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데자네이루는 브라질의 축소판이다. 식민지 시절 형성된 동남쪽 해안 지역 대도시들로 부와 물자가 집중되는 반면 북부 내륙 지역은 오래도록 소외된 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리우시 대부분을 차지하는 북쪽 지역은 가난의 풍경이 끝없이 이어지지만, 유명한 코파카바나와 이파네마 해변이 이어지는 남쪽 해안 지역 조나술은 아름답고 활기차다.
아름다운 해변에서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우뚝 솟은 돌산 위에 거대한 파벨라(빈민촌)가 보인다. 라틴아메리카 최대 빈민촌 호시냐다. 25만명 이상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호시냐에는 가파른 산 위로 수많은 파벨라가 끝없이 뻗어 있다. 15일(한국시각) 만난 호시냐의 주민들은 월드컵 덕분에 삶이 나아졌다고 말하고 있다. 브라질 전역의 월드컵 반대 시위와는 전혀 딴판이다. 11년 전 호시냐에 정착해 작은 구멍가게를 하는 세자르(50)는 “모든 게 다 좋아졌다. 관광객들이 많이 와서 돈도 많이 벌고 마을도 훨씬 살기 좋아졌다”고 말한다. 시는 몇년 전부터 파벨라의 가난을 관광 상품으로 개발했다. 월드컵은 관광객을 더 많이 불러모았다. 한 스웨덴 남성은 연신 카메라를 찍어대며 “친절한 주민들과 평화로운 마을,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월드컵을 반기는 것은 관광 수입 때문만이 아니다. 2007년 브라질이 월드컵 유치를 확정한 이듬해부터 정부는 범죄의 온상인 파벨라에 우페페(UPPs·경찰평화유지연합)를 투입해 치안을 장악했다. 호시냐 토박이 이스마엘(49)은 “예전에 우리 지역에는 정부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주민들은 모두 총을 가지고 다니며 자신을 스스로 지켜야 했다. 그런데 이제 우리에게도 정부라는 개념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들이 없었다면 여기 보이는 10살, 11살짜리 아이들이 이 시간에 마약을 팔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3개월 전에는 시와 기업들이 학교와 의료시설, 풋살장 등을 개조했다. 가끔 총성이 들리긴 했지만 거리는 깨끗했고 담장은 월드컵 분위기에 맞게 페인트가 칠해졌다. 고메스(27)는 “월드컵을 앞두고는 정부에서 영어 교육도 시켜줬다. 2016 리우올림픽을 앞두고 근처에 지하철역도 만들어져 더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호시냐의 아이들과 주민들이 월드컵 분위기로 꾸며진 형형색색의 마을 놀이터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호시냐를 떠나면 상황은 달라진다. 리우 북서쪽 끝 파부나 지역에 사는 루이스(75)는 “우리 지역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위험하고 가난하다”고 불평했다. 루이스가 사는 지역에서는 돈벌이가 없어 마라카낭 경기장 근처나 관광객이 많은 해안가로 매일 아이스박스를 들고 가서 장사를 한다. 그는 “정부가 월드컵 기반 시설을 짓는데 돈을 다 쓰면서 우리에게 들어오는 돈은 점점 줄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북쪽 하무스 지역에 사는 이고르(41)는 “주정부에서는 낡은 집을 재건축해주고 병원과 학교를 지어주겠다고 공약을 했지만 그 뒤로는 맨날 하는 이야기가 ‘월드컵 끝나면 해주겠다’는 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관 호르스트(42)의 이야기는 더 구체적이다. 그는 “정부는 경기장이 있는 마라카낭 지역과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조나술 지역만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대회 기간 외국인들에게 보이는 곳에만 신경을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력 역시 두 지역에 집중되고 있다. 호르스트는 “현재의 경찰 인력으로는 이 지역만 감당하기에도 벅차다. 나머지 북쪽 지역은 손을 댈 수가 없다”며 “두 지역은 우페페가 장악을 해서 범죄조직을 몰아내고 치안을 확보했지만 그들이 결국 어디로 가겠나? 다른 파벨라로 들어가 그곳 주민들을 위협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난한 이들 일부는 관리되고 일부는 버려졌다. 세계 7위의 경제대국이자 신흥 강국 브릭스(BRICs)의 선두주자 브라질의 위상을 확인하기 위해 브라질 정부는 월드컵과 올림픽을 유치했다. 정부는 빈민가의 범죄와 마약 밀매조직 소탕을 목적으로 2008년 우페페를 창설해 20여 지역을 장악했지만 실제는 범죄 소탕과 치안 강화보다는 브라질의 거대한 불평등과 빈곤, 무질서를 감추는 데 목적을 갖고 있는 듯하다. 리우에 있는 600여개의 파벨라 중 우페페의 통제 아래 있는 것으로 알려진 170여곳이 마라카낭과 조나술에 집중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수혜를 받고 있는 호시냐의 주민들도 현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이스마엘은 “경찰은 2년 뒤 올림픽이 끝나면 철수할 것이고 정부의 관심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정부는 파벨라가 사라지는 걸 원치 않는다. 이렇게 값싼 노동력을 무한정 공급하는 곳이 또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리우데자네이루/허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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