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문득 생각난…
2005년 7월 중순 어느 토요일 낮 이화여대 앞에서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이대 정문에서 전철역까지 길을 가득 메운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여성들이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신발을 신은 채 걷고 있었다. 어떤 지령을 받은 것일까? 그들은 모두 캉캉치마를 입고 젤리슈즈를 신었다. 그해 여름 뜨거운 유행이던 캉캉치마와 젤리슈즈. 늦은 오후 잠에서 덜 깬 채 저녁 약속 장소로 향하던 내게, 그건 ‘시위’로 보였다. 전날 마신 술의 숙취와 함께 눈 앞에 밀려오는 거대한 캉캉치마 물결.
보통 시위대와 달리 그들은 구호를 외치거나 팔뚝질을 하지 않았지만 복장은 통일돼 있었다. 리어카마다 쌓인 것은 5천원짜리 젤리슈즈요, 옷가게마다 걸린 것은 캉캉치마였다. 키가 크든 작든, 말랐든 살쪘든 모두가 캉캉치마 속에서 하나였다.
반면 2005년 9월부터 2년 동안 출입했던 서초동 법조타운에서는 거의 아무도 패션에 신경쓰지 않았다. 검사, 변호사, 판사들은 ‘구별되지 않기 위해’ 양복을 입었다. ‘옷으로는 튀지 않는다’는 외모에서의 평균주의. 이대 거리를 걷던 그들은 구별되려는 욕망에서 최신 유행에 신경썼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가 ‘법조타운 사람들’과 같아서 대략 난감했던 것 같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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