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은 결과에 대한 부담감을 갖지 말고 월드컵에 임하길 바랍니다.”
2010년 6월27일(한국시각) 남아공월드컵 16강 우루과이전에서의 아쉬운 장면 때문이었을까. 이동국(35·사진·전북)에게 브라질월드컵 축구대표팀 선수들을 위해 당부의 말을 해달라고 하자 이 한마디만 남겼다.
허정무 감독이 이끈 남아공월드컵 대표팀은 조별예선에서 승점 4점(1승1무1패)을 기록해 B조 2위에 오르며 원정 최초로 16강에 진출했다. 토너먼트 첫 상대는 A조 1위 우루과이였고, 16강에서 승리한다면 8강에선 가나-미국전 승자와 맞붙는 일정이었다. 유럽 강호들을 피하며 비교적 대진운이 좋자 언론과 축구팬들은 원정 첫 4강 진출 가능성도 조심스레 점쳤다. 남미 강호 우루과이엔 디에고 포를란과 루이스 수아레스라는 걸출한 스타가 있었으나 경기는 대등하게 펼쳐졌다.
후반 김재성을 대신해 투입된 이동국은 1-2로 뒤지던 경기 막판 상대 포백라인을 무너뜨리는 박지성의 송곳 패스를 받아 골키퍼와 일대일로 맞섰다. 그는 가까운 골대 쪽으로 오른발 슛을 날렸지만, 발등에 정확히 맞지 않은 공은 골키퍼 다리를 맞고 힘없이 뒤로 흘러 수비수가 걷어내고 말았다.
이동국은 “순간적으로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고민했다. 그때는 1994년 미국월드컵 스페인전에서 서정원 선배가 넣었던 골 장면을 떠올렸다. 하지만… 임팩트 순간 제대로 맞지 않았다는 느낌이 왔다”고 자서전 <세상 그 어떤 것도 나를 흔들 수 없다>에서 회상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최종명단 탈락, 2006년 독일월드컵 직전 부상 등 월드컵에 맺힌 개인 한을 풀어줄 골은 결국 터지지 않았다. 그는 “그순간 주저하지 않고 강하게 찼어야 했다. ‘이렇게 또 월드컵이 끝나는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 허탈했다”는 후회의 글도 남겼다.
우루과이와의 경기 뒤 이동국은 그라운드를 쉽게 떠나지 못했다. 내리는 빗속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경기장을 나섰다. 한국 축구 대표 선수 중 한명이지만 단 두 번의 월드컵에서 51분밖에 뛰지 못한 이동국은 대표팀 후배들에게 응원의 말을 잊지 않았다. “국가대표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멋지게 경기를 해주길 기대합니다.”(끝)
이재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