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을 극복하고 어디서나 드러나는 특별함을 갖고 싶었다. 10년 넘게 꾸준히 다져온 프로급의 취미랄지, 노래 하나로 좌중을 사로잡는 가창 실력이랄지. 내게는 그런 게 없는 듯했다. 어릴 때부터 늘 두루두루 배우고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과목도 두루두루, 그림도, 글쓰기도, 피아노도 그럭저럭, 뭔가를 배우면 곧잘 따라가지만, 어느 정도 목표를 이루거나 만족하면 다른 곳으로 관심사를 돌렸다. 무엇 하나에 오래도록 미치거나 파고드는 법이 없었기에 변변한 상장이나 자격증 하나 갖고 있지 않았다. 이런 점은 취업 준비생이 되었을 때는 자신감을 잃게 하였다. ‘취미 특기’란 앞에 머리를 긁적이다, 결국 10에 8할은 독서와 여행이라고 쓰곤 했다. 책을 읽고 여행하는 것이 실제 내 취미였지만, 그것 외로 특별한 재능이 있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이제라도 취미를 개발해보자’ 하고 온갖 학원에 다녀봤지만, 진짜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기는 힘들었다. 요리학원, 댄스학원, 어학학원 등은 몇 달 못 가 학원비만 탕진한 채 끝이 났다. 그러다 어느 날 깨달았다. 아, 나는 취미조차 인내심을 갖고 노력하며 남들에게 맞추려 했었구나. 나는 이 자각 이후 스펙 쌓듯 했던 ‘취미 기웃거리기’를 그만두었다.
그러자 다시 진짜 하고 싶은 것이 마음속에 슬그머니 떠올랐다. 무언가를 쓰거나, 어딘가로 떠나거나, 달리거나. 열정이 오래 유지되는 것도 있었고 단기간에 끝나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 그동안 일관성이 없어 취미나 특기를 갖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 대신 시작을 잘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가볍게 시작해서 열정적으로 빠져드는 사람. 흥미가 사라지면 그만두기도 하지만, 곧 다른 관심사가 생기면 고민 없이 다시 시작하는 사람. 여러 가지를 계속 이어나가는 모습이 누군가의 눈에는 끊임없는 ‘열정’으로 보이기도 했다. 에스엔에스를 통해 많이 받는 질문도 무언가를 망설임 없이 시작하는 비결에 대한 것이었다. 내 대답은 이러했다. “좋아하는 것 앞에 순수해지는 것이요!” 뛰어든 일이 자신의 기대만큼 잘되지 않을 수도 있고, 왠지 시작하면 제대로 끝을 봐야 할 것 같은 의무감 앞에 시작을 피하고도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차피 내 인생은 내가 경험하며 사는 것 아닌가.’ 이리 생각하면 결정이 단순해진다. 도전을 통해 스스로 의미를 찾고 즐겁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 아닐까.
그러니 왜 나는 취미가 없을까! 왜 한 가지에 빠져들지 못할까!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마음 가는 대로 따라가 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리저리 계산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 앞에 솔직해지는 것이다.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 이렇게 뒤늦게 시작해도 되는지 등을 따지는 건 중요하지 않다. 선택의 기준은 나의 흥미와 관심 여부다. 막상 해보다가 맞지 않으면 관두면 그만이다. 그런 경험만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발견할 시간이 될 테니, 그 가치는 충분하다. 꼭 프로가 돼야 한다거나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좋아하는 일을 따라가며 살 때, 우리는 자주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 창작하는 인생은 지루하지 않다. 게다가 요즘엔 ‘부캐’ 전성시대 아닌가. 운이 좋으면 나의 여러 부캐들을 발견하고, 또 다른 직업을 갖게 되거나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될 수도 있다.
직장에 다니느라 시간도 에너지도 없는데 어떻게 틈을 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고민이 따라올 수 있다. 오히려 짬을 내서 취미활동을 하면, 그것이 직장생활에 활력을 주는 계기가 된다. 일관성 없는 내가 동종업계에서 10년 넘게 일하는 데는 좋아하는 일을 병행하면서 새 에너지를 계속 채웠기 때문이다. 직장 밖에서 얻은 즐거움이 일터에서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자신감과 활력을 주었다. 게다가 이런 활동들을 하다 보면 본업을 더 잘해야겠다는 필요성도 느끼게 된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일관성 있게 일관성 없음을 좌우명 삼아 살아갈 것이다. 시시때때로 바뀌는 관심사를 따라 살 것이다. ‘왜 그것을 그때 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남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앞으로 내가 어떤 것들에 도전하며 살아갈지 기대감을 갖게 되는 것은 덤이다.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도전은 없다. 무관하고도 생뚱맞아 보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슬쩍, 시작해보자. 그 길이 나를 어떻게 이끌지 궁금하지 않는가.(끝)
임현주(MBC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