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분석·선수기용 권한 있지만
자율성 없는 기술위 제 역할 못해
“목소리 못내게 한 이들 책임져야”
자율성 없는 기술위 제 역할 못해
“목소리 못내게 한 이들 책임져야”
홍명보(45) 축구대표팀 감독의 유임 결정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대한축구협회와 기술위원회로 옮겨가고 있다.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실패에 대한 책임을 홍명보 감독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은 최선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말했지만, ‘브라질월드컵 참사’에 대해 누가 어떤 책임을 지겠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월드컵을 실패로 몰고 간 협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내년 1월 아시안컵에서도 실패가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비난은 기술위원회와 황보관 기술위원장에게 모아지고 있다. 대표팀 공식 서포터스 붉은악마는 3일 공식 성명을 발표해 “기술위원회가 역할을 성실히 했는지 의문”이라며 기술위원회와 황보관 기술위원장의 책임을 물었다. 실제로 홍명보 감독이 지휘한 이번 월드컵 대표팀은 과거 여느 대표팀에 비해 상대팀에 대한 전력 분석에서 문제점을 보였다. 알제리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알제리가 선발 라인업에 큰 변화를 주고 공격적인 전술로 나올 것이란 점은 이미 국내외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졌지만 전혀 대비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표팀 맏형이었던 곽태휘(알힐랄)는 귀국 뒤 언론 인터뷰에서 “알제리에 대한 자료가 러시아전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적었다”고 말했다. 홍 감독이 월드컵을 치르면서 기술위원회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고정운 <스포티브이>(SPOTV) 해설위원은 “현재 기술위원회와 황보관 기술위원장은 유령이나 마찬가지다. 전혀 자기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 해설위원은 “기술위원장은 대표팀 감독을 뽑고, 대표팀을 관리하는 중책이다. 대표팀 감독과 선수 구성부터 전술 운용까지 많은 것들을 상의하면서 함께 대표팀을 책임지는 자리인데 지금은 전혀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홍 감독이 가장 많은 비난을 받는 선수 선발 문제와 관련해서도 기술위원회의 책임이 크다. 김대길 <케이비에스 엔>(KBS N) 해설위원은 “감독은 기술위원회의 조언과 견제를 필요로 한다. 감독에게 선수 선발에 대한 전권이 주어져 있지만, 기술위원회는 감독과 논의할 수 있다”며 “기술위원회가 제 역할을 했다면 선수 선발 논란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식물 기술위원회’가 된 원인은 현 축구협회 내에서 기술위원회가 자율성을 갖지 못하는 구조 때문이다. 황보관 기술위원장은 현재 대한축구협회 행정직인 기술교육실 내 국가대표지원팀장을 겸임하고 있다. 과거 이용수, 이회택, 이영무 전 기술위원장 등이 협회 행정라인에 속하지 않은 채 독립적인 위치에 있었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 김대길 해설위원은 “회장한테 결재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기술위원장을 겸직하고 있으니 자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겠냐”고 말했다. 고정운 해설위원은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기술위원회가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도록 만든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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