통령 관저에서 생활한 바 있다. 또 다른 세퍼드 ‘메이저’는 유기견으로, 보호소 생활을 하다 2년 전 바이든에게 입양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시간이 없다”며 반려견 입양을 거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9년 11월24일 마이크 펜스 부통령(왼쪽에서 2번째), 부인 멜라니아 여사(오른쪽)과 함께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군견 '코넌'을 공개하고 있다. 코넌은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 제거 작전에 투입돼 공을 세웠다. EPA 연합뉴스
당연한 얘기지만, 바이든은 백악관에 들어갈 때 이 두 마리를 데리고 들어간다고 밝힌 바 있다. 전체 가구의 63.4%가 개를 키울 만큼 가족으로서 개의 지위가 확립된 미국인만큼, 개를 키우는 건 정치인인 대통령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대통령 후보가 개를 안고 있는 사진을 본다면, 반려인 중 일부는 그 후보에게 투표할 테니 말이다.
꼭 이런 것 때문에 역대 대통령이 개를 키웠다고 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공화당이 늘 치열한 대결을 벌이는 미국 대선을 떠올리면 반려인의 표는 중요한 선거전략이 될 수 있다. 사정이 이러니, 트럼프가 개를 키우지 않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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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시간이 없네요”
우리나라 언론사 중 일부는 트럼프가 개를 기르지 않는 이유를 “위생관념에 철저해서”라고 썼다. 하지만 이는 미국 같으면 욕을 바가지로 먹었을 만한 기사. 개가 더럽다는 부정적인 선입견을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치인은 수많은 사람을 만나 스킨십을 해야 하는 직업이니, 트럼프에게 결벽증이 있다면 진작 정치를 때려치웠어야 한다.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 2019년, 텍사스 엘파소에서 열린 캠페인 집회에서 트럼프는 냄새로 마약을 감지하는 세퍼드 얘기를 한 뒤 다음과 같이 말했다.
트럼프: 한 마리 가지는 것도 괜찮을 텐데, 솔직히 그럴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백악관 잔디밭에서 개와 산책하면 어떻게 보일까요?
참석자들: 좋아요!
트럼프: 잘 모르겠습니다. 나로선 약간 가식적인 느낌이 드네요.
실제로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한 자선사업가가 개를 입양할 것을 권한 적 있다. 트럼프는 거절했다. “개를 싫어하지는 않는데, 도저히 시간이 없네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서 부적합한 이유는 한둘이 아니겠지만, 이 발언만큼은 ‘A+’를 줄 만하다.
개를 기르는 데는 돈과 노력이 필요하다. 제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는 건 당연하고, 시시때때로 놀아줘야 한다. 개는 말을 하지 못하니, 어디 아픈 곳이 있는 게 아닌지 수시로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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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반려인의 개는 불행할 수도
그런데 견주가 너무 바쁘다면 개는 방치되기 마련이다. 텅 빈 집에서 견주를 찾으며 컹컹 짖는 개를 떠올려 보라. 애타게 견주를 찾다 결국 체념에 빠지고, 우울증이 찾아온다. 운이 없는 경우라면 집에서 내쫓겨 유기견보호소에 가고, 거기서 최후를 맞을 수도 있다. 돈은 좀 없더라도 시간이 많은 이가 바빠 죽겠는 부자보다 훨씬 더 좋은 견주인 건 이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은 자기 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의 일에 참견해야 하는 존재, 모르긴 해도 지구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아닐까. 키우던 개를 데리고 백악관에 들어가는 바이든도 칭찬해야 마땅하지만, 개에게 사랑을 쏟을 여력이 안 된다며 지지율을 올려줄 반려견 입양을 거절한 트럼프도 칭찬받을 자격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진돗개 두 마리를 입양했고 그들에게서 새끼 7마리가 태어났다.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면서 그들도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사진 박 전 대통령 페이스북 페이지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도 개를 새로 입양하는 분들이 있다. 최근의 경우만 봐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진돗개 두 마리를 입양했고, 문재인 대통령 역시 ‘토리’라는 유기견을 입양했다. 난 이 두 분 다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반려견의 지위는 열악하기 짝이 없다. 학대받아 목숨을 잃는 개가 한둘이 아니며, 심지어 반려견과 산책을 할 때 “나는 개를 싫어하는데 왜 개를 밖으로 데리고 나오느냐?” 같은 위협적인 발언을 듣는 경우도 흔하다. 이런 와중에 대통령이 개를 안고 다니는 모습이 목격된다면, 국민은 돌보지 않고 개만 신경쓴다는 비판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둘째, 대통령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다. 주무실 시간도 없는 와중에, 개한테 정성을 쏟을 시간 여유가 있을까? 원래 개를 좋아해서 키우던 분이라도 ‘청와대 오실 때 다른 데 맡기고 오세요’라고 할 판에, 새로 개를 입양해 애정관계를 형성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대통령이 개를 잘 돌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개들은 어떻게 됐을까. 박 전 대통령에게 입양됐던 진돗개 두 마리는 하필이면 암컷과 수컷이었고, 중성화도 안한 상태였다. 그들로부터 7마리의 새끼가 태어나 개는 총 9마리가 됐지만, 박 전 대통령은 탄핵 뒤 삼성동 사저로 가면서 그 개들을 놓고 갔고, 결국 그 개들은 뿔뿔이 분양되는 신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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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토리는 어떻게 될까? 최근 기사를 검색해봐도 문대통령이 최근 토리를 안고 찍은 사진은 나오지 않는다. 청와대 직원들이 토리를 돌보고 있지는 않을까? 문 대통령이 퇴임할 때 토리도 함께 데려가기를 바라는 이는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당선되면 유기견을 입양하겠다고 밝혔고, 당선된 뒤인 2017년 7월26일 유기견 ‘토리’를 입양했다. 사진 청와대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간주한다 해도, 다음은 안타깝다. 문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개들의 삶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 개식용 문화는 여전하고, 여전히 많은 개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신음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개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노력해 주시길 바라는 취지에서, 토리가 청와대에 들어간 2017년 7월26일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을 첨부한다.
“해마다 백만 마리 정도가 새 주인을 찾아가는데 그 중 또 삼십만 마리가 버려지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이제는 유기동물도 사회 전체가 돌봐주고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서민 단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