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도살장 옆에서 구조된 검은 닭 ‘오닉스’는 임시보호처에 도착해 모래를 만나자 본능적으로 모래 목욕을 시작했다.
오닉스는 닭이다. 까만 깃을 가졌고 눈빛은 형형했다. 함께 지내던 동료 닭들 중엔 제일 몸집이 커 눈에 띄었다. 그 애의 벼슬은 하늘로 뻗치지 못하고 어딘가 녹은 듯 어그러진 느낌이었다. 으레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리 끝을 잘리게 되는 여느 닭들과는 달리 뾰족한 부리가 온전했다.
오닉스라는 이름을 얻기 전까지 오닉스를 부르는 이름은 없었다. 언어로 구성되는 이름이야 인간 문명의 특질 중의 하나이고 비인간 동물에게는 크게 중요하진 않을 테니, 사실 이름의 유무는 오닉스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름이 없다는 것은 오닉스를 비롯한 루비 등 다른 닭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다만 그들에게 문제가 되었던 것은 생명으로서 전혀 존중받지 못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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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살장 앞에서 살아온 닭들
우리가 오닉스가 만난 것은 개 도살장이었다. ‘나무에 개를 매달아 죽이는 사람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조사를 하러 간 곳이기도 했다. 도살장에는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할 만큼 낮은 무쇠 뜬장과 대소변으로 질퍽거리는 땅 위에 개들이 지내고 있었다. 비위생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활동성 많은 동물인 개에게는 너무 끔찍한 환경이었다.
닭들은 개들 옆의 작고 낮은 사육장에서 지내고 있었다. 고물과 펜스가 얼기설기 쌓아놓은 한 평 한 평 공간, 허리를 숙여 그 안을 들여다보니 코를 찌르는 악취 속에 닭들이 침입자를 경계했다. 바닥에는 닭들의 오물과 음식물쓰레기가 한데 섞여 썩어가고 있었다. 사육장 구석에는 쥐의 사체도 놓여 있었다.
닭들은 도살장 옆 낮은 작고 낮은 사육장에서 지내고 있었다.
닭들은 도살장 옆 낮은 작고 낮은 사육장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나마 밥그릇은 있었다. 밥그릇 위에 있는 물건을 치우자 음식물쓰레기가 나타났다. 흰 깃을 가진 작은 닭 루비가 사육장 구석에서 멀뚱멀뚱 서 있다가 밥그릇으로 달려들었다. 오닉스는 루비와 다른 닭 몇 마리가 음식물쓰레기를 쪼는 것을 보다가 몸을 움직여 사육장 구석으로 갔다. 그 다리에는 정체 모를 끈이 묶여 있었다.
닭은 꽤 영리하고 호기심 강한 동물이다. 그들은 청결한 것을 사랑하고 공동생활을 하면서도 자신만의 자리를 지정해 알을 낳는다. 그런 존재가 시궁창보다 더한 곳에서, 다른 종의 동물이 목매달려 죽는 것을 지켜보며, 햇볕 한 번 쬐지 못하며 살아간다. 철저히 무시당한 존엄성과 생명으로서의 권리가 그렇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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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보호소로 옮겨간 닭들
도살장 주인에게 개들의 구조와 도살장 철거를 설득하면서 닭들의 소유권도 함께 받아냈다. 활동가가 그 오물더미 사육장으로 들어가자 닭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구석으로 도망갔다. 제일 먼저 포획된 닭은 오닉스였다. 그 애는 날개와 몸통을 붙잡혀 바깥으로 꺼내졌다.
고개를 조금씩 까딱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는 오닉스의 눈동자가 햇볕을 받아 빛났다. 온몸에 오물을 묻혀 꾀죄죄한 꼴은 여전했지만, 바깥에 나온 것만으로도 훨씬 나아 보였다. 오닉스가 도살장 밖으로 나온 이후로 다른 닭들의 구출도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잡힌 갈색 깃털의 작은 닭 오팔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도살장을 떠났다.
도살장에서 구조한 개들은 병원으로, 오닉스를 포함한 닭들은 임시 보호처로 데려갔다. 임시 보호처는 이미 닭을 포함한 다수의 조류를 구조해 기르고 있는 곳이었다. 커다란 비닐하우스 안에는 닭들을 위한 모래와 톱밥이 넓고 푹신하게 깔려 있었고, 오닉스와 그 가족을 위해 별도로 분리된 사육장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모래가 듬뿍 깔린 사육장에 도착하자 닭들은 스스로 케이지에서 나왔다. 닭들은 의아한 듯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어느 순간 문득 깨달은 듯 모래에 몸을 뉘었다. 닭들의 연이은 날갯짓에 모래가 튀었다. 모래 목욕이었다. 닭들은 한데 모여 몸을 정리했다. 태어나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모래였고, 누구 하나 가르쳐 준 없는 목욕이지만 닭들은 저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모래가 듬뿍 깔린 사육장에 도착하자 닭들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자연스레 모래를 뿌리며 목욕을 시작했다.
몇 번 몸을 뒤집고 날개를 펼치고 갈무리하기를 반복하자 다리에 묻어있던 오물이 말끔하게 정리가 됐다. 오닉스는 발이 깨끗해지자 모래 목욕을 뒤로하고 잡곡을 쪼았다. 정신없이 사료를 먹다가 부어진 물을 마셨다. 연신 깨끗한 물을 마시는 오닉스는 무척 기뻐 보였다. 그 뒤에선 루비가 계속 날갯짓을 했다. 경이로운 광경은 계속 시선을 빼앗아 갈 만큼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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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이란 이름에 가려진 닭의 삶
생명으로서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삶의 권리를 되찾는다는 것은 너무나 축하할 일이다. 닭들의 자연수명은 십 년에서 삼십 년에 이르는데, 우리는 이제 이들에게 오랜 시간을 함께할 가족을 찾아줄 준비를 하고 있다. 가족을 찾지 못할지언정 우리가 그들의 삶을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어준다면, 닭들도 만족스럽게 여생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커다란 비닐하우스 안에는 닭들을 위한 모래와 톱밥이 넓고 푹신하게 깔려 있었고, 오닉스와 그 가족을 위해 별도로 분리된 사육장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연신 깨끗한 물을 마시는 오닉스는 무척 기뻐 보였다.
우리는 공장식 축산 속에 태어나 죽는 닭들의 삶을 안다. 태어나는 즉시 부리를 잘리고, A4용지 반 만한 케이지에 갇혀 평생 몸 한 번 못 돌리고 죽는다. 그 삶도 고작 한 달밖에 되지 않는다. 고통스러운 삶이 짧은 것이 그나마 다행일까. 이름 없이 일련번호로 불리다 죽게 되는 삶, 탄생과 죽음의 과정은 철저히 숨겨진 채 ‘맛있는 치킨’이나 ‘보신하기 좋은 삼계탕’ 등으로만 포장되어 팔리는 삶, 우리는 이런 십억 마리 닭들의 억울한 일생을 알고 있다.
오닉스가 구조된 지 이제 2주가 흘렀다. 지금쯤이면 살도 통통하게 찌고, 깃에는 윤기가 흐르기 시작했을 것이다. 한 달쯤 후에는 우아하고 늠름한 수탉으로서 기세등등하게 새벽을 알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간의 삶은 오물투성이였지만, 이제 오닉스는 닭으로서의 삶을 계속 살아간다. 이 애와 다른 닭들 모두 행복한 삶을 살기를 빈다. 그리고 가능하면 한국사회 곳곳에 숨겨진 배터리 케이지의 닭들에게도, 새로운 삶의 기회가 열리길 더 간절히 바란다.
글·사진 김나연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