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문득 생각난…
‘세계의 폭탄주’ 취재는 어려웠습니다. 칵테일 책은 많았지만 ‘비어 칵테일’(폭탄주) 자료는 없었습니다. 영문판 위키피디아에 ‘보일러 메이커’ 항목이 있었지만, 내용 ‘확인’을 할 수 없어 사용하기 어려웠습니다. 다행히 한국 바텐더 관련 기관에서 자료를 받았습니다. 자료를 받은 뒤 각 ‘비어 칵테일’의 기원을 취재했으니, 취재량이 평균에 못 미친 건 아니었습니다.
생각지 않은 데서 반론을 접했습니다. 최근 한국에 온 더블유(W)호텔의 아일랜드인 총주방장과 인사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화젯거리를 찾다 폭탄주 얘기를 꺼냈습니다. “아이리시 카밤을 좋아하냐”고 물었습니다. 키아란 히키 총주방장은 대뜸 “그건 미국인들이 발명한 것”이라며 “‘자동차 폭탄’(카밤)이라는 명명은 아일랜드인을 죄다 아이아르에이(IRA) 테러리스트로 규정짓는 발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칵테일 이름을 ‘911’이라고 붙이면 좋겠어요?”라고 덧붙였습니다. 아차. 한국의 칵테일 전문가들도 ‘아이리시 카밤’의 정확한 기원과 명명의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음’을 몰랐던 겁니다. 한 줄이면 될 정정 보도를 굳이 3매로 늘린 이유는 반성하기 위함입니다. 무의식에서 작동하는 ‘미국의 관점’이 이것 하나뿐일까요?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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