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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얼마 전 법상 스님의 <기도하면 누가 들어주나요>라는 책을 선물받았습니다. 불교신자도 아닌데다 종교 서적에는 통 관심이 없던 터라 큰 기대를 안 했는데 뜻밖에 흥미로웠습니다. 목탁소리 홈페이지와 개인 이메일로 들어오는 다양한 질문과 상담 내용을 추린 목차에는 단순히 수행이나 종교를 벗어나는 내용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부부 갈등, 명퇴자가 지닌 미래에 대한 불안함, 여자친구 따라 성당에 다니는 아들을 보는 불교 신자 엄마의 못마땅함까지 보통 사람들이 살면서 겪는 고민들이 녹아 있었습니다. 답변 역시 흔히 비종교인이 예상하는 종교인의 정형화된 조언을 살짝 비켜나 있는 내용도 많았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수행을 하고 있지만 일이 안 풀리거나 주변 사람들과 문제가 생길 때면 욱하고 올라온다고 토로한 한 피상담자에게 불교의 가르침인 ‘방하착’(放下着)하기 위해, 즉 집착을 놓아버리기 위해 ‘애를 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고 조언합니다. 이 조언은 종교의 이타심과는 거리가 먼 ‘이기적인’ 상담을 표방하는 임경선씨의 이번주 기고와 무관해 보이지 않습니다. 감정에 충실한 삶이 어렵다는 피상담자에게 임경선씨는 ‘감정에 휘둘리기 전에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를 관찰하라’고 조언합니다. 어떤 감정에 빠지거나 벗어나기 위해 싸우는 것보다 중요한 건 한 발짝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이라는 말이겠죠. 커버스토리(1면 참조)에서 정신과 의사 김혜남씨와 자칭 ‘야매 상담가’ 김어준씨가 같은 고민에 유사한 결론을 내렸듯 ‘이기적인 상담실’과 종교적인 상담도 때로는 이처럼 다른 복도로 나와 같은 출구로 나갑니다. 성향은 달라도 사람에 대한 통찰은 같을 수 있다는 이야기겠죠. 한때 성공과 연애를 위해 자기계발서에 줄 치던 젊은 이들이 요새는 심리학에 빠졌다죠. 독서는 좋지만 좋은 말 들을 때까지 점집 찾아다니는 기분으로 이 책에서 저 책으로 방황하지는 말기를. 깨달음은 의외로 단순한 것이니까요. 김은형 〈esc〉 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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