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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요즘 아기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성장앨범이 유행이라고 합니다. 카메라가 드물던 시절부터 곱게 차려입힌 아기를 데리고 사진관에 가서 백일사진, 돌사진을 찍어주는 건 오랜 전통이었지만 성장앨범이란 건 아이가 뱃속에 있는 만삭 때부터 50일, 100일, 200일, 돌 등 분기별로 아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새로운 트렌드인가 봅니다. 성장앨범뿐 아니죠. 디에스엘아르 카메라로 아기의 사진을 수시로 찍어주고, 캠코더로 아기의 예쁜 짓을 기록하는 건 요즘 엄마 아빠들의 큰 즐거움 중 하나지요. 결혼할 때 스튜디오·야외촬영도 안 했을 만큼 게으른 저는 성장앨범 광고 등을 보면서도 저걸 꼭 해야 하나 늘 망설였는데 이번에 결심했습니다. 성장앨범, 나도 만들자! 바로 이번주 사진면에 소개된 사진집 <윤미네 집>을 보면서였죠. 기사에 썼듯이 전윤미라는 실제 인물을 태어났을 때부터 결혼할 때까지 아버지가 필름 속에 담은 이 사진집이야말로 사전적 의미의 성장앨범입니다. 눈 꼭 감고 젖을 먹는 아기부터, 이빨 빠진 어린이와 새침한 소녀, 그리고 학사모를 쓴 성인이 되기까지를 꼼꼼하게 연결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평범한 아이 사진, 가족사진인데 박미향 기자 표현대로, 보고 있으면 뭉클하고 코끝이 시큰해집니다. 실력 있는 프로 사진가들이 찍는 성장앨범 속 아기들은 그저 사랑스러울 뿐인데 아마추어가 찍은 이 사진들은 왜 감동적일까 생각해보니 그 이유는 피사체 주변에 있는 것 같습니다. 사진집 속 아기는 그저 깜찍한 얼굴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이 옆에는 고된 육아노동으로 지쳐 잠든 엄마가 있기도 하고, 이불을 차며 배를 내밀고 자는 동생들이 있습니다. 또 아이와 엄마가 무엇인지 열심히 만들고 있는 옆에는 양은냄비를 얹은 ‘석유곤로’가 보이기도 합니다. 아이가 그만할 때의 세상과 우주가 함께 있는 것이죠. 그것들이 주인공 윤미씨가 건강하고 평범하게만 성장해도 그 자체로 기적 같은 감동을 주는 삶의 미장센들로 기능합니다. 기성품 같고, 시간이 지나면 촌스러워질 성장앨범이 고민되는 분들께 <윤미네 집>을 강추합니다. 김은형 〈esc〉 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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