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회의가 드디어 끝이 났다. 답답함과 불만의 말이 입 언저리에서 근질근질 맴돈다. 누군가 나지막이 읊조린다. “진짜 꼰대야 꼰대.” 나와 똑같은 괴로움을 느낀 동지가 있었다니! 우리가 꼰대라고 말할 때 그 속엔 이런 생각과 마음이 담겨 있다. ‘저 사람은 웬만해선 안 바뀌어.’(체념) ‘저 사람하곤 가능한 한 거리를 둘 거야.’(다짐)
그러나 당사자 앞에서 꺼내기 힘든 말이다 보니, 자신이 꼰대로 불린다는 걸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모르게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꼰대 같지 않은 상사의 특징부터 알아보자. 꼰대 같지 않은 상사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미간이 편안하게 이완된다. 일의 분배는 합리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방식에선 효율성을 우선시한다. 자신의 생각을 정답처럼 여기지 않고, 사생활과 관련된 불필요한 질문도 하지 않는다. ‘너는 후배니까’ ‘너는 연차가 낮으니까’라는 필터를 끼지 않고 대화하기에 존중받는다는 느낌과 함께 깔끔한 인상을 준다.
꼰대와 꼰대가 아닌 사람을 가르는 결정적인 기준은 ‘권력에 취해 있는가’이다. 권위 의식은 사소한 부분에까지 미칠 수 있다. ‘선배니까, 후배한테 이 정도 말은 해도 되지’, ‘먼저 입사했으니까, 내가 말하는 규칙에 따라야지’, ‘내가 결정권자니까, 지시하면 당연히 해야지’, ‘인생을 더 살아봤으니까, 진짜 쓴맛을 모르는 너에게 조언 좀 해줄게’ 하는 생각들 말이다. 이런 권위 의식을 인식하지 못하고 내뱉는 경우도 있고 알면서도 본인의 불행했던 과거에 기대 ‘이런 건 원래 돌고 도는 거야’라고 합리화하는 경우도 있는데, 무엇이든 결국 자신을 ‘외로운 꼰대’로 만들 뿐이다.
퇴근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남이 되고 싶어지는 꼰대 상사가 아니라, 대화하려고 하면 후배들이 슬금슬금 피하는 상사가 아니라 힘들 때 찾아가고 싶은 선배, 적어도 일상을 공유하고 싶은 선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 또한 꼰대다운 생각이 딸각 켜질 때가 있었기에 그런 순간들을 거치며 터득한 나름의 ‘꼰대 정신 탈출법’을 공유해본다.
첫째, 상대를 통제하려는 마음을 버린다. 한 조직에 얽혀 있지만 결국 내 인생은 내 것, 상대의 인생은 상대의 것이다. 타인의 생각을 단박에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이야말로 권위 의식이다. 상황을 충분히 파악하기 전에 감정에 따라 말해버리면, 내 경험과 고정관념을 강요하는 ‘답정너’가 될 수 있다. 오로지 ‘방법을 찾아준다’는 생각만 한다. “일이 OO씨에게만 몰린다면 객관적인 업무 현황을 파악해서 공유해보면 어때요?” 하며 대안을 말한다. 중요한 건 방법을 제시하되 판단은 당사자의 몫으로 남겨놓는 것. 그 판단으로 인한 조직과 주위의 평가도 결국 후배의 몫이기 때문이다.
둘째, 변화하는 흐름을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한다. “요즘 애들은 왜 저렇게 생각해!” “어휴,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되지” 하며 부정부터 한다면 ‘옛날 옛적형’ 꼰대가 되기 쉽다. 일단 “난 너에게 열려 있어”라는 믿음을 주는 게 중요하다. 새로운 시대정신과 흐름을 이해하려는 상사에게 후배들의 아이디어와 이야기가 모인다. 나에게 가장 최신의 배움이 된다.
셋째, 자율성을 준다. 모든 과정을 내가 진두지휘하겠다는 생각을 접고 최대한 각자의 방식을 보장해줄 때 모두가 즐거워지고 능률이 오른다. 나 또한 같은 업무를 하더라도 상사가 누구냐에 따라 일의 의욕이 확연히 달라지곤 했다. 상사가 원하는 답이 정해져 있을 땐 더 잘하고 싶은 의욕과 열의가 생기지 않았다. 발언권과 주도권이 주어질 땐 창의력이 상승했다. 나의 능력을 믿어준 상사에게 호감과 신뢰도가 올라간 건 물론이다.
마지막으로 오지랖 금지다. 사생활은 먼저 묻지 않는다. 간혹 회식이나 사무실 같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고 느낀 나머지 “연애는 해요?” “결혼 생각은 없고?” “체중 관리 좀 해야겠어.” 같은 말을 꺼내는 사람이 있는데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될 수 있다. ‘아니, 이런 질문도 못 하면 삭막해서 어떡해?’ 하는 생각이 든다면 해주고픈 말이 있다. “우리는 가족 같은 회사에 다니는 게 아니니까요.”
일을 잘하려면 어쩔 수 없이 꼰대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과거의 생각일 뿐이다. 일을 잘하면서도 존경받는 상사와 동료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선배들이 곁에 있어 다행이다. 이 4가지를 의식하며 상대를 대할 때, 꼰대라는 말은 당신과 상관없는 말이 될 것이다.
임현주(MBC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