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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마취없이 ‘고통사’…유기동물 보호시스템이 무너진다

등록 2020-11-12 16:01수정 2020-11-12 16:39

[애니멀피플] 기고/유영재 비글구조네트워크 대표
‘안락사 대기소’로 전락한 지자체 유기동물센터
열악한 영호남 보호소 환경…위탁업자 배만 불려
지난 7월 전북 정읍시 유기동물보호소는 유기견들을 인근 개농장에 팔아온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사진 정읍반려동물단체 제공
지난 7월 전북 정읍시 유기동물보호소는 유기견들을 인근 개농장에 팔아온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사진 정읍반려동물단체 제공

지난 9월18일 유기견 24마리를 마취도 하지 않고 무더기로 고통스럽게 죽였다는 제보를 받고 경남 의령군 위탁 유기동물보호소(동물보호센터)로 향했다.

현장에서 당시 상황이 담긴 동영상을 보니, 수의사로 보이는 세 명의 남성 중 한 명이 진돗개 종의 어미 개 한 마리를 목줄로 제어하고 있었다. 다른 수의사는 길이가 1m가 넘는 대형 주사기를 어미 개의 목덜미에 사정없이 찌르고 있었다.

어미 개는 비명을 지르며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꼬꾸라졌다. 그리고 옆에서 기다리던 담당 공무원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죽은 개를 붉은 마대 자루에 넣고 끈으로 단단히 묶었다. 마치 개 도살장에서 도살 전 전기충격기로 개들을 쓰러트리는 모습과 흡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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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마저 허용되지 않는 국내 보호소

어미를 죽인 수의사는 어미 개를 죽인 뒤 그 자리에 남아 있던 새끼 7마리에게 다가갔다. 새끼들은 2개월도 채 되지 않은 강아지였다. 강아지의 뒷다리를 잡아 거꾸로 들어올리더니 오른손에 쥐고 있던 주사기로 새끼의 엉덩이에도 주삿바늘을 꽂았다.

강아지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차가운 바닥에 던져졌다. 한 명이 하기에는 버거웠던지 다른 수의사가 목장갑을 끼고 거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미 개에 이어 새끼 강아지 7마리도 차례로 죽음을 맞았다. 진돗개 식구 8마리가 죽어가는 시간은 2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날 의령군에서는 총 24마리 유기견들이 안락사됐다. 사전 마취도 없이 곧바로 근육이완제인 ‘석시콜린’을 투여했으므로,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고통사’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석시콜린이 체내에 들어가면 호흡근이 마비되고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숨을 못 쉬기 때문에 고통스럽게 죽게 된다.

전남 보성에서는 안락사 전 마취제 투여 없이 ‘고통사’ 당한 유기견들의 사체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전남 보성에서는 안락사 전 마취제 투여 없이 ‘고통사’ 당한 유기견들의 사체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보성군 유기견 보호소 담당 수의사가 안락사에 사용한 약물은 근육이완제로, 안락사 시행 전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마취제는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보성군 유기견 보호소 담당 수의사가 안락사에 사용한 약물은 근육이완제로, 안락사 시행 전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마취제는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날 24마리가 안락사되는 끔직한 장면을 현장에 있던 나머지 45마리 개가 지켜봤다.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은 ‘같은 종류의 다른 동물들이 보는 앞에서 동물을 죽이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했을 경우, 동물학대죄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동물보호법은 또한 유기동물에 대한 ‘인도적 처리(안락사)’도 규정하고 있는데,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반드시 마취제를 사용한 후 심정지 약물이나 근육이완제 등을 사용하도록 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 규정을 어기더라도 처벌 규정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전남 보성군의 경우에도 지난 8월12일 공고가 끝난 개체 97마리를 마취없이 근육이완제를 투여해 안락사하려다 적발당했다. 고통사 한 개체들의 숨이 끊어졌는지 확인도 없이 마대 자루에 넣은 탓에 멀쩡하게 살아있는 개가 매몰 전 발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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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 이용한 수익에 열 올리는 위탁업자들

두 곳뿐이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 경남 고성군, 경북 울진군도 다른 개들이 보는 앞에서 마취제 없이 고통사를 시행한 사실이 확인됐다. 유기동물보호소의 위탁업자인 해당 수의사들은 수사기관에 무더기로 형사고발 됐다.

원칙적으로는 시군 지자체 보호소는 의무적으로 격리실을 구비해야 한다.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의 안락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번 동물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이하 비구협)가 유기동물보호소 실태조사를 위해 방문한 50여 곳 가운데 격리실이 설치되어 있는 곳은 단 6곳뿐이었다.

개농장을 방불케 하는 전북 정읍시 유기동물 보호소 내부.
개농장을 방불케 하는 전북 정읍시 유기동물 보호소 내부.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걸까. 우리나라 유기동물 보호시스템은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공보호소가 기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자체가 예산과 인력의 문제로 유기견보호 업무를 개인이나 기관에 위탁을 하고 있다. 대신 보호소 운영에 대한 지도·감독을 지자체가 맡는다.

수익 극대화가 목표인 위탁업자는 순수 동물보호에 큰 관심이 없다. 지자체로부터 받는 보조금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한 예로 지난 7월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전북 정읍시에서 터졌다. 전북 정읍시에서 보호하던 유기견들을 개도살 농장으로 팔아오던 위탁업자가 적발됐다.(▶바로가기: 유기견을 개고기로? 집 잃은 개 팔아넘긴 시 보호소)

보호소에 입소한 유기동물을 입양이나 안락사로 행정 처리하고, 실제로는 개농장으로 되판 것이다. 이 위탁업자 역시 유기동물보호소를 수익사업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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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용으로 팔리고, 굶어죽고, 병들어 죽고…

지자체 유기동물보호소 위탁업자가 유기견을 식용개로 되파는 사건은 비단 올해만의 일이 아니다. 비슷한 일이 지난 10년간 꾸준히 지적되어 왔다. 사건이 일어나면 떠들썩했다가 시간이 지나 조용해지면 다시 고개를 드는 악순환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직 위탁업을 했던 한 수의사는 비구협에 공고기간(보호기간) 중에 동물들에게 사료를 거의 주지 않았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그는 “사료를 먹고 동물들이 배변 활동을 하면 보호소를 청소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룟값이 아까워서라기보다 보호소 내 견사를 청소하려면 인건비가 많이 든다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현재 시군으로부터 받는 위탁보조금 수준으로는 우리가 기대하는 말끔한 환경 제공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고기간 10일 지나면 죽을 존재들인데 굳이 그렇게 치료하고 보살필 필요가 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다른 영호남 지역 보호소와 다름 없이 열악한 환경이었던 울진군 보호소.
다른 영호남 지역 보호소와 다름 없이 열악한 환경이었던 울진군 보호소.

다른 개들이 보는 앞에서 고통사를 시행한 것을 시인하는 위탁사업자(수의사).
다른 개들이 보는 앞에서 고통사를 시행한 것을 시인하는 위탁사업자(수의사).

이렇게 무리하게 수익에만 열을 올리다 보니 사룟값을 10배로 부풀려서 시 보조금을 챙긴 고성군의 위탁업자(수의사)는 지난 10월 횡령죄로 고발되기도 했다.

경남의 또 다른 위탁업자는 수의사에게 주는 안락사 비용을 아끼려고 동물들을 방치해 죽게 했다. 이곳은 시로부터 받는 보조금에 포획, 보호비, 안락사와 폐기물처리 비용을 한꺼번에 받아 관리 운영되는 곳이었다. 그는 두당 안락사 비용 3만원이 아까워 파보나 홍역 등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을 8년간 방치했다. 자연사로 분류되는 질병으로 죽을 경우, 안락사 비용을 온전히 본인이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보호소의 지난 3년간 자연사(폐사) 비율은 80%에 달한다.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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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개와 유기견으로 전락한 ‘시골 개들’

농림축산식품부의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국내 유기동물의 숫자는 약 13만 마리다. 지난 3년 전 대비 32%의 큰 폭으로 증가했다. 원인 분석을 위해 지역별로 다시 세부 통계를 내어보니 주목할만한 점이 발견됐다.

국내 8대 도시의 증가율은 평균 6%대로 증가세가 뚜렷하지 않았으나 지방 9개 도의 증가율은 48%에 달했다. 지방 유기동물 증가율은 도시보다 월등히 웃도는 수치를 보였다.

전국 지방 9개도 중에서 호남권과 영남권만 놓고 본다면 증가율이 무려 80% 이상으로, 결국 최근 3년간 우리나라 유기견 증가의 원인은 경상남북도와 전라남북도인 영호남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전국 시군보호소 실태조사를 진행중인 비구협은 이러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영호남권 위주로 시군보호소를 차례대로 50곳을 방문했다. 결과는 다소 놀라웠다. 영호남권에서 유기견으로 등록 공고된 대부분의 개들은 일명 목줄 1m에 묶인 삶을 사는 ‘시골 개’들이었다. 펫숍에서 품종견을 사서 유기하는 도시의 패턴과는 달랐다. 그리고 이 가운데 3개월 미만의 새끼 강아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 유기견의 적게는 30%, 많게는 50%를 차지했다.

비구협의 실태조사 뒤 보호소 시설을 새로 정비한 고성군 보호소.
비구협의 실태조사 뒤 보호소 시설을 새로 정비한 고성군 보호소.

새끼 강아지가 대부분 버려지는 이유는 뭘까. 유추할 수 있는 원인은 지방 소도시 농가들이 더이상 농가소득용으로 개를 키우지 않는 다는 점이었다. 최근 동물판매업 등록제가 시행되면서 새끼 동물들을 재래시장에서 거래할 판로가 막혔기 때문이다. 또한 식용개의 소비도 꾸준히 감소 추세에 있다보니, 더이상 시골에서도 용돈벌이로 개를 키우려 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값이 없어져 버린’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기르던 개가 새끼를 낳아도 아무도 가져가려 하지 않고, 애물단지로 전락해린다. 골칫덩이가 된 새끼 강아지들은 무더기로 타지역에 유기되거나 방치돼 시군 보호소로 흘러들어오게 된다. 또 유실·유기된 시골개들이 들개로 살아가며 자체번식을 하고, 마을 농가에 피해를 끼치면서 들개화된 개와 새끼들 역시 보호소로 포획당해 들어온다. 유기견 급증의 원인은 ‘중성화 되지 않은 시골개’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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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 문제 전환점에 서다

국내 유기견 문제에 대한 정부의 정책 변화가 시급하다. 비구협이 진단한 가장 큰 문제점은 △위탁제도로 인한 수익구조형의 동물보호소가 대부분이라는 것 △안락사 절차를 무시해도 처벌 규정이 없다는 점 △최근 유기견 급증의 실제 요인이 중성화되지 않은 시골 개라는 점이었다.

정부는 이러한 위탁제도의 폐해를 빨리 깨닫고 위탁제도를 원점에서 검토해 지자체 보호소의 직영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또한, 동물보호법 제22조에 명시된 안락사(인도적 처리) 규정을 위반할 시 처벌 규정도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아울러 시골개의 중성화 사업과 함께 동물등록 의무화를 현재 도시뿐만 아니라 읍면 소재의 시골까지 조속히 확대해야 할 것이다.

유기동물 문제는 단지 ‘동물’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문제이다. 반려동물은 이제 더 이상의 개인의 소유물이라기보다는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활동을 하고 있다. 공원을 나가면 싫든 좋든 산책을 나온 개들을 만나게 되고, 관리가 소홀한 개들에 의한 물림 사고 같은 대인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유기는 교통사고를 유발하거나, 농가 피해를 입히고 한다. 유기견 문제를 사회문제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다.

유영재 비구협 대표
유영재 비구협 대표

지금까지 우리나라 동물보호소가 유기동물에 대한 제2의 삶을 찾아주는 사회적 장소가 아니라 안락사 대기소 같은 역할에만 치중해왔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 못 할 사실이다.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은 이상 우리나라 유기동물 보호 시스템은 이대로 붕괴될 수 밖에 없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이제라도 실효적으로 지속 가능하고 인도적인 대안이 필요할 때이다.

유영재 비글구조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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