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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전유어’의 세 가지 색
[매거진 Esc] 박미향의 신기한 메뉴
어릴 때, 해 질 녘 집을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운 것은 어머니 때문이다. 어머니는 그 시간이면 커다란 도마 위에서 나비가 춤을 추듯 식칼을 놀리며 요리를 한다. 툭탁툭탁. 식탁 너머 들리는 도마 위 칼질하는 소리는 어머니의 음성이다.
서울 광화문 ‘김씨도마’의 요리를 만나는 순간, 어머니의 그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모든 요리가 예쁜 접시에 담겨 도마 위에 얹혀져 나온다. 1미터도 넘는 도마가 벽에 미술 작품처럼 걸려 있기도 하다.
2004년 문을 연 이 집은 충청북도 음성에 사는 경주 김씨 종갓집 후손인 김민용씨가 먹을거리를 만드는 곳이다. 그는 15살이 되어 집안의 요리 한 가지는 만들어야 했다. 스무살이 넘어서는 수십 가지가 넘는 종갓집 요리를 모두 할 줄 알아야 했다. 집안의 규칙이다. 그가 어머니에게서 배운 솜씨로 만든 요리들은 충청도 사람을 닮아 담백하다.
‘도마국수’, ‘도마곰국수’, ‘도마비빔국수’ 등 국수가 유명하다. 밀가루와 콩가루, 달걀을 섞어 면을 만든다. 끓을수록 콩가루의 고소한 맛과 은은한 달걀의 색이 면에 스며든다. 이 집 차림표에서 발견한 독특한 요리는 ‘도마전유어’다. 세 가지 전이 한 접시에 나온다. 소의 안창살과 채 썬 호박, 상어 돔배기(상어의 껍질을 벗기고 도톰하게 포를 뜬 것을 절인 것)가 눈꽃 같은 밀가루와 노란 달걀을 만나 쫄깃하고 상큼한 맛을 낸다.
문화재 58호로 등록된 진천 막걸리 맛도 ‘도마전유어’만큼 여러 색이다. 첫 맛은 와인처럼 달짝지근하게 혀를 달구고, 목을 타고 넘어가면 가슴이 후끈 달아오른다. 볼이 빨갛게 변한다. 다음날 숙취가 없어서 술꾼들에게 인기다.
소금과 국간장만으로 간한 담백한 이 집의 요리에 푹 빠져 있다 보면 어느새 벚꽃 흐드러지게 피는 4월이 지나간다. (02)738-9288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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