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프리다이빙 초보 체험을 마친 뒤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배워야 사는구나. 난생처음 5m 깊이 물 밑바닥에 잠시 앉아서 생각했다. 숨을 쉬어야 사는구나, 참고 견뎌야 하는구나, 욕심은 버려야겠구나, 담배는 끊는 게 좋겠구나…. 한 번의 들숨을 아껴 쓰며 몇 분간을 물속에서 노니는 ‘프리다이빙’(스킨다이빙·자유잠수). 어린 시절,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며 배운 자맥질 경험 가지곤 안 되는 거였다. 프리다이빙 초보자는 늘 해오던 숨쉬기, 숨참기, 귓속 압력 다스리기(압력평형), 마음의 평정 유지하기 등을 새로 배우고 익혀야 했다.
지난 8월2일, 경기 성남시 성남종합스포츠센터 ‘다목적 잠수풀’(아쿠아라인 잠수풀)을 찾았다. 요즘 국내에서 부쩍 뜨고 있는 수중 레저 ‘프리다이빙’의 세계가 궁금해서였다. 바다에서 이뤄지는 본격 실습에 앞서 진행되는, 2시간짜리 초보자 기본 체험 코스를 신청했다.
프리다이빙 강사 이현호(33)씨가 수심 5m의 잠수풀을 가리켰다. “저 밑바닥까지 숨을 참고 거꾸로 내려갔다 나오면 체험이 끝난다.” 평소 물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지만, 살짝 걱정이 밀려왔다. ‘아무 탈 없이, 물 먹지 않고 다녀올 수 있을까.’
우선 강의실에 들러 호흡법과 숨 참기 방법, 스노클링 방법, 귓속 압력을 낮추는 압력평형(이퀄라이징)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양쪽 귓속을 먹먹하게 하는 ‘발살바’(valsalva) 연습은 해 왔나?” 강사는 전날 ‘발살바’(입·코를 막고 숨을 불어 고막 안쪽에 압력을 가해 압력평형을 이루는 것) 연습 10회를 숙제로 내줬다. 반드시 양쪽 고막 모두에 압박을 받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슈트를 입고 풀장 옆에 누워 호흡법과 숨참기 훈련에 들어갔다. “몸에서 힘을 빼라. 온몸의 힘을 다 푸는 것, 이게 프리다이빙의 기본이다.” 2~3분, 몸의 긴장을 풀고 평온한 상태에서 고르게 숨을 쉬는 이완호흡을 한 뒤, 프리다이빙의 핵심인 ‘숨 참기’ 연습에 돌입했다. 복식·흉식호흡을 차례로 하며 최대한 가슴에 공기를 집어넣고 숨을 참자, 강사가 손목시계 타이머 버튼을 눌렀다. 처음엔 참을 만했으나, 서서히 갑갑함이 밀려왔다.
괴롭다. 배가 저절로 부르르 떨린다. 이러다 숨이 멎는 건 아닐까. “괴로워하지 마라.” 괴로워하지 말라니. 숨막혀 죽겠는데 강사는 “괴로움을 받아들이라”고 했다. 한 모금 산소의 소중함이 실감난다. 손을 들어 ‘호흡충동’이 왔음을 알렸다. 하지만 이 악물고 조금 더 참아보자는 오기도 생긴다. 그때 강사가 말했다. “오기로 견디면 안 된다. 참을 만할 때까지만 참는 거다.”
마침내 참았던 숨을 토해내고 입을 크게 벌려 ‘푸~하, 푸~하’ 심호흡을 했다, 라기보다는 질주를 마친 짐승처럼 헐떡였다. 다소 진정된 뒤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이상 없다”는 신호를 보냈다. 실제 잠수에서도 물 밖으로 나온 뒤 ‘이상 없다’는 신호를 보내는 게 규칙이다.
강사가 시계를 보여줬다. ‘무려’ 2분53초. 첫 호흡충동이 온 뒤로도 40여초를 더 견딘 것이다. 이렇게 오래 숨을 안 쉰 건, 죽기 살기로 버틴 군 시절 ‘화생방 훈련’ 이후 처음일 것이다. “초보자치곤 꽤 오래 참았다. 평균(1분30초 안팎) 이상이다.” 강사는 지속적으로 훈련하면 다른 다이버들처럼 4~5분도 견디겠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이어진 수중 훈련에선 간신히 2분을 조금 넘기는 기록으로, 첫 시도 때 무리하게 숨을 참았음을 드러냈다.
물안경·스노클·오리발을 차고 스노클링 연습을 하기 직전, 갑자기 발가락에 쥐가 났다. 강사가 마사지해 풀어주며 말했다. “몸이 경직돼서 그렇다. 의식적으로 온몸의 긴장을 풀어줘야 한다.” 스노클 호스의 물 뱉어내기 연습을 거쳐 스노클링을 하며 물안경을 통해 물속을 들여다봤다. 깊이 5m의 잠수풀 바닥이 아득하게 먼 거리로 느껴진다. 몇몇 다이버들이 마치 휴식을 취하듯, 밑바닥에 앉고 눕고 서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도전 의욕이 솟는다.
이제 본격 수중 체험이다. 풀 가운데 띄운 튜브에 묶인 줄을 잡고 천천히 바닥까지 내려갔다 올라오는 체험이다. 3㎏의 ‘무게추’(웨이트)가 달린 벨트를 차야 한다. 튜브를 잡고 숨을 고르다가, 숨을 최대한 들이마신 뒤 잠수를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내려가면서 수시로 코를 잡고 숨을 불어 귓속 압력을 풀어줘야 하는 것(발살바)이다. 고막에 통증이 오기 전에 미리 수시로 풀어야 한다. 내려가며 2초 정도만 압력풀기를 안 해도 금세 고막에 압박이 느껴졌다. 바닥까지 내려가 줄을 잡고 앉아, 코에서 손을 떼고 몇초 동안 머물며 주변을 둘러봤다. 고요하고 푸르고, 은밀하고 아늑한 물속 세계. 어렴풋이 ‘자유’ 다이빙의 매력을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강사의 ‘올라가라’는 신호에 정신을 차리고 줄을 잡았다.
바르게 선 자세로 2회 왕복을 한 뒤, 이번엔 물구나무선 자세로 바닥까지 내려가는 연습을 했다. 역시 수시로 ‘발살바’를 실행해야 한다. 양쪽 고막이 먹먹해질 때까지 수시로 풀어줘야 한다. 초보자의 30% 정도는 거꾸로 선 자세에선 ‘발살바’가 잘 되지 않아, 내려가다 멈추고 다시 올라온다고 한다. 다행히 아무 문제 없었다.
거꾸로 본 물속 세계는 또 달랐다. 줄을 놓고 헤엄쳐 내려가고 싶은 충동도 생긴다. 바다라면 무한히 열린 밑바닥까지 내려가보고 싶어질 듯하다. “무리하다가 사고를 당한다”는 강사의 말이 떠올라 고막 압력을 풀어주며 줄을 다잡았다. 2회의 물구나무 잠수를 마친 다음, 한번 더 강사와 함께 물밑으로 내려가 기념사진을 찍고 체험을 마쳤다.
물안경을 잘못 써 물이 새들어왔던 것과 물을 조금 먹은 것 말고는 정말 흥미롭고 보람찬 체험이었다. 강사가 엄지를 치켜들어 ‘초보 체험’ 성공을 축하해줬다. 하루라도 빨리 초보 딱지를 떼고, 10m 깊이 바다 밑으로 내려가는 실전을 익히고 싶었다. 그 한없이 아름답고 평화롭다는 바다 밑 풍경 감상에 도전하고픈 욕구가 불끈 솟았다.
초보 체험을 하는 동안 떠오른 궁금증들을 강사에게 물어봤다.
-숨참기에서 한계치에 온 걸 어떻게 판단하나?
“호흡충동이 강하게 느껴진 뒤 조금 더 참는다는 생각으로 하면 된다. 그렇게 조금씩 늘려갈 수 있다.”
-한계치를 넘어가면 어떻게 되나?
“물론 기절한다. 그래서 모든 프리다이빙은 반드시 2명이 짝을 이루는 ‘버디 시스템’으로 행해진다. 서로 지켜보며 돌발상황 때 응급조처를 하기 위해서다.”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자주 있나?
“거의 없지만 간혹 지나치게 욕심을 내 참거나 무리한 행동으로 기절하는 경우도 생긴다. 절대 욕심내지 말아야 한다.”
-물속에 머무는 시간을 늘려가는 방법은?
“유산소운동, 스트레칭 그리고 숨참기 연습을 통해 폐활량을 늘릴 수 있다. 물속에선 온몸의 긴장을 풀어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무리한 움직임을 줄여야 한다. 산소 소모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뇌는 몸의 장기 중에서 산소 소비가 가장 많은 곳이다. 당황해서 허우적거리거나 스트레스를 받아도 두뇌 산소 소비가 늘어난다.”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 국내외 프리다이빙 포인트]
국내 프리다이빙 포인트 5선
△ 강원 삼척 장호항·갈남항=나란히 자리잡은 두 포구 옆이 포인트. 두 곳 모두 조금만 나가도 수심이 5m 이상 떨어진다. 시야도 비교적 맑다. 갈남항 포인트에선 군소·성게·불가사리 등 해양생물이 많이 보인다.
△ 제주 서귀포 범섬=서귀포항에서 범섬까지는 보트로 10여분 걸린다. 섬 바로 앞이 수심 10m, 좀더 나가면 곧바로 20m 이상이다. 프리다이빙 실전 교육이 많이 이뤄지는 장소다.
△ 제주 서귀포 황우지=선녀탕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알려진 곳. 물속에 바윗돌로 둘러싸인 장소(조수 간만에 따라 수심 2~5m)가 있고, 바윗돌 밑으로는 바깥바다와 통하는 구멍이 있어 깊은 바다로 나아갈 수도 있다.
△ 경남 통영 욕지도=통영항에서 배로 2시간 거리. 수심이 깊고 시야도 좋은 때가 많아 프리다이버들이 자주 찾는 곳 중 하나다.
△ 동해안의 속초, 고성, 강릉 사천, 울진=다이버들이 많이 찾는 다이브 리조트가 있는 곳들이다. 이들 리조트를 통해서 다이빙 포인트를 찾아 나가는 것도 방법이다. 리조트의 렌털 장비와 샤워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보트를 타고 나가기도 해 30m 이상 깊은 수심의 훈련도 가능하다.
국외 프리다이빙 포인트 5선
△ 필리핀 세부·보홀=연중 수온이 따뜻하고, 항공권도 비교적 저렴해 국내 다이버들이 많이 찾는 곳. 특히 보홀에서 가까운 발리카삭섬은 세계적인 다이빙 포인트 중 하나다. 10m 안팎 수심에서 커다란 거북들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 오키나와 나하 본섬=마에다곶, 푸른 동굴 등 다이빙 포인트가 여러 곳 있다. 겨울을 제외하곤 수온이 따뜻한 편이다. 산호를 비롯해 다양한 해양생물을 관찰할 수 있다.
△ 사이판, 괌=두 지역 모두 해변에서 조금만 나가도 수심이 뚝 떨어지는 포인트가 몇 곳 있다. 괌의 피시아이, 건 비치 그리고 사이판의 오비안 비치, 라우라우 비치 등이다. 기본 시야 20m 이상을 자랑하는 곳들이다. 사이판의 그로토 천연동굴에서도 수심 20m까지 다이빙이 가능하다.
△ 타이 푸껫=푸껫에서 갈 수 있는 포인트가 여러 곳 있다. 건기(11~4월)에만 방문 가능한 시밀란섬, 수린섬 그리고 끄라비 근처의 피피섬 등이다. 쪽빛 바다와 형형색색의 열대어를 볼 수 있다. 당일 투어, 섬 숙박 투어 등 프로그램이 있다.
△ 이집트 다합=프리다이버라면 누구나 손에 꼽는 포인트. 깨끗한 시야와 잔잔한 파도로, 프리다이빙의 최적지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 비록 거리는 멀지만, 싼 물가와 특유의 분위기에 취해 한번 들어가면 오래 머물며 다이빙을 즐기는 이들이 많다. 다이버들 사이에 유명한 ‘블루 홀’을 갖춘 포인트다.
정리 이병학 기자, 도움말 이현호 프리다이빙 강사
2 스노클링 장비와 오리발.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7 줄을 잡고 거꾸로 내려가기. 이현호 강사 제공.
8. 5m 깊이의 잠수풀 바닥에 안착한 모습. 이현호 강사 제공.
Free Diving(프리다이빙)
무호흡 잠수. 공기통 없이 숨을 참으면서 수중에서 활동하는 레저스포츠. 스노클링·스쿠버다이빙과는 다르며, 해녀의 잠수와 오히려 비슷하다. 수영을 못해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