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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상담면 진행은 재미있는 일입니다. 비밀스러운 남의 고민을 엿볼 수 있으니까요. 왜 훔쳐보느냐 분개하지 마십시오. 고민 편지를 받아서 김어준씨나 임경선씨에게 전해주는 게 상담면 진행자의 가장 중요한 책무니까요. 물론 100 퍼센트 비밀 보장 약속이니 내용을 발설할 수는 없지만, 꼭 상담을 원하시는 분들을 위한 비법 몇 가지는 알려드리지요.
상담 칼럼이 나가고 나면 비슷한 내용의 고민들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이를테면 ‘결혼하고 싶은 남자친구가 경제적으로 무능해요’라는 내용의 상담이 실린 뒤에는, ‘여자친구의 낭비벽이 심해요’ ‘남친의 진로가 불투명해요’ ‘파트너가 부양해야 할 식구들이 너무 많아요’ 등 애인의 경제적 능력에 대한 하소연들이 부쩍 늘어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에 ‘어른 입문 1’이라는 제목으로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가 나간 다음에는 유사한 실존적 고민들이 100통 이상 쏟아져 들어왔죠. 그만큼 이심전심했다는 이야기지만 엇비슷한 사연이 연달아 채택될 가능성은 희박하지요.
때로 지면 게재를 거부하지만 상담은 꼭 하고 싶다고 당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esc〉의 상담 코너는 원칙적으로 지면을 통한 공개 상담입니다. 가끔 비공개를 요구하면서 왜 상담 안 해주냐고 항의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난처합니다. 공개 상담 이외의 사연 채택 기준은 무엇일까요? 단순합니다. 상담자의 선택이죠. 이렇게 절박한 고민을 왜 안 풀어주나, 섭섭하실 분도 계시지만 상담자도 인간이다 보니 약한 고리나 풀지 못하는 문제가 있겠지요.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가 <건투를 빈다>는 제목으로 단행본 출간됐습니다. 책으로 묶어서 보니, 이 냥반 이렇게 똑똑했나 싶을 정도로 무릎을 치게 되는 대목이 많군요. 읽어보시길 적극 권유합니다. 〈esc〉 독자 사은 이벤트도 마련했으니 지갑 얇은 분들도 어여 한 권씩 챙겨가시길….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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