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영국 출신의 미술가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회가 열린 적이 있다. 35만명이 다녀갈 정도로 화제의 전시였다. 주말엔 대기 줄이 길어 관람이 불가능할 정도라는 소문이 돌아, 주중에 휴가를 내 서울시립미술관에 방문했다. 평일임에도 30분 이상 대기를 한 뒤 입장할 수 있었다. 그동안 호크니의 그림을 모니터로만 봤던 나는 실제 그의 작품을 보면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엘시디(LCD)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깊은 색감과 질감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가장 압도 당한 것은 ‘사이즈’. 특히 가장 좋아하는 〈나의 부모님〉이란 작품 앞에선 한동안 움직이질 못했다. 작은 모니터로 봤던 그림이 눈앞에 가로·세로 182.9㎝의 스케일로 펼쳐지자 숨이 멎는 듯했다. 시큰둥한 아버지와 달리 호크니를 복잡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어머니의 눈빛에 눈물이 찔끔 날 정도였다. 그림 안에서 내 어머니의 모습도 보였다.
미술관을 나오면서 입구 근처에 있는 아트숍에 들렀다. 고민하지 않고 바로 〈나의 부모님〉의 포스터를 집어 들었다. 가격은 5만원. 집에 돌아와 인터넷에서 액자를 산 뒤 안방 한쪽에 걸어 놓았다. 지금도 매일 한두 번씩 그림을 본다. 물론 원작의 감동보다는 덜하지만, 그때 감동을 다시 되살릴 수 있는 일종의 매개체다. 휑했던 벽에 생기가 생긴 것은 덤이다.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아트 구매가 인기라고 한다. 지난해 전 세계 미술품 구매자 절반 이상이 엠제트(MZ)세대였다는 보고서도 있다. 부호들의 호사스런 취미에서, 이제는 대중의 유행으로 자리 잡은 것. 방탄소년단(BTS)의 RM 등 아이돌도 아트 수집에 나서면서 인기가 더욱 확산 중이다. 재테크 수단도 된다니, ‘투자’가 일상이 된 2030세대에겐 안성맞춤인 셈이다. 이정국 팀장 jg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