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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보통의 고양이와 보통의 사람이 만나길 꿈꾸며

등록 2020-05-14 16:31수정 2020-05-14 19:01

[애니멀피플] 통신원 칼럼/두 눈 없는 어린 고양이, 흰둥이에 대하여
어느 날 사라졌다가 양쪽 눈이 손상된 채
다시 나타난 흰둥이 돌본 사람들
이제 빛이 없는 새로운 삶을 배워야 한다
양쪽 눈이 심하게 훼손된 채 발견된 ‘흰둥이’는 사람들에게 구조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양쪽 눈이 심하게 훼손된 채 발견된 ‘흰둥이’는 사람들에게 구조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흰둥이는 이제 여덟 달 된 어린 고양이다. 사람 나이로 치면 열 살쯤 됐을 나이. 흰둥이는 길고양이 출신으로 약 한 달 전 두 눈을 적출하는 수술을 받았다. 적출 수술이 흰둥이의 의지였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아니다. 하지만 눈을 적출하지 않고서는 흰둥이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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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눈이 터진 길고양이

흰둥이가 태어난 아파트 단지에는 흰 수컷 성묘 한 마리가 이미 살고 있었다. 흰둥이는 그 애의 자식으로 추정된다. 흰둥이의 구조를 요청한 제보자에 따르면, 어릴 적의 흰둥이는 아주 아름다운 두 눈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흰둥이는 아파트 단지의 케어테이커(캣맘·캣대디)들이 주던 밥을 먹고 무럭무럭 컸다. 그러다 6개월령 즈음이 됐을 무렵 흰둥이가 모습을 감췄다.

구조 현장에서 만난 흰둥이. 두 눈이 터져있고 진물로 인해 안면 피부의 털까지 벗겨졌다.
구조 현장에서 만난 흰둥이. 두 눈이 터져있고 진물로 인해 안면 피부의 털까지 벗겨졌다.
흰둥이는 3주 후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흰둥이의 아름다운 두 눈은 이미 손상된 뒤였다. 오른쪽 눈은 터져 바깥으로 잿빛으로 돌출되어 있었고, 반대쪽 눈 또한 터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 몸으로 흰둥이는 밥 자리로 찾아와 케어테이커들이 부어준 사료를 먹었다.

고양이를 포획하는 건 쉬운 일이었지만 그 이후의 처치들, 흰둥이를 치료하고 보살피는 건 케어테이커들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막대한 치료비와 보호처를 찾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백방으로 방법을 찾으면서 야속한 시간이 흘렀다.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연락이 닿은 게 우리 단체였다. 카라의 활동가들은 두 눈이 터진 길고양이의 사진을 받고서 바로 현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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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구조할 수 없었던 생명

흰둥이는 아파트 건물 실외기 아래 깊숙한 곳에 숨어 있었다. 잿빛으로 돌출됐던 눈은 더 악화하여 빨갛게 터져 부푼 모양새였고, 얼굴 살갗은 헐어서 문드러져 있었다. 반대쪽 눈도 상태가 악화한 건 마찬가지였다.

흰둥이가 그 눈을 하고서도 그나마 살아있을 수 있던 것은 평소 흰둥이에게 밥을 주던 케어테이커들이 있어서였다. 흰둥이는 그 사람들의 목소리와 밥 자리를 기억했기에 영양을 공급받고 체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구조해 병원으로 데려가 살펴본 흰둥이의 상태는 더 처참했다. 야속하게도 흰둥이의 돌출된 빨간 안구에는 지저분한 지푸라기가 감겨 있었다. 그리고 흰둥이의 호흡을 따라 돌출된 안구와 피부 사이로 빈 검은 공간이 보였다가, 보이지 않기를 반복했다. 오른쪽 눈 근처의 피부는 괴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반대편 눈 또한 터져 결착되어 있었다. 원인은 심각한 허피스 혹은 녹내장 등의 질병으로 추정된다. 흰둥이는 구조 후 바로 다음 날 수술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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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마음으로 살려낸 묘생

흰둥이의 수술비는 시민들의 십시일반 후원으로 마련되었다. 수술 후 적출한 눈의 상처가 다 아물고 짓물렀던 피부에 뽀얗게 흰 털이 올라오기까지는 한 달이 걸렸다. 흰둥이를 응원해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인지, 그 한 달 동안 흰둥이는 사람에게 차분하게 적응하기도 했다. 병원 선생님 품에 곧잘 안겨 있을 정도로.

수술 후, 휴식을 취하는 흰둥이.
수술 후, 휴식을 취하는 흰둥이.
자꾸 눈의 실밥을 건드려 상처가 덧나 붕대를 두르고 넥카라를 씌웠다.
자꾸 눈의 실밥을 건드려 상처가 덧나 붕대를 두르고 넥카라를 씌웠다.
이제 고작 태어난 지 8개월이 된 흰둥이는 앞으로 평생 앞을 보지 못한다. 하지만 그 사실이 흰둥이가 평생 불행할 것이라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다. 눈이 없는 대신 흰둥이는 촉각과 후각으로 세상을 신중하고 용감하게 감각하고 있다. 흰둥이는 경기 파주에 있는 카라 더봄센터로 거처를 옮겼다. 묘사 C203호가 흰둥이가 생활하는 방이다. 흰둥이는 딱 하루만 끼니를 걸렀을 뿐 다음 날부터는 밥도 두 그릇씩 비우고 캣타워에도 올라가며 공간을 온몸으로 익혔다. ‘우다다’ 하고 뛰어다니는 흰둥이는 다른 고양이와 다를 바 없는 ‘그냥 고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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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없이, 한 마리의 고양이로서…

한국 사회에서 장애나 질병이 있는 길고양이나 유기동물은 살아남기 힘들다. 치료받기도 힘들뿐더러 장애동물의 반려에 대한 시각이 아직 협소하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장애동물의 입양은 무척 희귀한 소식으로 들린다. 하지만 그냥 고양이 한 마리로서 살아가고 있는 흰둥이를 바로 마주한다면, 이 애와 함께 살아가는 게 그렇게 힘들기만 한 일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될지도 모르겠다.

흰둥이는 ‘피오나’가 있는 크롬케이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같은 묘사에서 평생 가족을 기다리게 된 흰둥이(뒤쪽)와 피오나.
흰둥이는 ‘피오나’가 있는 크롬케이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같은 묘사에서 평생 가족을 기다리게 된 흰둥이(뒤쪽)와 피오나.
요즈음 흰둥이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면 그 쪽으로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돌린다. 두 눈의 자리는 비어 있지만, 시선을 마주치는 것보다 더 깊게 서로를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화장실을 가리는 것도, 캣타워를 오르내리거나 스크래처를 긁는 것도, 밥을 먹고 함께 생활하는 데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흰둥이.

우리는 이 애에게 너끈히 남은 십오 년 즈음의 삶이 묘사 한 칸에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너무나 외롭고 슬픈 삶이다. 흰둥이는 눈이 다 터져서도 살아남았고, 기적처럼 많은 사람의 후원 아래 새 삶의 기회를 얻었다. 언젠가는 흰둥이의 가족도 나타날 것이다. 장애동물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넘어서, 서로를 신뢰하고 평생 곁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언젠가 흰둥이 앞에 서게 될 날이 올 것을 믿는다.

김나연 통신원·동물권행동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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