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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수 “만년 2인자 두려움에 한판승…8년 걸렸다”

등록 2016-05-19 18:54수정 2016-05-19 22:45

이승수(26·국군체육부대)가 지난 11일 강원도 양구에서 열린 전국체급별 유도선수권대회 남자 81㎏급에서 우승한 뒤 활짝 웃으며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승수(26·국군체육부대)가 지난 11일 강원도 양구에서 열린 전국체급별 유도선수권대회 남자 81㎏급에서 우승한 뒤 활짝 웃으며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6 Rio 우리가 간다
남자 유도 81㎏ 올림픽 대표 이승수
족쇄처럼 따라다녔던 ‘만년 2인자’라는 수식어를 떼어 내기까지 8년이 걸렸다. ‘내가 대체 왜 영원한 스파링 파트너라는 거야?’라며 세상을 향해 원망도 많이 했다. 마음이 답답할 땐 하염없이 거리를 걸었다. 그렇지만 돌아와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차가웠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1등을 해본 적이 없었던 유도 국가대표 이승수(26·국군체육부대)는 1등들의 그림자 혹은 조력자로 20대의 절반을 보냈다. “그래도 올림픽은 한 번 나가보고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 함께했던 동료들이 어둠의 시간을 견뎌내지 못하고 하나둘 유도판을 떠났지만 이승수는 포기할 수 없었다.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묵묵히 참고 훈련하고 때를 기다리면요.”

그렇게 8년 동안 한국 유도 간판 왕기춘(28·양주시청)과 지난 4일 은퇴를 선언한 김재범(31)의 스파링 파트너 역할을 하며 집과 훈련장을 오갔다. 그리고 마침내 성적으로 자신의 실력을 입증해냈다. 지난 11일 강원도 양구에서 열린 전국체급별 유도선수권대회 81㎏급에서 이승수는 왕기춘과 김재범을 따돌리며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16일 국제유도연맹(IJF)이 공개한 리우올림픽 선수 순위에서 20위를 기록해 22위 이내 선수에게 주어지는 올림픽 출전 자격을 최종 확정지었다. “아! 드디어 가는구나!” 이승수의 입에서 엷은 탄성이 새어나왔다.

이승수는 특유의 건장한 체격과 운동신경으로 서울 광명북중학교 유도부에 스카우트되면서 유도를 시작했다. 2008년 경기체고 3학년 때 처음 국가대표가 됐지만 지난 8년간 그는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2012 런던올림픽, 2014 인천아시안게임 등 굵직한 국제대회를 모두 경기장 바깥에서 지켜봐야 했다. 이승수 앞엔 ‘유도 천재’ 왕기춘과 ‘유도 괴물’ 김재범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도소년, ‘천재’와 ‘괴물’에 밀리다
2008년 고3때 국가대표 됐지만
왕기춘·김재범에 밀려 2인자로

“아 드디어 가는구나”…8년 땀 결실
스파링 파트너 하며 승부에 눈떠
두 선배 따돌리고 리우행 확정

처음 국가대표 마크를 달고 73㎏급에 출전했을 땐 2년간 왕기춘의 벽을 넘지 못해 그의 훈련 파트너로 시간을 보냈다. 이후 고심 끝에 자신의 강인한 근력을 더 살려보고자 81㎏급으로 한 단계 체급을 올렸지만 그곳은 이미 김재범의 성역이었다.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2012 런던올림픽과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차례로 금메달을 거머쥔 김재범의 벽은 높았다. 이승수의 기나긴 스파링 파트너 생활도 계속됐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통과하면서도 유도를 놓지 않았던 이유는 유도와의 첫 만남이 선사한 강렬함 때문이었다. “유도는 힘이 약한 사람도 힘이 센 사람을 이길 수 있다는 걸 가르쳐줬어요.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거나 정교한 기술을 사용하면 그것도 ‘한판’에 끝낼 수 있는 운동이었어요.” 유도의 매력을 설명하는 이승수는 거침이 없었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고 했다. “20살 막 들어설 무렵 ‘내가 진짜 올림픽에 나갈 수 있을까’ 하고 저 자신을 의심하기도 했어요. 계속 게임에서 졌으니까요”라며 슬럼프에 빠져 힘겨워했던 시절을 털어놓은 그는 “그래도 생각해보니 진다는 게 너무 싫더라고요. 지더라도 끝까지 해보고 져야지 했어요. 사실 제가 성격이 좀 있는 편이거든요”라며 애써 웃어 보였다.

이승수는 자기 같은 ‘노력형’들에겐 불가피하게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을 견뎌낼 수 있는 끈기가 중요하다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다. “왕기춘, 김재범 선배는 그야말로 타고난 유도 선수에 노력까지 뒷받침된 선수들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달랐어요”라며 선배들과 선을 그은 이승수는 “남들이 1시간 운동하면 2시간을 해야 했고, 그것이 힘들다기보다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라고 했다. 주어진 상황에 한탄만 하고 있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천재들에게 배운 게 있다고 했다. “뒤늦은 올림픽 출전이지만, 그들이 없었으면 저도 없다고 생각해요.” 겸양의 표현이 아니었다. 그는 걸출한 선배들과 계속 스파링을 하면서 자신을 철저하게 연구했고 단점을 보완해나갔다.

유도하는 내내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때부터 장학금으로 학비를 대신해야만 했다는 그는 지금도 어디선가 스포트라이트가 비치지 않는 곳에서 훈련에 매진하고 있을 동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제가 리우에서 성적을 내기도 전에 이런 말 하는 건 조심스럽지만요”라고 서두를 뗀 뒤 “한자리에서 이 악물고 열심히 하면 기회는 언제든지 오게 돼 있어요. 포기하지 말았으면 해요”라고 전했다.

그는 현재 태릉선수촌에서 새벽엔 1시간, 오전엔 근력운동 2시간, 오후엔 기술 및 실전훈련 2시간, 야간엔 개인훈련과 훈련피드백을 소화하고 있다. 지칠 때도 있지만 버티고 있다. 유도 선수로서 올림픽 유도 경기장 매트 위에 서는 일이 어떤 이에게는 평생 단 한 번도 허락되지 않는 소중한 기회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권승록 기자 ro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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