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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 쫓는데도 컨설팅 받자?

등록 2009-06-18 19:47수정 2009-06-19 14:12

뱀 쫓는데도 컨설팅 받자?
뱀 쫓는데도 컨설팅 받자?
[뉴스 쏙] 호기심 플러스
느린 의사결정·실효 없는 컨설팅 의존
지엠 몰락은 ‘방만한 구조 탓’ 꼬집어




파란 풀밭이 펼쳐진 농장에서 농부가 땀 흘리며 여물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베엠베(BMW) 승용차 한 대가 다가오더니 정장을 빼입은 신사가 내렸습니다.

신사는 농부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키우는 양이 몇 마리인지 제가 맞히겠습니다. 그러면 한 마리를 제게 주시죠.” 농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신사는 주머니에서 노트북을 꺼내들더니 무선 인터넷에 접속했습니다. 각종 자료와 위성사진을 내려받아 분석을 한 뒤 신사는 답을 내놨습니다. “324마리군요.”

정확한 숫자였습니다. 약속한 대로 농부는 신사에게 한 마리를 주면서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맞혀보겠소. 당신은 컨설턴트요. 첫째, 내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찾아왔으니까. 둘째, 당신은 내가 이미 아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내 재산을 가져갔소. 마지막 셋째, 내가 하는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직도 몰라요. 이건 양이 아니라 염소요.”

기업들로선 외부 전문가의 시각으로 자기 기업의 문제와 대안을 뽑아내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가장 선호하는 것이 컨설턴트입니다. 그렇지만 컨설팅 업체들이 비싼 대가를 받아가면서도 제 몫을 못한다는 비판도 많습니다. 현장 사정을 정확히 모르고 기업 임직원의 업무와 사명에 대해서도 무지한 채 피상적으로 조언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저 농부와 컨설턴트의 이야기는 바로 그런 컨설턴트들의 속성을 비꼬는 신랄한 우스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방법이 없는 기업들, 특히 대기업이나 글로벌 기업들일수록 컨설팅을 더욱 선호하는 편입니다. 조직이 커져 의사결정 구조가 복잡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부의 논리를 떠나 명쾌하게 사안을 바라볼 수 있는 컨설팅 전문가를 부르지만, 컨설팅 업체들 역시 결국은 고객인 기업이 다 아는 뻔한 대답을 내놓는, 의미없는 작업만 되풀이되는 악순환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슈퍼 기업에서 퇴출 대상으로 전락해 세계 경제에 충격을 준 세계 최대의 자동차 기업 지엠(GM)은 바로 이처럼 컨설팅 업체를 애용(?)했지만 그 효과는 잘 얻지 못한 글로벌 거대기업으로 꼽힙니다. 이제 파산보호신청 절차를 밟고 있는 지엠의 몰락에는 방만한 구조에 따른 느린 의사결정, 그리고 실효 없는 뻔한 컨설팅 분석이 기업문화에 배어 있다는 이야깁니다.

지엠 내부에서 이런 지엠의 실태를 꼬집는 자조적인 우스개로 많이 하는 농담으로 ‘텍사스 뱀 사건’이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엠의 텍사스 지사 사무실에 뱀이 한 마리 들어왔습니다. 놀란 매니저들이 모여 회의를 열었습니다. 저마다 의견을 내놓으며 토론을 벌인 끝에 만장일치로 내린 결론은 컨설팅 업체를 고용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구매 부서에 고용 요청을 하고, 구매 부서는 구매 규정에 따라 복수 입찰을 거쳐 5주 뒤 컨설팅 업체를 골라 고용했습니다. 컨설팅 업체는 분석 끝에 ‘아무나 먼저 뱀을 본 사람이 때려잡으라’는 보고서를 내놨습니다. 물론 그사이 뱀은 사무실을 나갔습니다.


지엠은 우수한 인재들을 많이 뽑았지만 엘리트 경영진이 실로 방대한 전세계 조직망을 관리하는 데 치중하면서 다양한 보고서와 서류를 만드느라 결국 기업의 본질적 경쟁력을 높이는 데는 소홀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를 극복하려 여러 컨설팅 작업을 벌였지만 결국 회생할 힘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한국의 기업들 역시 컨설팅을 지나치게 선호한다는 지적을 듣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이런 경향은 점점 더 강해지는 추세입니다. 기업은 물론 정부 부처들까지 컨설팅 업체들의 분석에 따라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뱀 사건’ 우스개가 등장하는 것은 아니겠죠?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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