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기자
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야구 /
채종국(33) 이윤호(26) 박가람(22) 김재현(29) 윤성길(24) 김회권(22) 홍성용(22) 신창호(21·이상 전 LG). 권준헌(37) 장순천(27) 임재청(24) 조원우(37) 김수연(31·이상 전 한화). 이달 초 정규시즌이 끝난 뒤 여지껏 구단에서 방출된 선수들의 명단이다.
야구팬들의 열광 속에 화려한 포스트시즌이 진행중이지만, 그 뒤안길에는 쓸쓸히 그라운드를 떠나야하는 선수들이 있다. 이들 중에는 한국시리즈에서 결승타를 때려내 팬들 사이에서 영웅으로 떠올랐던 선수(조원우)도 있고, 야수에서 투수로 바꿔 140㎞가 넘는 예리한 슬라이더를 뽐냈던 이(권준헌)도 있다. 팔이 어깨 위로는 올라가지 않는데도 내야에서 힘차게 공을 뿌렸던 이(채종국)도 있고, 직구 최고 132㎞의 공을 가지고 베테랑 문동환(한화)과 맞짱을 떠서 무승부를 기록했던 이(김회권)도 있다. 이젠 이 모든 순간들이 어쩌면 영원한 추억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데뷔 6년 만에 올 시즌 강력한 중고 신인왕 후보로 떠오른 최형우(삼성)는 2005년말 구단으로부터 방출통보를 받았다. 최형우는 당시를 이렇게 이야기했다.
“몇몇 동료들이 먼저 전화를 받았다. 짐을 싸라고. 두어시간이 지나도 내 전화는 울리지 않았다. 안심하던 찰나, 2군 매니저에게 전화가 왔다. 눈앞이 깜깜해져서 아무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날 저녁, 동료들과 술을 마시다 난생 처음 펑펑 울었다. 너무 억울해서, 원망스러워서…. 야구를 그만둘까도 싶었다. 하지만, 초등학교부터 해온게 이것 뿐이라 다른 데를 알아보다 군대를 갔다.”
이게 어찌 최형우만의 이야기일까. LG·한화 두 구단 뿐만 아니라, 다른 구단들도 이미 방출자 선정작업에 들어갔다. 정규리그 1위 에스케이도 예외는 아니다. 에스케이는 작년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15명을 방출했다. 보유선수 수(63명)내에서 신인선수와 군 제대선수들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순위에 상관없이 매년 반복되는 일이다.
선수들만 그라운드를 떠난 것은 아니다. 노찬엽 전종화 이정훈(이상 전 LG) 최동원 조충열 김호 지연규(이상 전 한화) 정영기 노상수(전 롯데) 박흥식(전 KIA) 코치 등이 옷을 벗었다. 시즌 중반 그룹감사를 받아 구조조정 칼바람을 맞은 엘지 프런트 9명도 야구와의 인연을 끊었다.
누군가의 남편이자, 누군가의 아버지, 그리고 누군가의 아들이 직업을 잃었다. 가을축제의 흥겨움도 좋지만, 프로야구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그라운드를 떠나는 이들의 뒷모습을 한번쯤은 돌아보자. 누가 알겠는가. 이들 중 제2의 최형우, 제2의 이종욱(두산)이 있을지.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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