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기고/유영재 비글구조네트워크 대표
‘안락사 대기소’로 전락한 지자체 유기동물센터
열악한 영호남 보호소 환경…위탁업자 배만 불려
‘안락사 대기소’로 전락한 지자체 유기동물센터
열악한 영호남 보호소 환경…위탁업자 배만 불려
지난 7월 전북 정읍시 유기동물보호소는 유기견들을 인근 개농장에 팔아온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사진 정읍반려동물단체 제공
‘안락사’마저 허용되지 않는 국내 보호소 어미를 죽인 수의사는 어미 개를 죽인 뒤 그 자리에 남아 있던 새끼 7마리에게 다가갔다. 새끼들은 2개월도 채 되지 않은 강아지였다. 강아지의 뒷다리를 잡아 거꾸로 들어올리더니 오른손에 쥐고 있던 주사기로 새끼의 엉덩이에도 주삿바늘을 꽂았다. 강아지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차가운 바닥에 던져졌다. 한 명이 하기에는 버거웠던지 다른 수의사가 목장갑을 끼고 거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미 개에 이어 새끼 강아지 7마리도 차례로 죽음을 맞았다. 진돗개 식구 8마리가 죽어가는 시간은 2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날 의령군에서는 총 24마리 유기견들이 안락사됐다. 사전 마취도 없이 곧바로 근육이완제인 ‘석시콜린’을 투여했으므로,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고통사’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석시콜린이 체내에 들어가면 호흡근이 마비되고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숨을 못 쉬기 때문에 고통스럽게 죽게 된다.
전남 보성에서는 안락사 전 마취제 투여 없이 ‘고통사’ 당한 유기견들의 사체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보성군 유기견 보호소 담당 수의사가 안락사에 사용한 약물은 근육이완제로, 안락사 시행 전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마취제는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유기견 이용한 수익에 열 올리는 위탁업자들 두 곳뿐이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 경남 고성군, 경북 울진군도 다른 개들이 보는 앞에서 마취제 없이 고통사를 시행한 사실이 확인됐다. 유기동물보호소의 위탁업자인 해당 수의사들은 수사기관에 무더기로 형사고발 됐다. 원칙적으로는 시군 지자체 보호소는 의무적으로 격리실을 구비해야 한다.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의 안락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번 동물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이하 비구협)가 유기동물보호소 실태조사를 위해 방문한 50여 곳 가운데 격리실이 설치되어 있는 곳은 단 6곳뿐이었다.
개농장을 방불케 하는 전북 정읍시 유기동물 보호소 내부.
식용으로 팔리고, 굶어죽고, 병들어 죽고… 지자체 유기동물보호소 위탁업자가 유기견을 식용개로 되파는 사건은 비단 올해만의 일이 아니다. 비슷한 일이 지난 10년간 꾸준히 지적되어 왔다. 사건이 일어나면 떠들썩했다가 시간이 지나 조용해지면 다시 고개를 드는 악순환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직 위탁업을 했던 한 수의사는 비구협에 공고기간(보호기간) 중에 동물들에게 사료를 거의 주지 않았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그는 “사료를 먹고 동물들이 배변 활동을 하면 보호소를 청소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룟값이 아까워서라기보다 보호소 내 견사를 청소하려면 인건비가 많이 든다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현재 시군으로부터 받는 위탁보조금 수준으로는 우리가 기대하는 말끔한 환경 제공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고기간 10일 지나면 죽을 존재들인데 굳이 그렇게 치료하고 보살필 필요가 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다른 영호남 지역 보호소와 다름 없이 열악한 환경이었던 울진군 보호소.
다른 개들이 보는 앞에서 고통사를 시행한 것을 시인하는 위탁사업자(수의사).
들개와 유기견으로 전락한 ‘시골 개들’ 농림축산식품부의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국내 유기동물의 숫자는 약 13만 마리다. 지난 3년 전 대비 32%의 큰 폭으로 증가했다. 원인 분석을 위해 지역별로 다시 세부 통계를 내어보니 주목할만한 점이 발견됐다. 국내 8대 도시의 증가율은 평균 6%대로 증가세가 뚜렷하지 않았으나 지방 9개 도의 증가율은 48%에 달했다. 지방 유기동물 증가율은 도시보다 월등히 웃도는 수치를 보였다.
비구협의 실태조사 뒤 보호소 시설을 새로 정비한 고성군 보호소.
유기견 문제 전환점에 서다 국내 유기견 문제에 대한 정부의 정책 변화가 시급하다. 비구협이 진단한 가장 큰 문제점은 △위탁제도로 인한 수익구조형의 동물보호소가 대부분이라는 것 △안락사 절차를 무시해도 처벌 규정이 없다는 점 △최근 유기견 급증의 실제 요인이 중성화되지 않은 시골 개라는 점이었다. 정부는 이러한 위탁제도의 폐해를 빨리 깨닫고 위탁제도를 원점에서 검토해 지자체 보호소의 직영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또한, 동물보호법 제22조에 명시된 안락사(인도적 처리) 규정을 위반할 시 처벌 규정도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아울러 시골개의 중성화 사업과 함께 동물등록 의무화를 현재 도시뿐만 아니라 읍면 소재의 시골까지 조속히 확대해야 할 것이다. 유기동물 문제는 단지 ‘동물’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문제이다. 반려동물은 이제 더 이상의 개인의 소유물이라기보다는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활동을 하고 있다. 공원을 나가면 싫든 좋든 산책을 나온 개들을 만나게 되고, 관리가 소홀한 개들에 의한 물림 사고 같은 대인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유기는 교통사고를 유발하거나, 농가 피해를 입히고 한다. 유기견 문제를 사회문제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다.
유영재 비구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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