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 윙백이 공격에 가담하는 ‘포백’ 전술에서 수비만 전담하는 중앙 수비 2명의 존재감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홍명보호는 그렇지 못했다. 포백이 뚫렸을 때를 대비한 ‘플랜 B’도 없었다. 지난달 23일 브라질월드컵 알제리와의 경기에서 참패를 당한 장면은 한국 축구의 수비 역량을 그대로 보여줬다.
첫골은 알제리 공격수 이슬람 슬리마니가 한국 진영 한복판으로 투입된 공을 중앙수비 김영권, 홍정호 사이에서 20여m를 경쟁한 끝에 따내 골로 연결했다. 느리게 떠가는 종패스가 단독 돌파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문데다, 포백 수비가 원톱 공격수를 막기 위한 전술이란 점을 고려하면 허용해선 안 되는 골이었다. 중앙 수비들한테 상대 공격수를 잡을 스피드나 몸싸움도 없었고, 역습을 끊기 위한 반칙도 나오지 않았다.
두번째 골 역시 중앙 수비들이 라피크 할리시의 헤딩골을 전혀 견제하지 못했다. 이후에도 김영권과 홍정호가 동시에 원톱 공격수를 따라다니거나, 빠른 원투 패스에 시선을 뺏겨 허수아비처럼 서 있다가 두 골을 추가로 허용했다. 스포츠전문매체 <이에스피앤>(ESPN)이 “수비진이 홍명보 감독을 한탄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할 만큼 이번 대회 내내 수비진은 허약한 모습을 보였다.
한국 축구의 수비 불안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알제리전 뒤 홍 감독은 “결과적으로는 집중력 부족이었다. 수비 조직이 흔들렸고, 경험적으로 부족한 면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집중력과 조직력 문제’ 이전에 국내 수비진의 개인 기량이 세계 정상급 공격수들을 상대하기에 부족한 게 사실이다.
실제로 호남대 축구학과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한국은 이날 알제리한테 일대일 돌파를 무려 21차례(30차례 시도) 허용했다. 페널티 에어리어로 직접 연결된 침투 패스 5개(8차례 시도) 가운데 3개가 골로 연결됐다. 상대의 빠른 돌파와 순간적인 원투패스에 번번이 수비 뒷공간을 내줬다. 다른 팀들의 수비수들이 최고 시속 31㎞의 속도를 내는 것과 견주면 20㎞ 후반대인 한국의 움직임이 느려 보일 수밖에 없었다. 반칙수도 적어 상대 예봉을 일시적으로 차단하는 노련미조차 보이지 못했다.
큰 경기에서 이런 전력 차이를 줄이는 게 조직력과 팀 전술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한국은 히딩크 감독이 수비 3명을 후방에 고정시키는 ‘스리백’으로 재미를 봤다. 이후 한국은 현대 축구의 대세라며 줄곧 ‘포백’을 써왔다. 하지만 이번 대회 최약체 가운데 하나였던 한국이 강팀들을 상대하기에는 몸에 잘 맞지 않는 옷이었다. 선수들도 이 전술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이번 대회에서 8강까지 진출하며 돌풍의 주인공이 된 코스타리카가 강팀을 상대로 스리백과 파이브백을 변용해 썼던 점과 대비된다. 네덜란드, 칠레는 스리백으로 ‘무적함대’ 스페인을 무력화시켰다. 김대길 <케이비에스엔>(KBS N) 해설위원은 “부족한 개인 기량을 보완할 만한 벤치의 전략이 없었고, 팀 전체가 수비에 가담해야 상대 공격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는데 그러지도 못했다”며 “선수들이 개인 능력을 끌어올리고, 벤치도 한가지 전술을 고집하지 않고 새 프레임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짜내야 한다”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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