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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은 꽁꽁 숨겨놓고…강도 대비용 지갑 따로 챙겨라?

등록 2014-07-11 19:39수정 2014-07-12 09:40

브라질의 거리엔 폭동과 축제가 공존했다. 지난 8일 브라질팀이 월드컵 준결승에서 독일팀에 1-7로 패한 직후 성난 시민들이 버스에 불을 붙이자 소방관들이 달려와 끄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브라질의 거리엔 폭동과 축제가 공존했다. 지난 8일 브라질팀이 월드컵 준결승에서 독일팀에 1-7로 패한 직후 성난 시민들이 버스에 불을 붙이자 소방관들이 달려와 끄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토요판] 커버스토리
브라질월드컵, 편견과 거짓말
대한민국 외교부는 ‘휴대폰을 내보이지 말라’고 했다. 한국-러시아의 브라질월드컵 1차전이 열리는 쿠이아바는 인구 60만의 작은 도시다. 도착한 첫날의 인상이 강했다. 일요일이었는데 거리는 마치 죽어 있는 도시 같았다. 60만이면 작은 도시는 아닌데 거리에 사람이 아무도 없다시피 했다. ‘이런 음산한 곳에서 월드컵을 하는구나. 현지 사람들은 소외된 축제를 여는구나’ 미뤄 짐작했다. 호텔 앞 50미터도 채 안 되는 작은 슈퍼마켓에 가는 것도 망설여졌다. 까무잡잡한 사람들이 신기한 눈으로 이방인을 쳐다봤다.

덮고 습한 날씨가 변수라던
쿠이아바 습도는 70% 넘지 않아
러시아 파비오 카펠로 감독조차
“모스크바보다 덥지도 않은데…”

한국의 85배 이르는 브라질은
폭동·축제 동시에 벌어지는 나라
직접 보기 전, 직접 듣기 전엔
아무것도 맹신하지 말기를

자고 일어났더니 도시는 달라져 있었다. 브라질 사람들은 일요일엔, 특히 일요일 오전엔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훗날 알았다. 월요일 쿠이아바는 열기와 활기로 가득 찼다. 무엇보다 그들은 그 활기를 이방인에게 전달하는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피곤에 찌든 한국 기자들의 표정은 분명 밝지 않았는데 그들은 우릴 보고 웃었다. 먼저 말을 걸었다. ‘남미의 심장’이라 불리는 쿠이아바는 남아메리카 대륙 한가운데 있는 내륙 도시다. 그런 곳에 한국 축구 대표팀이, 그들을 따라 한국 사람들이 왔으니 그들은 마냥 신기해했다. 새로운 곳에 온 사람은 우리들인데 그들이 우리를 더 신기해했다. “사진 한번 찍자”고 그들이 먼저 자신들의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외교부의 ‘경고’를 충실히 이행하고자 호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리고 있던 휴대폰을 그들이 먼저 꺼내들었다.

그곳의 날씨도 경험하기 전과 달랐다. 신문·방송들은 대표팀 일정이 확정된 뒤 줄곧 “러시아전이 열리는 쿠이아바는 덥고 습한 날씨가 변수”라고 보도했다. 홍명보 감독도 경기 전날인 6월17일 “쿠이아바가 생각보다 습도가 높아 미국 마이애미에서 훈련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 감독이 ‘습도가 높다’고 말한 그날 대표팀이 훈련하던 시각인 오후 6시 쿠이아바의 기온은 27℃, 습도는 61%였다. 경기 당일인 18일 같은 시각 기온은 26℃, 습도는 68%였다. 이틀 모두 쿠이아바는 최저기온이 20℃ 가까이 떨어졌다. ‘기대’하던 열대야는 없었다. 브라질기상청 자료를 보면 경기 전 일주일 동안 쿠이아바의 저녁 6시 습도가 70%를 넘긴 적은 한번도 없었다. “왜 계속 덥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모스크바가 더 덥다”던 파비오 카펠로 러시아 감독의 말이 더 와닿았다. 무엇보다도 직접 느끼기에 후덥지근하지 않았다.

외교부는 브라질로 떠나는 기자들을 모아놓고 “브라질에선 하루 평균 129건의 살인이 발생하고 지난해 살해당한 인구 중 11%가 브라질에서 희생됐다”고 주의를 줬다. 브라질의 인구와 면적,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하루 평균 살인 건수 등 보충 설명이 뒤따라야 ‘감이 잡히는’ 내용이었다. 외교부 말을 따른다면 브라질은 범죄의 천국이며, 브라질 대도시는 강력 범죄의 온상이었다.

효과가 있었다. 밤에는 물론이고 낮에도 좀처럼 호텔 밖을 나가지 않았다. 카메라를 든 사람들은 마치 사파리 하듯 버스 안에서 거리의 사람들을 담았다. 그들이 먹는 음식도 피해야 하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그거 먹으면 식중독 걸린다”고 했다. “저들은 저렇게 잘 먹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들은 여기 사니까”라고 했다. ‘원래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인데 그들은 계속 먹어 적응됐으니 먹지 말라는 건가….’ 말을 곱씹는 데 한참이 걸렸다.

브라질이 ‘절도의 천국’이라고 한다면, ‘대도시에 한해서는’이라는 단서를 달고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겠다. 일행 중엔 소매치기를 당하거나 가방을 통째 도난당한 이들이 있었다. 여권, 시계 등을 잃어버린 사람도 있었다. 상파울루 거리엔 한국 외교부가 ‘잠재적 범죄자’로 지목한 사실을 알 리 없는 노숙인들이 많았다. 이들은 가끔 지나가는 사람에게 돈을 달라고 구걸했다. “돈이 없다”고 거절하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돌아갔다. 만약 이들에게 돈을 준 뒤 “강도를 만났다”고 한다면 그는 강도를 당한 것이다. 외교부는 “50헤알(우리 돈 약 2만5000원)이 든 지갑을 따로 들고 다녀라”고 했다. 혹시라도 돈이 없으면 위해를 가할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외교부의 말을 충실히 따른 사람은 브라질에서 강도를 경험하고 돌아갔을 테다.

우승을 꿈꾸던 브라질 축구는 준결승에서 독일에 참패했고 성난 브라질 사람들이 거리로 뛰어나와 버스에 불을 지르고 난동을 부렸다는 소식이 들린다. 대한민국 외교부는 서울로 돌아온 사람에게도 ‘카톡’을 보내 ‘성난 군중들을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같은 시각 독일계 사람들이 많이 사는 브라질 남부의 작은 도시 산타크루스두술에선 축포를 쏘고 있다고 했다. 인구 2억명, 한국의 85배에 이르는 면적을 지닌 브라질은 폭동과 축제가 동시에 벌어지는 나라다. 직접 보기 전에, 직접 듣기 전엔 브라질에 대해서 아무것도 믿지 말기를 바란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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