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격 국가대표 장금영(청주시청)이 지난 15일 청주종합사격장에서 소총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중국 국가대표 출신 장금영은 2006년 중국에서 귀화했고 지난 9일 대구종합사격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선발전 50m 소총3자세에서 2위에 올라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뤘다. 청주/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16 Rio 우리가 간다] 사격 장금영
여기 응어리진 마음을 풀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었던 중국 국가대표 출신 한국인 주부 총잡이가 있다. 육아 때문에 사격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 5년간 그는 내내 괴로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실탄은 표적의 정중앙에서 멀어져만 갔다. 자신의 삶도 그랬다. 국적을 바꾸면서까지 간절히 바랐던, 11살 소총을 잡기 시작할 때부터 품어온 올림픽 출전의 꿈도 사라져갔다. “풀어내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어요. 평생요.”
중국 국가대표 출신 ‘주부 총잡이’
육아 바빠 5년간 사격 소홀했지만
밤낮 훈련끝 올림픽 출전권 따내 금메달을 목표로 온신경 집중
“TV·휴대전화·인터넷은 멀리해요
올림픽이 끝나는 그날까지…” 선한 눈매였다. 총을 잡아봤으리라고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고요”라며 웃어 보이던 그는 “훈련할 땐 완전히 달라져요”라며 다부지게 말했다. 사격에 입문한 지 25년 만에 이뤄낸 올림픽 출전 앞에 떨림과 설렘이 교차하는 얼굴로 훈련에 매진하고 있는 장금영(36·청주시청)을 지난 15일 청주종합사격장에서 만났다. 장금영은 지난 9일 대구종합사격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선발전 50m 소총 3자세에서 2위에 올라 종목별 2명에게만 허락되는 올림픽 사격 국가대표 출전을 확정지었다. 그는 “믿어지지가 않았어요. 주변에 ‘저 올림픽 가는 거 맞아요?’라고 물어보기까지 했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장금영은 2008 베이징올림픽 한국 대표 후보 5명에 포함됐다가 마지막 평가전에서 최종 3명 안에 들지 못했고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선발전은 예상치 못한 임신과 출산으로 훈련에 집중하지 못해 출전이 좌절됐다. 이후 직함은 사격 선수였지만 두 아이의 엄마에 더 충실한 주부로 살면서 텔레비전을 통해 동료들의 활약을 지켜봐야 했다. “1명을 뽑을 땐 2위, 2명을 뽑을 땐 3위, 3명을 뽑을 땐 4위였어요. ‘난 이렇게 끝나는 건가’, ‘나도 할 수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늘 맴돌았죠. 마지막 1년만 다시 독하게 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나이를 고려할 때 자신의 마지막이 될 리우올림픽이 다가오고 있었다. 밤낮을 잊고 연습했다. 그렇게 2015년 경호실장기 사격대회에서 한국신기록 2개 포함, 3관왕으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더니 결국 리우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장금영은 본래 중국 장쑤성 쑤저우 출신으로 중국 이름은 ‘장진룽’이다. 11살 때 초등학교 사격팀 코치의 권유로 사격을 시작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고 그저 사격 선수들의 모습이 너무 멋있었어요”라며 사격을 시작한 동기를 밝힌 장금영은 “그래도 첫 발을 쏠 땐 무서워서 코치님이 뒤에서 같이 당겨주셨어요. 한 번 쏘고 나니 사격에 중독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너무 재밌더라고요”라며 웃어 보였다. 빼어난 실력으로 곧바로 두각을 나타낸 장금영은 17살 때 중국 난징 실업팀에 입단한 뒤 2003년 23살의 나이로 중국 국가대표에 선발됐다. 직후 장금영은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운명의 한 남자를 만나게 됐다. 2004년 한·중 사격 친선대회에 참가한 게 인연이 돼 2006년 당시 영등포중학교 사격코치로 재직 중인 김대경씨와 결혼한 것. 꿈같은 신혼을 보내다 2009년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 중국에서 한국으로 국적도 바꿨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이번 올림픽에서 메달을 수확하기 위해 장금영은 사격 외에 자신의 신경을 끌 수 있는 모든 통로를 차단했다. 텔레비전, 휴대폰, 인터넷은 올림픽이 끝나는 날까지 멀리하기로 했다. 오로지 훈련뿐이다. 오전 8시30분부터 낮 12시까지 기초체력훈련과 실전훈련을 하고, 오후 2시부터 한 번 더 똑같은 훈련을 반복한 뒤 코칭스태프와 하루 훈련을 복기한다. 그러고 나면 완전히 녹초가 된다. “사격은 철저히 집중력과 정신력 싸움이에요. 이렇게 훈련하고 나면 체력이 바닥나요.” 그는 지난 1년간 10㎏이 넘게 살이 빠졌다. 의도한 감량은 아니다. 고된 훈련이 그렇게 만들었다. “올림픽에서 경기하는 모습이 꿈에도 나와요”라고 말하는 장금영의 이번 목표는 금메달이다. 하지만 메달은 결과로 주어지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저는 완벽하지 못해요. 그러나 완벽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렇게 노력하니까 결국 꿈이 이뤄지더라고요.” 필생의 과제를 기어코 풀어낸 자의 미소는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청주/권승록 기자 rock@hani.co.kr
육아 바빠 5년간 사격 소홀했지만
밤낮 훈련끝 올림픽 출전권 따내 금메달을 목표로 온신경 집중
“TV·휴대전화·인터넷은 멀리해요
올림픽이 끝나는 그날까지…” 선한 눈매였다. 총을 잡아봤으리라고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고요”라며 웃어 보이던 그는 “훈련할 땐 완전히 달라져요”라며 다부지게 말했다. 사격에 입문한 지 25년 만에 이뤄낸 올림픽 출전 앞에 떨림과 설렘이 교차하는 얼굴로 훈련에 매진하고 있는 장금영(36·청주시청)을 지난 15일 청주종합사격장에서 만났다. 장금영은 지난 9일 대구종합사격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선발전 50m 소총 3자세에서 2위에 올라 종목별 2명에게만 허락되는 올림픽 사격 국가대표 출전을 확정지었다. 그는 “믿어지지가 않았어요. 주변에 ‘저 올림픽 가는 거 맞아요?’라고 물어보기까지 했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장금영은 2008 베이징올림픽 한국 대표 후보 5명에 포함됐다가 마지막 평가전에서 최종 3명 안에 들지 못했고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선발전은 예상치 못한 임신과 출산으로 훈련에 집중하지 못해 출전이 좌절됐다. 이후 직함은 사격 선수였지만 두 아이의 엄마에 더 충실한 주부로 살면서 텔레비전을 통해 동료들의 활약을 지켜봐야 했다. “1명을 뽑을 땐 2위, 2명을 뽑을 땐 3위, 3명을 뽑을 땐 4위였어요. ‘난 이렇게 끝나는 건가’, ‘나도 할 수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늘 맴돌았죠. 마지막 1년만 다시 독하게 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나이를 고려할 때 자신의 마지막이 될 리우올림픽이 다가오고 있었다. 밤낮을 잊고 연습했다. 그렇게 2015년 경호실장기 사격대회에서 한국신기록 2개 포함, 3관왕으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더니 결국 리우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장금영은 본래 중국 장쑤성 쑤저우 출신으로 중국 이름은 ‘장진룽’이다. 11살 때 초등학교 사격팀 코치의 권유로 사격을 시작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고 그저 사격 선수들의 모습이 너무 멋있었어요”라며 사격을 시작한 동기를 밝힌 장금영은 “그래도 첫 발을 쏠 땐 무서워서 코치님이 뒤에서 같이 당겨주셨어요. 한 번 쏘고 나니 사격에 중독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너무 재밌더라고요”라며 웃어 보였다. 빼어난 실력으로 곧바로 두각을 나타낸 장금영은 17살 때 중국 난징 실업팀에 입단한 뒤 2003년 23살의 나이로 중국 국가대표에 선발됐다. 직후 장금영은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운명의 한 남자를 만나게 됐다. 2004년 한·중 사격 친선대회에 참가한 게 인연이 돼 2006년 당시 영등포중학교 사격코치로 재직 중인 김대경씨와 결혼한 것. 꿈같은 신혼을 보내다 2009년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 중국에서 한국으로 국적도 바꿨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이번 올림픽에서 메달을 수확하기 위해 장금영은 사격 외에 자신의 신경을 끌 수 있는 모든 통로를 차단했다. 텔레비전, 휴대폰, 인터넷은 올림픽이 끝나는 날까지 멀리하기로 했다. 오로지 훈련뿐이다. 오전 8시30분부터 낮 12시까지 기초체력훈련과 실전훈련을 하고, 오후 2시부터 한 번 더 똑같은 훈련을 반복한 뒤 코칭스태프와 하루 훈련을 복기한다. 그러고 나면 완전히 녹초가 된다. “사격은 철저히 집중력과 정신력 싸움이에요. 이렇게 훈련하고 나면 체력이 바닥나요.” 그는 지난 1년간 10㎏이 넘게 살이 빠졌다. 의도한 감량은 아니다. 고된 훈련이 그렇게 만들었다. “올림픽에서 경기하는 모습이 꿈에도 나와요”라고 말하는 장금영의 이번 목표는 금메달이다. 하지만 메달은 결과로 주어지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저는 완벽하지 못해요. 그러나 완벽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렇게 노력하니까 결국 꿈이 이뤄지더라고요.” 필생의 과제를 기어코 풀어낸 자의 미소는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청주/권승록 기자 ro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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