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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와 백설기의 궁합

등록 2009-07-29 19:48

다미재 장향진 사장
다미재 장향진 사장
[매거진 esc] 너는 내운명
다미재 장향진 사장의 송편 숟가락




한식세계화 추진단의 올해 예산이 100억원이지만, 서울 시내 특급호텔 가운데 한식당을 운영하는 곳이 두 곳에 불과하다는 현실은 변함이 없다. 이어령씨가 문화부 장관이던 1990년대 초반 한식당이 없으면 특급호텔 인가를 내주지 않던 법률이 지금은 폐지된 것으로 이 현상을 다 설명할 수 있을까? 한국인에게 한식은 그냥 ‘집에서 먹는 밥’이다. 이는 의식의 문제다. 어느 한식 요리사는 만날 때마다 파스타 한 그릇 값이 대부분 1만원 넘는 것에는 소비자들이 문제 삼지 않으면서, 좋은 재료를 쓴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가격이 7000~8000원을 넘으면 욕설 수준으로 항의한다고 푸념했다.

이를 고려하면 대학로 떡카페 다미재(02-744-8090)의 전통요리 연구가 장향진(53)씨가 영업이 본궤도에 오르는 데만 2년이 걸렸다는 사실도 놀라거나 한탄할 일이 아니다. “젊은이들이 많이 다니는 대학로에 적당히 현대적인 인테리어로 만들면 금방 잘될 줄 알았죠.” 160㎝쯤 되는 키에 마른 장향진씨가 사과수정과를 내왔다. 곶감 대신 말린 사과를 넣었다. 곶감을 넣은 수정과보다 가볍고 시원했다.

메뉴에는 포도갈수, 송화밀수 등 낯선 한자어가 많다. 왕실에서 마시던 음료를 재현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문헌에 재료는 언급됐지만 구체적인 조리법이 없었다. 포도갈수(葡萄渴水)는 포도로 만든 갈증 해소 음료다. 포도즙에 녹두를 넣고 끓인 뒤 식혀 만든다. 장향진씨는 남편 조성희(54)씨와 머리를 맞대고 <임원경제지>를 보고 만든 포도갈수를 조선의 마지막 주방상궁에게서 궁중 음식을 배운 황혜성 선생에게 가져가 검증을 부탁했다. “선생님~ 이 포도갈수가 궁중에서 왕이 드시던 그 맛입니까?” “… 잘 만들었는데, 너무 오래전 기억이라… 흐흠.”

다미재 장향진 사장의 송편 숟가락
다미재 장향진 사장의 송편 숟가락

우리의 후식 문화가 커피와 케이크에 “점령당했다”고 표현하는 장향진 선생을 민족주의자로 불러도 무방하다. 그러나 그의 조용한 말투와 외모에는 ‘다양성주의자’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100원짜리 동전보다 더 작은 송편에 속을 넣는 데 쓰는 숟가락 손잡이에는 검정 테이프가 말려 있다. 처음 다미재를 열었던 2004년부터 이 숟가락을 써 왔다. 이 숟가락으로 한입에 들어갈 만큼 조그만 송편을 개발했다. 커피와 케이크의 조합만큼 우리 차와 다식(한국 고유 과자)이 어울린다고 그는 생각한다. 가령 녹차의 마리아주(음식과 포도주의 궁합)는 심심한 백설기다. 처음 다미재를 찾는 손님이 떡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장향진 선생은 먼저 차를 선택하라고 권한다. 떡은 차에 맞춘다. 커피는 어울리지 않는다. 커피의 쓴맛이 백설기의 맛을 덮어버린다고 옆에 있는 조성희씨가 말했다. 여의도에서 12년 동안 퓨전 주먹밥 집을 열어 대기업 임원들이 줄서서 먹을 만큼 성공시킨 장향진 선생의 전통에 대한 창의적 해석과 집요함이 전통을 박물관이 아니라 대학로의 떡카페로 살아 있게 한 원천일 게다. 지금 다시 문 연다면 떡카페가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디저트 카페’란 이름으로 문 열었을 것이란다. 그는 다양성주의자다.

글 고나무 기자ㆍ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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