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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야구·MLB

로맨티스트 채병용

등록 2008-10-28 18:38수정 2008-10-28 19:11

김양희 기자
김양희 기자
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야구 /

지난 5일 인천 문학구장. 반달이 어둠속에서 고개를 내밀 즈음 1루 응원단상 위에 한 사나이가 무릎을 꿇었다. 그 앞에는 한 여인이 서 있었다. 사내는 한 손에 반지를 들고, 홍당무처럼 빨개진 얼굴로 마이크를 잡았다.

“지친 하루살이와 고된 살아남기가 행여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게 언제나 나의 곁을 지켜주던 그대라는 놀라운 사람 때문이란걸~.”(이적의 <다행이다> 중)

이날 수백명의 야구 팬들이 에스케이 2선발 채병용(26)의 프로포즈를 지켜봤다. 마이크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떨렸지만, 그의 눈은 노랫말처럼 진실돼 보였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똥싸는 기계’라고 불렸던 채병용이 최고의 로맨티스트가 되는 순간. 야구부원들이 단체로 밥을 먹을 때면 너무 허겁지겁 먹어서 화장실을 계속 들락날락거려 얻은 별명이 ‘똥싸는 기계’였다. 식당일 하는 어머니가 어렵게 건넨 한달 야구비 6만원을 잃어버린 뒤 거리를 하염없이 헤매면서 가난이 뭔지도 깨달았다.

6만원 때문에 방황하던 소년은 이제 연봉 1억5천만원의 사나이가 됐다. 올해 처음으로 개인 타이틀(승률·10승2패)도 따냈다. 지난 27일 열린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는 선발로 출전해 4이닝 2실점으로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시즌내내 140㎞ 초반에 머물던 직구가 이날은 최고 시속 146㎞까지 찍혔다. 김성근 에스케이 감독이 “스피드건이 고장난 줄 알았다”고 표현할 정도로, 직구 스피드와 볼끝이 좋았다.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동계 휴식기가 되면 그는 또다른 출발선에 선다. 12월6일 고교동창 동갑내기 송명훈씨와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11년이나 만났지만, 야구선수라는 이유로 정작 얼굴을 맞댄 시간은 365일정도 밖에 안된다. 사진찍기 싫어하는 습관 때문에 둘이 함께 찍은 사진도 별로 없다. 야구장 프로포즈는 그의 미안한 마음을 담은 이벤트였다.

“11년 동안 참고 기다려준다는게 쉽지 않잖아요. 딴 생각을 안 해본 것도 아닌데, 그 사람만큼 편한 사람이 없더라고요. 참 순수한 사람이예요.” 요즘 그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가장 큰 침대를 사느냐’다. 잠버릇이 좀 고약한 터라, 결혼 후 자신의 넉넉한(?) 몸으로 잠결에 자칫 아내를 깔아뭉개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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