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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 딛고 우뚝선 ‘악동’ 발로텔리

등록 2014-06-15 15:02수정 2014-06-15 15:17

2014년 브라질 월드컵 D조 이탈리아-잉글랜드 경기에서 이탈리아의 마리오 발로텔리(오른쪽)가 잉글랜드의 골키퍼 조 하트를 피해 공을 몰고 있다. AP/연합뉴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D조 이탈리아-잉글랜드 경기에서 이탈리아의 마리오 발로텔리(오른쪽)가 잉글랜드의 골키퍼 조 하트를 피해 공을 몰고 있다. AP/연합뉴스
헤딩슛 한 방으로 ‘축구 종가’ 잉글랜드 무너뜨려
냉랭하던 조국 이탈리아 팬들도 기립박수로 반겨


하이에나인가?

이탈리아의 ‘악동’ 마리오 발로텔리(24·AC밀란)가 포효했다. 기회가 오면 뼈까지 파고드는 이빨로 물고 놓지 않는다. 15일(한국 시각) 브라질 마나우스의 아마조니아 경기장에서 열린 2014 월드컵 D조 잉글랜드전 후반 5분. 1-1 팽팽한 균형은 발로텔리의 고공 헤딩슛 한 방으로 갈렸다. 2-1로 ‘죽음의 조’에서 팀에 귀중한 승리를 안겼다. 스스로도 월드컵 첫 출전 결승골이며, 경기 최우수선수가 됐다. 2010년 대표팀 발탁 이래 이날까지 A매치 31경기 13골. 세계 최강의 팀에서 거둔 대단한 성적이다.

양쪽 머리를 빡빡으로 밀고, 가운데만 말총처럼 남긴 발로텔리는 괴짜 선수다. 190cm, 88kg의 탱크같은 체형으로 최전방 공격진에 서면 상대는 위압감을 느낀다. 흑인 특유의 탄력에다 민첩성, 발재간과 슈팅력까지 공포의 선수다. 이날 잉글랜드 수비수 개리 케이힐은 ‘인간 병기’ 발로텔리를 그림자처럼 쫓아 다녔다. 하지만 상대의 시선을 흩뜨리는 영민함으로 후반 초반 측면에서 올라온 고공 패스를 완벽하게 골로 연결했다.

해결사 기질과 폭발적인 야성은 발로텔리의 성장사와 관계가 있다. 애초 발로텔리는 환영받지 못하는 이방인이었다. 가나 이민자의 아들로 어려서 심장병을 앓았고, 결국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이탈리아 가정에 입양된다. 새 어머니 실비아는 정성으로 발로텔리를 돌봤지만, 피부색이 다른 발로텔리가 차별의식이 강한 이탈리아에서 온전하게 성장하기는 힘들었다. 그 돌파구가 축구였다.

발로텔리는 15살의 나이로 루메차네에서 프로에 데뷔하는 등 일찍이 천재성을 발휘했고, 명문 인터밀란(2007)에 입단한 뒤 청소년대표(2008), 국가대표(2010) 등 엘리트 코스를 밟는다. 2010년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시티에 입단해 3년간 뛰었다. 폭발적인 스피드와 힘은 맨체스터시티가 신흥 명가로 부흥하는 데 발판이 되었다.

하지만 발로텔리는 제어되지 않는 야생마였다. 어려서부터 인종차별에 대한 반발심과 강박관념이 있었고, 이는 때때로 거친 돌출 행동으로 연결된다. 맨체스터시티 시절 친선경기에서 골 기회 때 장난으로 공을 흘려보내 교체당하자 물병을 던지며 신경질을 냈고, ‘왜 나만 갖고 그래?’라는 속옷을 보이며 골 세리머니를 하기도 했다. 프로 경기에서도 거친 행동으로 경고나 퇴장을 당하기 일쑤였다. 2010 시즌 맨처스터시티에서 24 경기 10 옐로카드 2 레드카드를 받았다.

지난 시즌 이탈리아 AC밀란으로 돌아온 발로텔리는 4월 FC바르셀로나의 알베스가 비야레알과의 경기 도중 인종차별의 뜻이 담긴 바나나 투척 세례를 받았을 때 적극적인 ‘바나나 캠페인’으로 반인종차별 행동에 나섰다. 발로텔리는 바나나를 먹는 자신의 사진을 올려 비야레알 팬들의 인종차별적 행동을 담담하게 버텨낸 알베스를 지지하는 의사를 표시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프로축구 팬들과의 관계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지난달 대표팀 훈련에서는 청소년들이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이날 월드컵 첫 경기에서도 안방 관중들은 우호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발로텔리가 결승골을 터뜨리자 모두 흥분했고, 그가 퇴장할 때는 기립박수를 쳤다.

이날 승리 뒤 발로텔리는 자기를 쫓아다니는 카메라 앞에서 순진한 윙크를 지어 보였다. 손가락으로 ‘쉿!’이라는 동작도 취해 보였다.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이탈리아의 우승을 믿고 있다. 우리보다 수준 높은 팀이 한두 팀 정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아니다”라고 말한 호언은 기행이 아니라 그의 실력이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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