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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얼마 전 롯데와 공군이 체결한 ‘서울공항 활주로 변경 비용 및 안전장치 도입’ 협약과 관련한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성전 국방정책연구소장이 “누가 보수세력이고 누가 좌파 빨갱이인지 정말 혼란스럽기 그지없다”고 말한 대목이 흥미로웠습니다.
두 가지 생각이 났는데 일단 언어 선택은 거칠었지만 김 소장이 보여준 신념의 일관성에 한 표를 던지고 싶습니다. 보수냐 진보냐를 하나의 도덕적 잣대로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념에 있어 개인의 차이일 뿐이죠. 문제는 자신이 선택한 방향에서의 일관성입니다. 진보를 내세우면서도 성희롱 등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가부장적 권위와 억압으로 묻으려 했던 사람들을 믿을 수 없듯이, 국가안보를 최선의 가치로 내세우며 활주로 변경 결사반대를 외치다가 대통령 한마디에 “그럴 수도 있죠” 말 바꾸는 자칭 보수들, 한심합니다.
또 하나는 “국가안보 훼손하는 엠비(MB)와 침묵하는 세력이 좌파 빨갱이 아닌가”라는 말에 묘한 기시감이 들었습니다. 근래 북한이 ‘주구장창’ 미사일 협박을 하는 소식을 들으면서 주변 여기저기에서 “쯧쯧, 어쩜 저리 똑같을꼬” 돌림노래로 한숨을 내쉬었기 때문입니다. 이번주 박미향 기자가 다녀온 노순택 작가의 전시 ‘거울정치’에서 작가는 문제의 두 사람이 서로의 거울상이라고 일갈합니다. “이들 둘은 증오하지만 서로를 욕망하는 서로의 거울”이라고 해석합니다. 분단 체제라는 거창한 시스템의 비판까지 안 가더라도 남의 말 죽어라 안 듣고, 눈치도 전혀 안 보고 내키는 대로 홀로 질주하는 모습이 정말 거울상처럼 닮지 않았습니까? 유치한 비유지만 내 오른손이 거울에서는 왼손이 된다는 사실이 되새겨지며 결국 남한과 북한은 이처럼 거울에서 같은 모습으로 만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래저래 뜨거운 6월이 될 모양입니다. 거리에서 선탠하실 여러분들, 자외선 차단 크림 꼭 챙겨 바르시고 이따금 ‘거울정치’전처럼 좋은 전시도 보면서 마음을 식히시길 권합니다.
김은형 〈esc〉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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