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를 누르며
[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인터넷 지우개’가 발명되면 좋겠습니다.
보기 싫은 정보나 못된 악플을 만날 때 슥슥삭삭 지울 수 있도록 말입니다. 사기 치는 쇼핑몰 사이트도 슥삭, 엉터리를 전하는 뉴스도 슥삭, 개인 신상에 관한 나쁜 기록이 있다면 그것도 슥삭. 인터넷 서핑할 맛이 제대로 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쓸데없는 상상이었지만, 인터넷 콘텐츠에 보존연한이 없다는 건 골치 아픈 일입니다. 그 콘텐츠가 불쾌한 기록이라면 당사자는 돌아버리는 거지요.
제가 아는 한 여성 음식평론가는 그것을 끈질기게 지운 경우입니다. 맛집에 관한 책을 낸 뒤 한 잡지기자와 인터뷰를 했다고 합니다. 에피소드를 ‘추궁’하는 질문에 엽기적 취중 실수를 재미삼아 회고한 게 화근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기사가 오프라인 잡지에 실린 뒤 여러 블로그와 웹페이지에까지 퍼날라졌다는 겁니다. 포털사이트에서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면 몇 개월간 그 기사부터 우르르 쏟아지더랍니다. 친구들이 놀리는 거야 감수할 만했는데, 가족과 친척들이 볼까봐 살이 떨렸다는 거지요. 그녀는 결국 뉴스사이트 담당자의 양해를 구하는 것은 물론 블로그 주인들의 연락처를 일일이 찾아내 삭제 요청을 관철해냈습니다.
한데 잘못하면 예의에 어긋납니다. 월권이 됩니다. 합리적인 이유도 없이 온라인에서 무작정 기사를 내려달라면 말입니다. 〈Esc〉가 지난주에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오래된 동네 빵집’ 커버스토리 중 작은 기사에 실렸던 한 프랜차이즈 제과점의 요구였습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 자신들의 행태가 오프라인을 넘어 인터넷 구석구석에 전파되는 걸 하루도 눈 뜨고 볼 수 없었나 봅니다. 신문이 나오자마자 그런 건 좀 심하게 여겨집니다. 일종의 ‘온라인 검열’입니다. 그나저나 정말 ‘인터넷 지우개’라도 개발을 하면 불티나게 팔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고경태/ <한겨레> 매거진팀장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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