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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막장드라마’ 좋아하세요? 호명에서 이미 비난조 가득한 막장드라마를 선뜻 좋아한다고 말할 사람은 없겠죠. 저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왜 막장드라마의 시청률이 높은지 알게 됐습니다. 까놓고 말해 막장드라마의 은근한 팬이 됐다고나 할까요? 티브이 드라마 이야기는 아닙니다. 주부들의 정보 사이트 출입 경험담입니다. 사이트에서 공유하는 살뜰한 살림 정보들 사이에는 주기적으로 ‘막장성’ 읽을거리들이 등장합니다. 다름 아닌 ‘시월드’(시댁)에 대한 하소연이죠. 입덧으로 사경 헤매기 일보 직전인 며느리에게 하루 걸러 전화해 당신 아들 밥은 제대로 챙겨 먹이는지 확인하는 시어머니부터 오빠 지갑을 개인 금고로 활용하는 얄미운 시누이까지 주말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들에는 공감과 위로의 댓글도 길게 달립니다. 저 역시 “웬일이야? 이게 말이 돼?” 흥분하면서 곧잘 빠져듭니다. 이런 막장 하소연의 ‘제철’이 돌아왔습니다. 다름 아닌 명절이죠. 만삭에 허리 휘어지도록 일하다가 병원 실려가 애 낳은 이야기부터 억울하고 분한 주부들의 한 서린(!) 사연들이 줄줄이 올라옵니다. 비단 고생하는 며느리가 아니라도 책임이 늘어나는 나이가 되면서 명절연휴는 기분 좋은 휴가라기보다 돈과 노동, 피로의 3종세트 찜질하는 시즌으로 변질되는 게 슬픈 현실이죠. 그래서 〈esc〉는 이번 설 연휴에 가족 간의 화합과 우애를 돕는 여행지 추천도 하지 않고 특별히 맛있는 설음식 이야기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말이 가족여행지고 별미지, 대부대가 움직이려면 뼈 빠지게 준비하는 사람 따로 있으며, 전 부치는 냄새에만도 진저리 칠 사람에게 세상 별미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막히는 귀경길, 허리 휘게 일한 다음 esc 읽으며 잠시라도 스트레스 터시라고 허허실실 재밌는 이야기와 그림들로 모든 면을 채웠습니다. 그리고 기운 나신다면 추억을 되살리는 게임 한판 권유합니다. 짧은 연휴, 여러분 미간의 주름 한개 예방하는 데 esc가 도움됐다면 임무 완수!입니다. 김은형 〈esc〉 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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