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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뱅이국수’는 별거중

등록 2008-07-02 20:22

‘골뱅이국수’는 별거중
‘골뱅이국수’는 별거중
[매거진 Esc] 박미향의 신기한 메뉴
맛난 집의 반찬이란 무엇일까? 주요리만 까무러칠 정도로 맛있다고 그 집을 사랑하게 되는 것일까?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위장의 심심함을 달래는 것이 반찬이다. 소문난 맛집의 반찬은 먹을거리가 아닐 때도 있다. 벽에 그려진 향수어린 글자와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 한 소절이 반찬이 되기도 한다. 독특한 반찬이 있는 집을 발견하면 맛보는 기쁨 이상으로 신이 난다.

부암동 들머리의 <치어스>는 인왕산의 기개와 코끝을 스치는 바람, 구부정하게 휜 나뭇가지와 돌틈 사이로 곧게 뿌리를 내린 들꽃들이 반찬이다.

서울에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은 부암동. 이곳을 찾은 이들이 배고픔을 달래느라 <치어스>를 찾는다.

주인 박선옥(53)씨는 걸쭉하다. “우린 닥치는 대로 막 살아.” 굵은 목소리로 자신의 인생철학을 말한다. ‘막 사는’ 그가 만든 요리는 평범한 이름의 ‘골뱅이국수’다. 이름은 동네 호프집 술안주 골뱅이무침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의 인생역정이 묻은 맛은 다르다. 무능력한 남편, 망한 쌀장사, 갈빗집을 ‘들어먹은’ 상처들이 그의 굵은 손마디에 남아 짙은 향을 낸다.

‘골뱅이 국수’는 골뱅이와 야채가 국수와 복잡하게 엉켜 있지 않다. 큰 접시에 한쪽은 사과·미나리·쑥갓·오이·배·양파·해파리와 골뱅이가 뭉쳐 있고, 다른 한쪽에는 하얀 국수가 살포시 뿌려진 깨소금과 다소곳이 앉아 있다. 골뱅이와 야채 무침 사이에 불쑥불쑥 등장하는 해파리의 맛이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매운맛 사이에 미끄덩한 상큼한 맛이 덤빈다. 골뱅이무침은 맵다. 매운 것에 확 데인 뒤 국수는 단 느낌마저 든다.

국수는 골뱅이무침과 다른 양념으로 무쳤다. 간장과 참기름, 골뱅이무침에 들어간 소스로 버무렸다. 골뱅이 무침 소스는 박씨만의 비결이란다. 이 두 가지 다른 맛이 한 그릇 안에 있다. 마치 한 이불 속의 부부처럼 다르지만 같고 독립적이지만 서로를 의지한다.

“내 주특기는 통닭이야.” 박씨가 굵은 목소리로 말한다. 통닭을 튀길 때는 망한 적이 없었다는 그의 솜씨를 부암동 순례의 끝 순서로 정하면 어떨까. (02)391-3566.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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