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감각과 공간 인식 능력이 뛰어난 고양이는 신경의학 분야 실험에 동원된다. 지난 3년간 국내에서 모두 1256마리가 실험에 이용됐다. 게티이미지뱅크
인간을 위해 귀가 먼 고양이들이 있다. 한 대학병원에서 멀쩡한 고양이의 귀를 멀게 한 뒤, 두개골에 인공장치를 삽입하는 실험이 진행됐다. ○○대학병원 이비인후과 ㄱ교수 연구팀은 2015년부터 3년간 ‘인공와우(달팽이관) 인식기 연구’를 진행하며 6마리의 고양이를 실험에 이용했다. 이 과정에서 고양이들은 1년 넘게 방치됐고,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되다가 안락사 됐다. 고양이들을 정식 실험동물공급업자가 아닌 ‘고양이 장수’로부터 매입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국내서는 낯선 ‘고양이 실험’의 존재가 드러나게 된 것은 해당 연구에 참여했던 ㄴ씨가 동물단체에 실험에 대해 제보하면서 시작됐다. 지난달 3월초 동물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이하 비구협)는 ‘실제로 불법적인 고양이 실험이 있었다’며 실험실 사육장 속 고양이 사진과 제보자의 ‘연구원 일기’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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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멀게 하는 인공와우 실험
애니멀피플이 입수한 ㄱ교수의 ‘동물실험계획서’를 보면, 해당 연구는 고양이의 왼쪽 귀를 멀게 한 뒤 인공와우를 설치해 고양이의 뇌 변화를 관찰하는 실험이다. 인공와우란 난청환자들의 손상된 청각 신경에 전기적 자극을 줘서 청력 회복을 돕는 장치다. ㄱ교수 연구팀은 실험에서 고양이들의 왼쪽 귀를 약물로 난청으로 만든 뒤 귀 뒤를 절개해 인공와우 장치를 두개골에 이식했다.
국내 한 대학병원에서 멀쩡한 고양이의 귀를 멀게 한 뒤, 두개골에 인공장치를 삽입하는 실험이 진행됐다.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고통등급 D’에 해당하는 실험이었다. 동물실험을 하는 연구기관은 사전에 실험계획서를 동물윤리위원회에 제출한 뒤 승인을 거쳐야 실험을 할 수 있다. 이때 해당 실험을 통해 동물이 받는 고통 정도에 따라 A~E까지 범주를 둬 등급을 나누고 있다.
고통등급 D 실험은 동물에게 피할 수 없는 상당한 고통을 주지만 진통제, 마취제를 통해 고통을 경감시켜줄 수 있는 실험을 말한다. 농림축산검역본부 통계를 보면, 지난 3년간 국내에서 모두 1256마리의 고양이가 동물실험에 이용되었다. 이중 63%인 789마리가 극심한 고통의 실험(고통등급 D와 E)에 이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국내서는 아직 ‘고양이 실험’이 낯설지만 고양이는 의학 실험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비구협에 따르면, 청각과 시각이 뛰어난 고양이는 주로 감각 시스템과 신경과학을 연구하는 모델로 이용된다. 균형감각과 공간 인식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에 신경의학 분야에서는 고도로 발달한 고양이의 감각을 중요한 연구모델로 여긴다. 비구협은 “특히 야간 사냥에 적합하도록 발달한 고양이의 청각은 전 세계적으로 인공와우를 개발하는 실험에 많이 활용되어 왔다”고 전했다.
2017년 국제동물권단체 페타가 폭로한 미국 한 대학교의 고양이 실험 모습. 페타 제공
2017년 국제동물권단체 페타가 폭로한 미국 한 대학교의 고양이 실험 모습. 페타 제공
실제로 2017년 국제동물권리단체 페타(PETA)는 미국 여러 대학에서 벌어지는
잔인한 고양이 실험의 실태를 폭로해 해당 실험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미국의 인공와우 실험에서 고양이들은 의도적으로 귀머거리가 된 뒤 두개골에 구멍이 뚫리고, 눈에 강철 코일이 이식됐다. 시신경 연구에서는 얼굴이 잘리고, 눈이 제거되기도 했다. 그리고 실험을 마친 고양이들은 모두 안락사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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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실험” 학대받은 고양이들
2017년 ㄱ교수 연구팀의 ‘인공와우 이식기 실험’에서 귀가 먼 고양이는 모두 6마리로 추정된다. 실험을 위해 고양이들은 인위적으로 귀가 멀고, 생살이 찢겨야 했지만 실험이 제대로 진행됐는지는 미지수다.
제보자 ㄴ씨는 2017년 7월 당시 실험이 여러 이유로 중단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진행 중이던 실험이 장기간 중단되거나 변경사항이 생기면 동물실험을 관리하는 윤리위에 변경신청서를 제출하거나, 실험을 종료해야 하지만 연구팀은 실험종료를 보고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했다.
ㄴ씨는 “전년도부터 진행되던 이 실험은 연구 결과가 좋지 않아 중단된 상태였다. 고양이들은 사실상 방치상태로 지냈다. 실험이 중단되더라도 담당 연구자가 돌봐줘야 하는데 알러지가 생겼다는 이유로 고양이 사육실에 거의 들어가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실험 고양이의 상태는 대체로 좋지 못했다. 허피스 바이러스가 돌아 여섯 마리 모두 콧물, 재채기를 달고 살았고 페르시안 혼종으로 보이는 흰 고양이 ‘흰둥이’는 구내염이 심해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ㄴ씨는 “흰둥이는 구내염이 심하다 보니 입에 손 대는 것도 너무 힘들어 했다. 장모종이라 털을 빗겨줘야 했는데 관리가 안되다 보니 다 엉켜서 결국 제가 다 밀어줘야 했다”고 전했다. 발톱도 전혀 잘라 주지 않아서 발톱이 발을 파고드는 수준으로 자라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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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용’ 고양이들은 어디서 왔을까
애초 ㄱ교수 연구팀이 동물실험윤리위원회에 제출했던 실험계획서가 실제와 다른 부분도 여럿 드러났다. 2017년 7월 연구팀이 제출한 계획서에는 실험중인 고양이의 마릿수가 3마리로 표기가 되어 있지만, ㄴ씨가 연구에 참여할 2017년 당시 사육장 안에는 고양이 6마리가 살고 있었다.
서류 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3마리의 고양이가 어디서 왔는지는 불분명하다. 이미 승인된 실험의 경우에도 동물의 마릿수나 실험법이 변경되면 이 또한 변경계획서를 제출해 재심의를 받아야 하지만(동물실험윤리위원회(IACUC) 표준 운영가이드, 2017) 이 과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실험용 고양이 6마리는 구내염, 허피스 등을 앓고 있었다.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고양이의 반입처도 불분명하다. ㄴ씨는 고양이들이 ‘고양이 장수’한테 왔거나 유기·유실동물일 거라고 추정했다. ㄴ씨는 “고양이 장수한테 사 온 고양이들이라 들었다. 특히 손을 많이 타던 한 고양이는 ‘얘는 분명 집에서 살다 가출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ㄴ씨가 제공한 사진 속 실험 고양이들은 터키시 앙고라나 페르시안 고양이의 혼종과 흔히 길고양이로 많이 발견되는 코리안 숏헤어 등 여러 종이 섞여 있었다.
○○대학병원은 동물 구매절차에 별다른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대학병원 관계자는 “실험공급업체는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농장이고, 2014년 수의사 두 명과 사육담당자가 현장실사를 통해 확인한 곳”이라고 답했다. 계획서와 동물의 수가 다른 점에 대해서는 “(6마리 중) 나머지 3마리는 담당 연구자의 이전 연구에 있었던 동물로 파악된다”고 덧붙였다.
교수는 계획서에 고양이의 반입처를 ‘○○Farm 등 개인반입’이라 적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지난 1월 발표한 ‘실험동물공급자 등록 현황’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업체다. 동물실험 연구기관은 실험동물을 정식 실험동물공급자를 통해 구매하여야 하나, 고양이는 식약처가 정하는 실험동물 9종에서 빠져있다. 때문에 출처가 불분명한 고양이로 동물실험을 실행하더라도 법적 처벌은 어려운 게 현실이다. 비구협은 우리나라 길고양이의 특수한 상황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영재 대표는 “우리나라는 신분증만 있으면 누구든지 유기동물 보호소에 가서 아무런 제약없이 고양이를 데려올 수 있다. 전문 사육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고양이를 수급할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실험에 쓰인 고양이들이 길고양이이거나 유기·유실 동물일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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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는 절차대로 진행됐을까?
고양이들의 최후는 비참했다. 2018년 8월 ㄱ교수 연구팀은 실험을 종료하며 고양이 6마리 모두 안락사 했다. ㄴ씨는 “고양이들이 모두 건강하니까 이식한 기계만 빼면 책임지고 입양을 보내겠다고 했지만 묵살당했다”고 말했다.
ㄴ씨는 1년 여간 돌보던 고양이들의 안락사 당하던 날을 기억한다. 그는 인공와우 장치를 빼기 위해 헤집어진 사체를 수습해야 했다. 동물보호법 23조에는 ‘동물실험을 한 자는 실험이 끝난 후 지체없이 해당 동물을 검사하여야 하며, 검사 결과 정상적으로 회복한 동물은 분양하거나 기증할 수 있다’고 적고 있지만, 6마리 고양이의 삶은 그날까지였다.
제보자 ㄴ씨가 안락사 뒤 적은 ‘연구원 일기’.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안락사가 절차대로 진행됐는지도 의심스럽다. 실험이 끝난 동물의 안락사를 시행할 때는 가능한 동물에게 고통을 가하지 않는 방법으로 실시하도록 되어 있다. 때문에 동물들을 먼저 깊은 마취상태로 만든 뒤 약물을 투여한다. ㄱ교수 연구팀 또한 계획서에는 안락사 방법을 ‘마취상태에서 염화칼륨(KCL)의 정맥주사를 통한 안락사’로 표기하고 있다.
하지만 비구협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날 식약처의 마약류 통합 관리시스템(NIMS)에는 당시 사용되었을 마약류 내역이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동물의 마취에 쓰이는 약물은 마약류로 분류돼 식약처에서도 철저히 관리하는 항목이다. ㄱ교수 연구팀의 NIMS 보고 목록을 살펴보면, 다른 실험 동물(기니픽)에 대한 마취제 사용 내역은 확인이 되지만 고양이에 대한 기록만 누락되어 있다. 이에 대해 ○○대학병원은 “NIMS 사용초기이고 당시 마약관리 담당자가 실험 후 바로 기록하지 않고 나중에 기억에 의존해 기록하다가 다른 내역으로 잘못 기록한 것 같다”는 답변을 내놨다.
ㄴ씨는 더이상 억울하게 죽어나는 동물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제보를 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동물 실험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건강한 동물을 실험 종료를 이유로 굳이 죽여야 하는 점과 실험실에서 강하게 버텨왔던 고양이들이 안락사로 허무하게 죽은 것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비글구조네트워크는 “○○대학병원은 동물실험기관 가운데서도 전문적인 곳으로 꼽히는 곳이었다. 실험연구나 윤리위 제도도 다른 곳보다 잘 되어 있어 롤모델로 꼽히는 곳이었는데, 실제로는 실험환경이 열악하고 관리 감독이 허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