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기 작가가 지난 2일 서울 합정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강현욱(스튜디오 어댑터)
“물고기를 마음대로 섭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쇄골까지 늘어뜨린 금발머리에 검정 티셔츠 차림으로 마주 앉은 이종기(36) 작가가 말했다. 그는 ‘만렙’(최고 레벨)의 프리다이버이자 수중사진작가다.
“아무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서” 외국 유명작가들의 사진을 보며 구도와 색감을 익혔고, 그렇게 찍은 사진들이 ‘소니 아르엑스(RX) 사진전’에서 연달아 입상하면서 이종기 작가는 화제의 인물이 됐다. 대상은 2017년에, 은상은 2016년에 받았다. 최근에는 수중사진에 더욱 푹 빠져 송도스포츠 잠수풀과 국내외 바다를 제집처럼 들락거리는 중이다. “남태평양 통가에서 20m짜리 혹등고래와 프리다이빙하는 모습을 꼭 찍고 싶다”는 그를 지난 2일 서울 합정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입고 있는 티셔츠 직접 디자인하셨죠? 인스타그램에서 봤어요. 인스타에서도 엄청난 스타잖아요. 보자마자 시선을 잡아끄는 사진이 많아요. 인스타계의 ‘레어템’이랄까?
“(웃음) 프리다이빙 안 하는 분들도 많이 오시긴 해요. 티셔츠는 프리다이빙 용어를 캘리그래피로 만들었어요. 이집트 다합에 있는 프리다이버들한테 보냈더니 반응이 좋네요.”
-저도 ‘좋아요’ 많이 눌렀는데.(웃음)
“(팔로 명단 확인하더니) 어라, 이분? 어젯밤에 진짜 깜짝 놀랐거든요. ‘좋아요’가 한꺼번에 30~40개 떴는데 모두 같은 사람이 눌렀더라고요. 뭐지? 해킹당했나 싶었죠. 기자님이셨군요.(웃음)
“원래 미적 감각이 좀 있는 편이죠?”라고 묻자, 그는 난감해하면서 쑥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아, 예… 그래요” 한다. 겸손하다. 내친김에 마저 말을 내뱉었다. “수중사진을 프리다이빙 방식을 활용해 찍는 국내 최초의 작가시잖아요?” 괜한 말이 아니다. 지금까지 한국에 수중사진작가는 많았지만, 모두가 스쿠버다이버였다. 누구나 촬영하는 동안 공기통을 메고 호흡기를 물었다. 이종기 작가는 아니다. 공기통도 호흡기도 없이 숨을 참고 들어가 찍는다. 스쿠버다이빙을 못하냐고? 무려 로그 수(입수 기록)가 170회에 이르는 스쿠버다이빙 자격증 보유자 되신다. 스쿠버 방식으로 찍으면 집중도 더 잘되고 오래 찍을 수 있을 텐데, 굳이 왜 프리다이빙식 촬영을 고집할까?
“즐기면서 하고 싶어서요. 호흡기를 물면 찍는 동안에야 편하겠지만 신경 쓸 게 너무 많아요. 배가 상주해야 하고 스태프가 붙어야 하고 공기통과 에어탱크도 필요하죠. 당연히 돈도 많이 들고요.” 반면에 프리다이빙 방식 촬영은 간편하다. 카메라만 있으면 끝이다. 감압에서도 자유롭다. “스쿠버다이빙식 촬영은 깊은 샷이 필요하다 싶을 때 다시 내려갈 수 있을까요? 못 내려가요. 한번 올라오고 나면 무조건 2~3시간은 쉬어야 하거든요. 잠수병 때문이죠. 하지만 프리다이빙은 ‘우리 이번엔 깊게 한번 가볼까?’ 하고 내려갈 수 있어요.”
웨딩드레스를 입은 프리다이버. 이종기 작가 작품.
-물속에서 피사체와 어떻게 의사소통하세요?
“물속은 커뮤니케이션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돼요. 내려가기 전에 피사체가 되는 이에게 포즈를 미리 주문하죠. 전문모델이 아닌 프리다이버를 주로 찍다 보니 디테일을 요구하면 오히려 사진이 어색해지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그냥 ‘여기 줄 밑으로 천천히 내려가 줘. 저기서 좀 버티고 버블 한 번만 쏴줘’ 식으로 말해요.”
-보통 카메라를 쥔 손이 조금만 떨려도 결과물이 엉망진창인데 바닷속에는 어떨까 궁금해요? 너울이나 조류도 있을 텐데.
“제일 스트레스는 시야예요. 3월달에 필리핀 모알보알에 갔어요. 정어리 떼와 노는 프리다이버를 찍고 싶었는데 시야가 10m도 안 나오는 거예요. 비도 많이 왔고요. 시야가 나쁘니 뭘 찍어도 색감이 안 나오더라고요. 원하던 사진이 안 나와서 속상했죠. 사실 마음을 비워야 하는 게 아무리 계획을 완벽하게 짜도 결과는 그 반도 안 나올 때가 많아요. 모델과 저의 컨디션부터 조류, 파도, 부유물, 월력(달의 상태에 따라 바뀌는 물의 흐름)까지, 모든 게 변수죠.”
바닷속에 있는 프리다이버. 이종기 작가 작품.
놀랍게도 그는 수영을 못한다. 심지어 폐질환도 앓는 중이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기침이 끊이지 않았다. “내일도 항생제를 처방받으러 병원에 가야 해요. 알레르기성 비염이랑 천식도 좀 있거든요.” 맙소사, 이 정도면 거의 뭐 ‘극기의 아이콘’ 아닌가? 그럴 만도 한 게 프리다이버로서 그는 반박 불가 ‘만렙’이기 때문이다. ‘에스에스아이(SSI) 레벨3’, ‘에이아이디에이(AIDA) 4스타’, ‘피에이디아이(PADI) 마스터’ 등. 각종 기관들이 주는 자격증을 죄다 땄고, 숨 참는 시간이 무려 4분을 넘기며, 수심 30m 이상 내려간다. 폐와 호흡기가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숨을 참고 수압에 도전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극기의 아이콘’은 아니고요.(웃음) 프리다이빙이 ‘멘탈 스포츠’인 건 맞아요. ‘멘탈’(정신) 80에 ‘피지컬’(신체) 20 정도? 예전에 필리핀 보홀에 계시는 저명한 강사님한테 페북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어요. 여러모로 신체가 부적격인 저 같은 사람도 할 수 있을까요?라고 말이죠. 그랬더니 그분이 말씀하시길, 자신은 폐를 수술해서 폐의 20%가 없고,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발 한쪽이 휘어 있다고요.”
얼마 전 사이판에 갔을 때 그는 ‘죤사마(이종기 작가의 닉네임) 포인트’를 만들었다. 사이판 본섬에 있는, 아무도 가지 않는 바다였다. 그는 그저 구글 지도로 찍어보니 “괜찮겠다” 싶어서 갔는데, 거기서 가오리도 보고, 바닥에 가라앉은 탱크도 보고, ‘B-29'(미군 폭격기)도 봤단다. “바다? 작은 우주라고 생각해요. 그나마 저렴하게 갈 수 있는 우주가 아닐까요.(웃음) 어차피 우주도 중력 없고 공기가 없으니 비슷하잖아요. 물론 단점도 많은 곳이긴 하죠. 이번에도 너무 더워서 배 위에서 잠깐 옷을 벗고 있었는데, 피부가 다 까졌어요. 아참, 그날 상어가 나타났어요.”
-상어요? 너무 놀라셨겠네요. 그래도 상어 옆에서 프리다이빙하는 이들 사진은 욕심이 났겠네요?
“바닷속에 있다가 올라와 보니 사람들이 난리가 난 거예요. ‘상어가 나타났어, 상어가!’ ‘어디 어디?’ ‘저리 가! 그랬더니 저리 갔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네’라고 하고 웃었죠. ‘진짜야. 가라니까 진짜 갔어!’ ‘야, 상어가 네가 가라면 가냐?’ 진실은 여전히 몰라요.(웃음) 하지만 순간 사진가로서 욕심은 살짝 났어요. 지구상에 하나밖에 없는 사진일 거니깐요.”
강나연 객원기자 nalotos@gmail.com
[프리다이빙 장비 잘 고르는 법]
▲마스크: 수압의 영향 최소화해야 하므로 스쿠버다이빙·스노클링과는 달리 용적률이 적은 마스크를 쓴다. 얼굴의 굴곡에 잘 맞는 것을 고른다. 다른 말로 물안경이라고도 한다.
▲스노클: 수압의 영향 최소화하는 단순한 디자인이 좋다. 퍼지밸브 없는 제품이 낫다.
▲핀: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한의 추진력을 내는, 길이가 긴 핀을 주로 쓴다. 카본블레이드, 파이버글라스, 플라스틱 등 소재에 따라 내구성과 무게, 가격이 달라진다. 종류로 바이핀(두 발에 각각 차는 핀), 모노핀(두 발을 모아서 하나를 차는 핀) 등이 있다. 다른 말로 오리발.
▲모노핀: 물갈퀴가 하나로 이어진 오리발. 바이핀보다 넓고 강하기 때문에 한층 더 깊이, 더 멀리, 더 빨리 갈 수 있다.
▲슈트: 바다나 풀장의 기온에 따라 적절한 두께 달라진다. 1.5~5㎜까지 다양하다. 후드 달린 투피스 형태가 보편적이다. 열대 바다나 풀장에서는 서핑용·트라이애슬론 슈트도 입는다.
▲웨이트(무게추): 가급적 작은 중량으로 여러 개 착용하는 것이 편하다. 1㎏과 0.5㎏짜리를 많이 쓴다.
강나연 객원기자 nalotos@gmail.com
Free Diving(프리다이빙)
무호흡 잠수. 공기통 없이 숨을 참으면서 수중에서 활동하는 레저스포츠. 스노클링·스쿠버다이빙과는 다르며, 해녀의 잠수와 오히려 비슷하다. 수영을 못해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