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한방진흥센터 1층 카페 참다정에서 파는 한방차. 박미향 기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오징어 게임’처럼 ‘대박’은 아니지만, 지난달 3일 공개된 뒤 꾸준히 회자되며 입소문 나고 있는 드라마다. 공황장애·우울증·강박 등 저마다의 병증으로 마음이 아픈 환자들과 이들 치료에 나선 의료진들의 서사가 중심축이다. ‘정신병동’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인데도, 어째 친숙하다. 이유는 간명하다. 환자들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폭력적인 경쟁 사회에 사는 우리는 각자의 불안을 켜켜이 안고 살아간다. ‘불안’은 언제든 병으로 발화할 태세를 갖췄다. 이런 현실이 드라마 인기의 한 요인이다. 최근 ‘웰니스 관광’이 주목받는 이유도 같다.
웰니스는 ‘웰빙’(well-being)과 ‘피트니스’(fitness)가 합쳐진 말이다. 균형 잡힌 신체적·정신적·사회적 활동을 추구한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웰니스 관광은 여행을 통해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하는 일련의 행위다. 남들보다 더 많이 보고 더 멀리 가는 여행이 아니다. 명상, 뷰티, 스파, 요가, 한방, 건강식, 숲 치유 등을 통해 ‘나’를 만나는 여행이다. 몇 년 전 정립된 이 개념은 ‘웰니스’ 시장의 성장과 무관하지 않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흐름이다.
한국관광공사 자료를 보면 전 세계 웰니스 시장의 경제적 가치는 2020년 기준 4조4천억달러(한화 약 5471조원)로 1~3년 전에 견줘 연평균 6.66%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2025년엔 7조달러(한화 약 8704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여기에 관광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기준 16.2%나 된다.
이런 세계적인 흐름에 맞춰 한국관광공사는 2021년부터 웰니스 관광 이벤트인 ‘한국 치유관광 페스타’를 개최해왔다. 올해도 지난 10월7일부터 11월30일까지 열려 전국에서 펼쳐진 각종 웰니스 행사에 여행객이 참여했다. 여행 플랫폼 상품 할인, 웰니스 체험존 이용, 웰니스 원데이클래스 참여, 웰니스 관광지 방문 등 다채로운 이벤트에 국내외 관광객 약 24만명이 몰렸다. 사람들이 웰니스 관광에서 어떤 매력을 느끼는 걸까. 한국관광공사가 매년 발표하는 ‘우수한 웰니스 관광지 64선’ 중 한 곳을 8일 방문해 체험해봤다.
‘파크로쉬 리조트앤웰니스’가 운영하는 요가 프로그램. 한국관광공사 제공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인근에는 서울한방진흥센터가 있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한방 웰니스 체험 공간이다. 이 공간이 터 잡은 거리에 첫발을 내딛자 온갖 한약재 냄새가 코를 뒤흔들었다. 그도 그럴 만한 게, 이 거리는 국내 최대 규모의 ‘서울약령시(장)’다. 약령시는 조선 효종 때 왕명으로 만들어진 약재상 집결지를 말한다. 전국 주요 약재 생산지에 관찰사를 상주시켜 관리했다. 지금은 서울약령시 외에도 대구, 충북 제천 등 여러 곳에 약령시가 있다.
서울약령시는 1960년대 한약재를 파는 상인들이 전국에서 모여들면서 생겨났다. 지금과 같은 꼴을 갖춘 때는 1970년대다. 종로4·5가 일대에 있던 약재상들이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부터다. 1980년대 초만 해도 서울에서 소비되는 인삼과 꿀의 약 4분의 3, 전국 유통 한약재의 약 3분의 2가 이 시장을 통해 유통됐다고 한다. 한때는 개구리·자라 등 민간요법 재료를 파는 곳도 있었다. 저렴한 비용에 탕약도 지어주는 탕제원도 운영됐다. 최근에는 인삼·홍삼 등을 구입하려는 외국인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그들의 눈엔 한약재 거리만큼 신기한 풍경도 없다. 이 거리 가운데 서울한방진흥센터가 있다.
서울한방진흥센터는 한옥 건물이다. 단정한 처마와 창살은 정감 있다. 이 센터에 있는 한의약박물관부터 찾았다. 박물관 초입에 부스를 차려놓은 이들이 소매를 잡아끈다. “향주머니 만들어 가세요.” 체험 비용은 3000원. 박하·당귀·팔각 등을 반투명 보자기로 싼 뒤 향을 맡았다. 향이 코끝을 자극하는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 시대로 날아가는 듯했다. 눈앞에 허준이 나타나 진맥을 할 것만 같았다. 이런 몽상은 한의약박물관을 둘러보면서 더 확장됐다.
박물관 곳곳에 설치된 안내판에 적힌 글에는 애초 우리 선조들이 체질을 살펴 심신 치유에 힘쓴 것이 지금의 웰니스 개념과 다르지 않다고 적혀있다. 누렇게 변한 한의약 고서들이 눈길을 끈다. 허준·이제마 등이 널리 알려졌지만, 이외에도 한의약 발전에 힘쓴 이들이 많다. 권중화(1322~1408), 서찬(생몰년 미상), 조준(1346~1405), 방사량(생몰년 미상) 등 수많은 이들의 업적이 박물관에 녹아있다. 이들의 지혜는 전시된 도구에서도 드러난다. 채약 기구(약재채취용)나 약저울은 현대인들의 눈에도 편리해 보이고 쓸모가 커 보인다. 사향, 각종 버섯류 등 수백가지 약재도 전시돼 있다.
‘서울한방진흥센터’는 정감 있는 한옥이 매력적인 웰니스 관광지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한참을 둘러보다가 신기한 ‘놈’을 발견했다. 사지를 양쪽으로 활짝 펼쳐 누워있었다. 바싹 마른 꼴이 애처롭다. 내장을 제거하고 말린 ‘합개’(도마뱀과 비슷한 도마뱀붙이)였다. 신장 기능을 향상시키는 약재라고 한다. 납작하고 처연하게 말려진 무당개구리(영와)도 전시돼 있다. 염증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 박물관에는 1050여점의 유물과 350여종의 약재가 전시돼 있다. 이어 약선음식체험관에 들어서자 슴슴한 밥 냄새와 고소한 샐러드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향만 맡아도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센터에는 족욕체험장도 있는데 동절기를 지나 내년 3월부터 운영을 재개한다. 최대 2명까지 이용할 수 있는 탕 하나당 가격은 6000원.
이곳의 웰니스 체험 하이라이트는 단연 한방 지압과 온열 안마 매트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보제원’이다. 조선시대 백성을 구휼했던 빈민구제기관 이름과 같다. 체험 비용은 5000원. 우선 안내원이 장갑과 싸개를 건넸다. 손에 장갑을 끼는 순간 뭉클뭉클한 게 닿았다. “보습에 좋다”는 오일이었다. 지압과 발 마사지 기계에 손발을 집어넣고 버튼을 누르자 ‘들들들’ 하는 기계 소리와 함께 손발이 떨렸다. 작은 망치로 종아리와 발바닥을 차례로 토닥토닥 두드리며 ‘고생했어요’라고 위로하는 듯했다. 옆에서 같은 서비스를 받는 이의 입에선 “시원하네!”라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15분이 단박에 지나갔다.
이어 안내원이 이끈 곳은 온열 안마 매트가 깔린 침대가 6~7개가 있는 방이었다. 매트에 눕자마자 ‘들들들’ 기계음이 났다. 등과 허리, 종아리를 도는 기계 안마가 이어졌다. 두두둥 두둥! 두둥 두두둥! 침대 아래쪽에 누군가 있어서 나를 드럼인 양 여기고 음악 연주를 하는 듯했다. 두두두두두둥! 둥두두두! 이 서비스 시간도 15분. ‘몸이 확 풀린다’는 게 뭔지 실감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출출한 배를 부여잡고 1층에 있는 한방 카페 ‘참다정’에 갔다. 쌍화차 등 각종 차는 한약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진했다. 곱게 단장한 떡은 쫄깃하면서 감칠맛이 났다. 한옥 문창살을 배경 삼아 인스타그램용 사진을 찍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외국인 관광객도 보였다. 일본인이었다. 반나절 체험한 ‘한방 웰니스 관광’. 마음 건강은 몸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자신의 건강을 차분히 돌아보는 시간이 주는 힐링 효과가 큰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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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가볼 만한 웰니스 관광지는 어디일까. 한국관광공사가 올해 추천하는 웰니스 관광지 64선은 △뷰티·스파 △한방 △자연, 숲 치유 △힐링·명상으로 나뉜다. 이중 가장 인기 있는 곳은 강원도 정선에 있는 ‘파크로쉬 리조트앤웰니스’다. 정선 가리왕산, 두타산, 오대천에 둘러싸인 리조트는 자연이 제공하는 힐링이 충만한 여행지다. 객실에는 숙면에 도움이 되는 음원과 명상 비디오가 제공된다. 각종 명상과 요가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다. 외국인이 선호하는 웰니스 관광지는 경남 산청에 있는 동의보감촌과 전남 담양 죽녹원이다. 동의보감촌은 왕산과 팔봉산 기슭에 있다. 한방을 테마로 한 여행지다. 죽녹원은 대나무가 들려주는 노래가 힐링 포인트인 곳이다. 걸을 때마다 쓱쓱 대나무 잎이 바람에 일렁이는 소리가 들린다. ‘죽림욕’ 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곳이다.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웰니스 관광지인 경남 산청 ‘동의보감촌’. 한국관광공사 제공
관광공사가 추천하는 ‘뷰티·스파’ 웰니스 관광지로는 ‘스파(SPA) 1899 동인비’가 있다. 홍삼 브랜드 ‘정관장’을 출시하는 한국인삼공사가 운영하는 홍삼 활용 미용 공간이다. 조선 시대 때 사람들이 인삼을 목욕물에 넣어 피부를 관리했다는 얘기를 모티브로 삼았다. 세란병원의 의료서비스와 연계해 프로그램을 짠 ‘올리바인스파’, 에코 힐링 둘레길 등이 갖춰진 ‘포레스트 리솜 해브나인 스파’ 등도 대표적이다. 이 밖에 ‘리조트스파밸리’ ‘파라다이스시티 씨메르’ ‘테라피 스파소베’ ‘허브아일랜드 허브힐링센터’ ‘아쿠아필드고양’ ‘뷰라운지’ ‘오색그린야드호텔’ ‘포레스트리솜 해브나인 스파’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 ‘스파랜드 센텀시티’ ‘에덴힐스 뷰티 앤 힐링파크’ ‘진안 홍삼스파’ ‘태평염전 해양힐링스파’ ‘더 스파 앳 파라다이스’ ‘더 스파 하스타’ ‘설해원’ ‘동해보양온천컨벤션호텔’ 등이 있다.
강원도 정선에 있는 ‘로미지안 가든’에서는 자연 속 요가 수련이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한방’ 여행지로는 한방차를 마시며 족욕을 즐기는 ‘티테라피’, ‘여용국 한방스파’ ‘하늘호수’ ‘구이안덕 건강힐링체험마을’ ‘이문원 한의원’ 등이 있다. ‘자연·숲치유’ 여행지로는 30분 정도면 숲 전체를 둘러 볼 수 있는 ‘국립대운산치유의숲’, 기암괴석 등 풍광이 아름다운 ‘동해 무릉 건강숲’, 빽빽하게 들어선 편백나무가 매력적인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 한옥 카페 운암정 꽃차와 트레킹용 하늘길 등을 보유한 ‘하이원 에이치에이오(HAO) 웰니스’ 등과 ‘용평리조트 발왕산’ ‘태안 팜카밀레’ ‘순천만국가정원 앤 순천만습지’ ‘국립장성숲체원’ ‘국립김천치유의숲’ ‘국립산림치유원’ ‘오도산치유의숲’ ‘통영 나폴리농원’ ‘금강송 에코리움’ ‘거창 항노화힐릴랜드’ ‘삼척 활기 치유의 숲’ ‘국립칠곡숲체원’ ‘국립제천치유의숲’ ‘서귀포 치유의숲’ ‘환상숲 곶자왈공원’ ‘제원하늘공원’ 등이 있다. ‘힐링·명상’ 여행지로는 강원 원주의 대표 여행지가 된 ‘뮤지엄 산’, 홍천군 종자산 기슭 해발고도 250m에 있는 ‘힐리언스 선마을’, 디톡스 등 재충전 프로그램이 잘 구성된 ‘하이힐링원’이 있다. 또 ‘비스타 워커힐 웰니스 클럽’ ‘전남권 환경성질환 예방관리센터’ ‘인문힐링센터 여명’ ‘한화리조트 거제 벨버디어 웰니스’ ‘로미지안 가든’ ‘좌구산 자연휴양림’ ‘깊은산속 옹달샘 아침편지 명상치유센터’ ‘메이필드호텔 서울’ ‘태권도원 상징지구’ ‘숲에서’ ‘현대요트 인천’ ‘더블유이(WE)호텔 웰니스센터’ ‘취다선 리조트’ ‘제주 901’ 등도 힐링·명상 웰니스 여행지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