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를 누르며
[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비판할 일이 적습니다.
〈Esc〉는 칭찬을 더 좋아합니다. 생활의 여유와 웃음을 권장하는 매체에서 날 선 비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재미있고 즐거운 이야기를 전하는 게 우선입니다. 통렬하게 누군가를 꾸짖거나 고발하는 것은 다른 매체의 몫입니다. 그러다보니 취재원과의 긴장관계도 덜합니다. 취재나 기사 작성 과정에서 “기사를 빼달라”는 압력을 받을 일이 거의 없는 셈이지요.
하지만 예외란 게 존재합니다. 단정하고 깔끔하게 차려진 양식 뷔페 테이블에 놓인 청양고추라고나 할까요. 두 달 전까지 연재됐던 ‘요리사 X와 김중혁의 음식잡담’이 그런 경우였지요. 음식점에 대한 단호한 비평들이 독자들을 흥미롭게 했지만, 인터넷에 달라붙는 수많은 악플로 인해 대담자들의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엔터테인먼트 면에 실리는 ‘너 어제 그거 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티브이 프로그램과 연예인들을 실명으로 거론하다 보니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호평을 할 때야 상관없지만, 안 좋은 코멘트를 흘리고 나면 해당 소속사나 방송사의 민감한 반응을 접합니다.
때로는 연예인 본인이 직접 움직입니다. 이번주가 그랬습니다. 방송인 박경림씨가 〈Esc〉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거센 항의를 할 줄 알았는데 정중했습니다. 하지만 상처를 숨기지는 못했습니다. 지난호에 실렸던 ‘너 어제 그거 봤어?’의 제목이 “박경림, 신혼 얘기 좀 그만 해라”였으니까요. 그녀는 대담자였던 방송비평가 정석희씨와의 만남을 원하기까지 했습니다. 직접 대면하여 조언을 귀담아듣겠다는 취지였습니다.
연예인의 그런 전화는 당황스럽지만 반갑기도 합니다. 대단히 드문 경우이지요. 이제 연예인과 수시로 접촉하기를 원한다면 칭찬보다는 비판을 더 많이 날려야 할까요? ‘너 어제 그거 봤어?’의 담당기자는 다음엔 꼭 장동건이나 배용준 또는 강동원을 까칠하게 몰아세워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답니다^^.
고경태/ <한겨레> 매거진팀장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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