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줄을 씹는 것 같았습니다. 제 ‘첫 냉면의 기억’입니다.
두 쪽으로 쪼개 먹는 ‘쌍쌍바’는 말할 것도 없고, 조금씩 아껴가며 핥아 먹는 단팥맛 ‘깐도리’마저 나눠 먹던 단짝 친구와 함께 아버지 회사로 심부름을 갔던 어느 더운 날이었습니다. 집에 두고 가신 물건을 갖다 드리고 나오는데 아버지께서 점심을 사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게 웬 떡이냐, 신이 난 제 귀를 붙잡고 친구가 나지막이 속삭였습니다. “냉면은 먹지 말자.”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건 회사 앞 허름한 식당 골목을 헤집고 들어가는 아버지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는 것뿐이었죠.
친구의 불길한 예감은 맞았습니다. 아버지가 우리를 데려가신 곳은 냉면집. 더운 날이었으니 당연한 선택이었을 겁니다. 서둘러 나온 물냉면을 한 젓가락 떠서 입에 넣고 이로 면을 끊으려고 할 때서야, 왜 친구가 냉면에 식겁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어찌나 질긴지, 끊을래야 끊을 수가 없었어요. 그 질깃하고 미끄덩한 식감은 또 어떻고요. 제가 이가 약한 어린아이였고, 면도 전분을 많이 넣은 것이라 그랬을 테지만, 그 뒤로도 냉면을 그리 즐기진 않았습니다.
냉면과의 진짜 만남은 10여년 전입니다. 요즘 같은 평양냉면 열풍이 불기 전부터, <한겨레>엔 평양냉면 ‘환자’가 수두룩했어요. 저도 그런 선배의 손에 이끌려 한 노포에 가게 됐습니다. 대체 얼마나 맛있기에 이렇게들 호들갑일까, 잔뜩 기대하며 한입 먹었죠. 아! 내 맛도 네 맛도 아닌 이 밍밍한 맛이라니! 선배에겐 차마 “이걸 왜 먹어요?”라고 말할 수 없었지만, 다시는 이 집에 오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죠.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니, 그 맛이 너무나 그리워지는 겁니다. 그렇게 한번이 두번이 되고, 두번이 세번이 되면서 어느새 저는 이름난 냉면집을 무시로 찾아가는 평냉 중독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냉면은 이렇게 먹어야 한다’거나, ‘이 집 안 가봤으면 냉면 먹었다 말하지 마라’는 태도는 입맛 떨어집니다. 김치찌개도 집집마다 끓이는 방법이 다르고 고유한 맛이 있는데, 냉면이라고 딱 하나의 정답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또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냉면집만 유독 부각되는 이유는 뭘까요? 이번주 ESC가 저와 같은 의문을 가진 이에게 하나의 답변이 되면 좋겠습니다.
조혜정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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