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나라 음식을 먹는 것은 가장 싸게 그 나라를 여행하는 방법이다. 그 여행은 공간을 가로지르는 것은 물론, 시간을 가로지르는 시간여행이기도 하다.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이동기구처럼, 북한을 여행하는 방법이 서울에도 있다. 그것도 압구정동이다.
압구정동에 자리잡은 함경도찹쌀순대에 들어서면 일단 심호흡을 하고 여행 준비를 한다. 큰 가방이나 속옷은 필요 없고, 빈속에 새로운 음식을 포용할 ‘마음의 햇볕정책’만 있으면 된다. 한반도의 동서가 다른 만큼, 남북이 다른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므로 ‘식해’라는 명칭이 달고 시원한 전통 음료가 아니라, 사실상 젓갈을 의미한다고 해도 그리 크게 놀란 표정을 지어서는 안 된다. 음식 여행자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어떤 맛이든 포용하겠다는 ‘혀의 햇볕정책’이 필요하다.
자리에 앉아 주문한다. 운 좋으면 30년 넘게 2대에 걸쳐 식당을 경영하는 이희숙(49) 사장이 올 수도 있다. 함경도 순대와 가자미식해를 주문하면,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가자미는 한반도의 전 해안에서 잡히며, 몸이 달걀 모양이고 매우 납작한, 광어처럼 생긴 생선이다. 생활력 강한 함경도 사람들은 가자미를 가지고 식해를 담갔다. 고춧가루 양념이 된 무와 가자미 한 조각을 입에 넣는다. 짭짤하고 약간 비릿한 맛이 퍼진다.
“가자미식해 담그는 도구요? 뭐가 있을까… 특별한 도구는 없고, 무를 길쭉하게 썰어서 소금물에 절여서 물기를 쪽 짜죠. 위에 지둘러서 빠지게. 그리고 가자미는 같은 크기로 썰어서 또 물을 빼고. 그러니까 대야가 중요한 건가?” 이희숙 사장이 덤덤한 말투로 설명했다.
“1970년에 처음 문 열었어요. 장소는 그대로지요. 당시엔 압구정동에 백화점도, 아파트도 없었고, 비포장도로였고요. 그때는 제가 없었죠. 1986년에 시집왔으니까. 처음 문 열고 음식 한 건 시어머니와 큰시숙님이죠. 애기 아빠가 나중에 물려받고.” 이희숙 사장의 시숙인 고성희(69)씨가 큰 손으로 슴벅슴벅 가자미를 썰어 식해를 만들고 순대에 찹쌀을 넣었다. 가자미식해는 대표적인 함경도 음식이다. 함경도찹쌀순대는 가자미식해를 제대로 만드는 몇 안 되는 곳으로 미식가들 사이에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파는 함경도식 순대는 신의주나 평양 순대와 달리, 당면이 없고 찹쌀, 숙주, 두부와 파, 양파 등 채소가 들어간다.
30년이 넘어 단골도 많다. 북한에 출장 다녀온 단골손님은 “북한 제일의 음식점 가자미식해도 이곳 맛을 못 따라오더라”고 칭찬했다. 학생 시절 이곳을 처음 찾은 한 단골은, 지금은 학생인 아들딸을 데리고 온다. 한국에서 선대의 맛을 유지하는 식당을 찾기는 어렵다. 돈에 대한 감각과 경영 수완도 중요하지만, 고집이 있어야 한다. 이곳 단골들은 여전히 이 집을 ‘아바이순대’라고 부른다. 1970년 처음 삐뚤빼뚤한 글씨체로 쓴 상호가 ‘아바이순대’다. 이 사장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 ‘아바이순대’라는 상호 등록을 해버려 할 수 없이 간판을 바꿨다. 이름이 무엇이든 여기 30년 넘게 터잡은 아바이순대집이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02)545-3302.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