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대표적 아침 식사인 콘티넨털 브렉퍼스트. 어나더스튜디오 임경빈 실장, 장소협찬 롯데호텔 서울
초등학교 2학년 때였나.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이제부터 아침밥은, 먹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침을 거르는 게 건강에 좋다는 것. 1980년대엔 정체불명의 다양한 건강법이 유행했는데(뭐,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아침을 걸러야 건강해진다는 한 일본 의사의 주장이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금식하는 동안 몸의 자정 능력이 발휘된다나. 아버지도 그 의사의 주장을 접하고, 아침을 안 먹기로 결정한 것이다.
아버지의 선언 뒤 우리 집에서 아침은 사라졌다. 아버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밤샘 작업을 많이 하신 터라 일어날 때면 이미 점심시간이었고, 자연스럽게 첫 끼는 점심이었다. 문제는 나머지 가족. 어머니는 할머니의 아침밥을 챙겨 드려야 했기 때문에 주방노동엔 변화가 없었다. 형과 나는 오전을 쫄쫄 굶은 채로 보냈다. 물론 그렇게 굶다가 먹으니 점심은 꿀맛이었다. 한창 성장기에 있던 나는 밥 두 공기는 예사로 먹어 치웠다. 간식도 더 탐했다. 우량아에서 소아비만으로 이어지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그 뒤로 평생을 날씬하게 살아본 적이 없는 나에게 다이어트는 큰 고민이었다. 아침을 먹는 것이 다이어트에 좋다는 얘기를 듣고 한동안 아침을 먹기도 했다. 시리얼, 빵, 샌드위치 등등 주로 정제된 곡물이었다. 결과, 살은 더 쪘다. (차라리 밥을 먹을 걸ㅠㅠ) 아침을 먹으면 점심을 덜 먹게 될 것이라는 의사의 말은 적어도 나에겐 거짓말이었다. 안 먹던 아침을 먹으니 칼로리만 추가될 뿐.
결혼을 한 뒤에는 걷잡을 수 없었다. 밤에 아내와 먹는 치킨과 맥주. 신혼의 가장 큰 매력이고 행복이지만, 어느 순간 주변에서 아무도 나에게 “살 좀 빼라”고 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러분, 살 빼라는 소리를 들으면 적어도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정말 살찐 사람에겐 아무도 살 빼란 소릴 하지 않아요.
이렇게 살다가 가는 거지. 자포자기 심정으로 살다가 우연히 방탄커피라는 것을 알게 됐다. 커피에 버터와 코코넛오일을 섞은 커피인데, 말로 들으면 바로 쏠릴 거 같은 느낌이지만 꽤 고소한 라떼 맛이다. 방탄커피를 시험 삼아 1주일을 먹어본 뒤, 나는 결정했다. ‘내 아침은 이거다.’
아침으로 방탄커피를 먹은 지 3년 정도 됐다. 그사이 두자릿수 ㎏ 넘게 살을 뺐다. 살만 빠진 게 아니라 지방간도 사라졌다. 회사 건강검진에서 의사가 “뭐 했냐”고 물어볼 정도.
방탄커피를 먹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자기에게 맞는 아침은 꼭 챙겨 먹는 게 좋다는 거다. 밥과 국을 고집할 필요도 없다. 이런 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와 찰떡인 아침밥을 찾는 것도 인생에서 큰 수확이 아닐까.
아, 아버지는 요새도 계속 아침 안 드시냐고? 아니, 아침마다 샐러드 드신다. 이정국 팀장
jglee@hani.co.kr
※그동안 ‘팀장이 독자에게’를 사랑해주신 독자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