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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2009년 연예 트렌드로 아저씨들의 부상이 예견되더니 아니나 다를까 활약이 눈부십니다. <내조의 여왕>에서 꽃중년 삼총사의 매력 발산이 F4의 기세를 누를 태세인데다 한국방송 <해피선데이>의 ‘남자의 자격’은 그야말로 피 터지는 주말 버라이어티 전쟁에서 무사히 안착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반가운 건 유희열과 김창완의 공중파 음악프로그램 입성입니다. 7면 ‘너 어제 그거 봤어’에서 “아이돌의 임금님”이라고 칭한 유희열은 <스케치북>을 시작했고 “70년대에도 ‘핫’한 뮤지션이었고, 2009년에도 ‘핫’”하다고 표현한 김창완은 <음악여행 라라라>의 진행자가 됐습니다. 재미있는 건 두 사람 모두 ‘입성’이 맞는데 어쩐지 ‘귀환’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입니다. 원래 있었던 자리에 돌아온 듯한 편안함이 있기 때문이죠. 처음 만났지만 어제도 동네 슈퍼에서 만나 안부를 물었던 것만 같은 편안함은 이들이 아저씨이기 때문일까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이들은 아저씨지만 그 옛날의 아저씨가 아닙니다. ‘아이돌의 임금님’이라는 농담 같은 별명이 말해주듯 유희열은 연륜 있는 음악인이지만 카라의 음악에도 열광하고 10대, 20대까지 킥킥거리게 만드는 유머감각의 소유자입니다. 50대의 김창완이 훈계하거나 꾸짖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듭니다. 두 사람에게는 아저씨의 품격이 있지만 아저씨의 권위 같은 건 느껴지지 않습니다. 두 대담자의 말마따나 ‘살아 있는 전설’은 그저 말을 거는데 젊은 뮤지션들이 지레 기가 눌리는 걸 보면 아저씨는 변하는데 아저씨를 보는 우리 시선이 바뀌지 않는 건가 하는 말장난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권위가 없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변하는 아저씨가 매력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저씨를 매력적이게 하는 건 가장 멋진 청년이라도 가질 수 없는 어떤 깊이입니다. 김창완과 유희열을 ‘완소’ 아저씨로 만든 건 무엇보다 음악에 대한 그들의 실력과 이해겠지요. 재치 있지만 가볍지는 않은 두 아저씨의 품격, 오랫동안 만날 수 있기를.
김은형 〈esc〉 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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