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거의 모두에게 가혹한 해였다. 특히 12월은 코로나 이슈가 여타 뉴스들을 모두 잊게 할 만큼 강렬하게 휩쓸어버리는 듯했다. 혹독함은 연말의 분주함도 착 가라앉게 만들었다. 생존만으로도 버거운 시기다. 생존 앞에 끼어들 수 있는 건 없어 보였다. 서점에 가면 주식·투자·경제 서적들이 판매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는 위기이고 미래는 불투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방증하는 듯했다.
거대한 코로나 돌덩이를 하나 들어내고 나면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눈에 띄었다. 죽은 자의 집을 치우는 특수청소부의 이야기, 우울과 불안을 다스리는 이야기, 20대 여성의 자살률이 급증했다는 기사들. 그사이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자살 사별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누군가의 자살 사별자라는 말이 마음을 흔들었다. 그런 이야기들이 자살 사별자의 고통을 당사자나 주변인이 감당해야 할 개개인의 몫으로 돌리지 않겠다는 우리의 의지이자 단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모두가 힘들지 않으냐는 목소리에 매몰되지 않도록 사각지대를 조명해야 한다. 그 ‘연결의 감각’을 느끼자 왠지 손을 맞잡은 듯 힘이 느껴졌다.
나 스스로 늘 개인주의자라고 생각했었다. 나에게 이상적인 조직이나 관계라 함은, 각자의 역할을 잘 해내며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고 불필요한 위계 관계를 강조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면 잘 굴러갈 것이라 믿었다. 물론 지금도 유효하게 생각하는 정의지만,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되었다. 건강한 개인주의자는 ‘사회 시스템’을 외면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몇 주 전 한 행사에 갔을 때였다. 인권 침해를 당한 전 세계의 피해자들을 위해 편지를 쓰는 국제앰네스티 행사 ‘레터나잇’(Letter Night)이였는데,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처음으로 온라인 행사로 진행되었다. 그날 나는 행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약간의 코로나 블루를 겪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무기력에 잠식당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1시간 반가량 진행된 온라인 편지쓰기 행사가 끝나자 기운을 완전히 회복했다. 온라인으로 접속했던 회원들도 끝까지 랜선을 떠나지 않고 함께했는데, 처음엔 적막했던 채팅방이 점차 후끈해지면서 모두 행복함을 느낀다는 말을 쏟아냈다. 함께 뜻을 모으면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인권 침해 피해자를 위해 함께 편지를 쓰고, 그렇게 모인 편지가 그 나라의 결정권자에게 압박이 되어 절망에 빠져 있던 피해자를 구제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목소리에 목소리를 더하면 서로를 구할 수 있음을, 그 힘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연대는 생존이 급급해 보이는 코로나 시대에도 끊어지지 않고 있다. 올해를 들썩하게 했던 지난 이슈들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n번방 사건이나 위계에 의한 성폭력에 대한 사람들의 응집된 분노는 성범죄에 대한 인식과 법의 잣대를 변하게 했다. 비거니즘, 환경, 동물권에 대한 목소리는 공생에 관한 인식을 퍼트려주었다. 가정폭력, 아동학대가 집안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아니며 함께 연대해야 하는 사회적 문제라는 공감대도 커졌다. 이러한 연대가 없었다면 얼마나 더 많은 개인과 구조가 무너졌을까. 당장 나와 무관해 보일지라도 사회의 저변과 시스템을 바꾼다는 점에서 누구에게도 결코 무관하지 않은 문제들이었다.
그러니까 개인주의자인 내게 2020년은 나 한명에서 여럿이 함께 나아가는 변화의 기점이었다. 올해 친구와 떠났던 남해 여행에서 그에게 말했다. 그동안은 혼자인 게 좋았는데 지금은, 아니 아마 앞으로도 함께인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혼자였다면 버틸 수 없었을 것이라고. 그동안 내가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올 수 있었던 것조차, 저변에 이런 환경을 가능하게 했던 누군가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이렇게 안전하게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데는 자신의 것을 내어 변화의 토대를 만들어온 사람들 덕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말이다.
누군가 쓰러지지 않도록 일으켜 세우는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있다. 다른 이를 혼자인 채로 두지 않는 이들이. 코로나 시대에 우리를 허무주의로 내몰지 않는 사람들이. 힘들면 손을 뻗고, 힘이 있을 땐 손을 내어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나는 다시 한 번 연결의 감각을 떠올렸다.
임현주(MBC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