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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비빔밥의 빨간 재주
[매거진 Esc] 박미향의 신기한 메뉴
신기한 노릇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대략 여덟 쌍을 결혼시켰다. 소개팅을 주선하고 욕먹는 경우는 한두 건이었다. 대단히 높은 승률을 자랑한다. 그렇다고 복받으며 살진 않는다. 그 부부들은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난 것뿐이라며 내 노고를 폄하하다가도 부부싸움이라도 심하게 한 날은 주선자인 나를 천하의 철천지원수로 몰아붙인다. 소개팅 주선 승률이 높은 비결은 이렇다. 의외로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남녀를 만나게 해주면 영락없이 불이 붙는다. 다른 것에서 강한 자석 같은 ‘땡김’을 느끼나 보다.
‘나물 먹는 곰’에서 만난 나물과 와인도 그렇다. 우리네 산천초목을 끼고 땅바닥에 붙어 있는 풀 조각들을 뜯어 비빈 밥 요리와 서양식탁의 와인이라니! 멀어도 한창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 두 가지가 한 소반에 나란히 등장해서 연극배우처럼 맛 몸짓을 벌인다. 그 맛의 춤사위가 예사롭지 않다. 담백한 나물과 알싸한 와인의 향은 신혼의 맛을 그대로 드러낸다. 고향 대구에서 공수하는 참기름과 간장 때문이다.
주인 김진한(40)씨는 “동네 백반집에서도 와인 한잔 편하게 먹자”란 생각으로 구성을 했단다. 그는 세 가지 나물세트를 만들었다. ‘아사곰비빔밥’(비빔밥과 아사히 맥주), ‘빨간곰비빔밥’(비빔밥과 와인),‘노란곰빕빔밥’(비빔밥과 우리 전통술)이다.
일곱 가지가 넘는 나물들이 노랑 달걀지단 아래 다소곳이 앉아 있다. 나물마다 다른 질감과 결이 살아있다. 그 씹는 맛이 ‘재크와 콩나무’의 하늘로 치솟는 넝쿨처럼 입천장을 휘감아 올라간다. 그 위에 와인 한 모금 뿌리면 장이머우의 영화 ‘붉은 수수밭’의 색감 같은 붉은 식감이 퍼진다. 이 집의 맛은 김씨의 어머니 차영득(77)씨의 몫이다. 그는 홍대 맛쟁이들에게 유명한 ‘어머니의 고등어’의 주인이기도하다. 여느 집의 외할머니 같은 차씨의 인상이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02-323-9930)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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